‘부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무슨 일을 하고 계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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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109호 발행인 원송[서진업] 발간일 2008-11-03 신문면수 5면 카테고리 설법/경전 서브카테고리 -페이지 정보
필자명 - 필자법명 안성 필자소속 단음사 필자호칭 주교 필자정보 - 리라이터 -페이지 정보
입력자 미디어커넷 입력일시 18-06-20 11:07 조회 2,271회본문
부처님께서 이 혼탁한 세상을 위해서 오셨 는데, 참으로 대단한 일을 하고 계시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모든 것을 초월하여 자유로우신 부처님의 입장에서야 무슨 어려운 일이 있고 쉬운 일 이 따로 있겠습니까? 어리석고 능력이 약한 우리 중생들에게는 쉬운 일, 어려운 일들이 따로 있겠지만 말입니다. 우리 중생들의 입장 에서 볼때 부처님은 위대하게 보이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것을 부처 님만이 가지신 불가사의한 공덕의 힘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또, 부처님은 아무리 어렵고 힘든 일이라도 우리 중생들처럼 ‘힘들다, 어렵다, 고통스럽 다, 짜증난다’ 하는 등의 마음을 갖지 않는 분입니다. 기꺼이 해내시는 분입니다. 왜냐하 면, 부처님의 마음에는 그러한 차별이 없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부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에 게 차별없는 마음을 갖고 살아갈 것을 부탁 한 것입니다.
그래서 오탁은 다섯가지의 혼탁한 세상을 말하는데, 겁탁, 견탁, 번뇌탁, 중생탁, 명탁 을 말합니다.
겁탁은 질병, 기근, 전쟁 등으로 시대가 자 꾸혼탁해지는것이며, ”
견탁은 좁은 소견들이 난무하고 부정하고 탁한 사상으로 사회가 혼탁해지는 것이며,
번뇌탁은 사람의 마음에 갈등과 괴로움이 가득하여 사회가 혼탁해지는 것이며,
중생탁은 악한 행위를 저지르고 인륜도덕 을 버리고 나쁜 결과를 두려워 하지 않아 세 상이 혼탁해지는 것이며,
명탁은 중생이 살아가는 데 계속해서 온갖 불치병과 난치병이 끊임없이 일어나 생명을 위협받는 세상을 말합니다.
이러한 다섯가지의 혼탁함이 깊은 세상을 오탁악세라고 합니다.
혼탁한 세상에 살면서 온갖 고통과 불안에 시달려서 몸도 마음도 지쳐있는 사람들에게, 부처님이 깨달으신 심오하고 불가사의한 진 리를, 가르치고 믿게 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 려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가 부처님의 말씀과 거리가 멀게 살아 온 것은 바로 ‘깊은 확신’이 없었기 때문입 니다. 불가사의한 공덕은 부처님의 영역이고 나에게는 그런 힘이 없다거나 별개의 것이라 고 생각해버리는 데 있습니다. 오탁악세의 정 화는 고사하고 당장 내 앞가림에도 허덕이고 있으니 무엇을 어디에 깊은 신심과 의지를 둘 수 있겠습니까? 그것이 없으니 불가사의 한 공덕이 일어날 수 있겠으며, 혼탁한 세상 을 맑게 할 수 있으며, 중생제도를 기꺼이 할 수가 있었겠습니까?
우리가 부처님처럼 하지는 못한다 하더라 도, 자신을 먼저 돌아보는 시간만큼은 되었으 면 합니다. 속마음을 덮고 있는 혼탁한 생각 과 감정을 떨쳐버리고, 새로운 용기와 확신의 마음가짐이 필요합니다.
‘ 만약, 우리가 이것을 해내지 못한다면, 불 교신자로서 아무런 효과도 보람도 없게 될 뿐 아니라 오히려 더 큰 죄업을 짓는 결과가 될 것입니다. ,
부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불가사 의한 힘’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끊임 없는 정진’과 ‘틀림없는 실천’에 있습니다. 온갖 죄악으로 찌들어서 구제받기 어려운 중 생이라도 육자진언을 일심으로 부르면, 일체 의 업장은 소멸하고 청정한 몸을 이루게 된 다고 하였습니다. 그것이 불가사의한 힘이오, 무량한 공덕인 것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이 말씀을 확실히 믿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부처님이 말씀하신대로 그렇게 되는 것이 부처님이 해내신 어려운 일의 불가사의한 성과’ 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의 죄 많은 중생들이 어떻게 해서라도 구제받아야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작도 중생제도요, 끝도 중생제도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들은 부처님께서 염려하고 걱정하시는 짐으로서, 보호받아야할 대상들 입니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는 깨닫지 못하 고 어리석음과 고통에 빠져 있는 모든 중생 들을 구제하는 일을 계속 해서 하실 것입니 다. 그렇지만 부처님께서 아무리 구제하여 주 시려고 노력하신다 하여도 중생들이 부처님 을 믿고 가르침대로 실천하지 않는 이상 아 무런 소용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로 하여금 부처님의 가르침 을 믿으라고 거듭하여 강조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고통과 불안 속에 시달리 면서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쉽게 믿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것은 ‘몸과 마음의 혼탁 함’, ‘악함’에 깊숙이 빠져 있어서 그렇습니 다. 또한 어리석어서 내가 나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마음이 넓지 못하고, 생각이 깊지 못하고, 행동이 올바르 지 못한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마음이 넓지 못하다는 것은 욕망과 집착을 쉽게 떨쳐버리 지 못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생각이 깊 지 못하다는 것은 성냄과 원망이 가득하다는 것을 말합니다. 행동이 올바르지 못하다는 것 은 이기심과 위선이 넘쳐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마음과 행동을 고치지 못하 는 한 우리의 삶은 항시 고통과 불안이 생겨 나게 됩니다. '의혹과 불만이 떠나지 않게 됩 니다. 이러한 삶은 그 앞길이 점점 어두어지 고 어려움 속으로 빠져 들고 맙니다. 이것은 우리가 원하고 기대하는 삶이 아닌 것입니다. 이 세상에 어느 누가 이처럼 바르지 못한 삶 을 원하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 사람들은 점점 더 고난에 빠져 고통 속에 헤매이고 있습니 다. 최근에 신문이나 방송을 보면 참으로 어 처구니 없는 사건사고들이 끊임없이 일어나 고 있습니다.
그것은 마음과 정신이 혼탁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루빨리 혼탁한 몸과 마음을 정화시켜 나 가야겠습니다.
무슨 대책을 세워야 할 것입니다.
그 대책은 바로 부처님의 말씀을 더욱 굳 게 믿고 끊임없이 실천하는 것입니다.
참, 간단하지요. 그러나 삼일을 넘기기가 어렵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나름대로 여기에 서 벗어나려고 다방면으로 애를 써보고 있습 니다. 그러나 쉽게 뜻을 이루지 못하고 애만 태우는 생활을 계속하고 계실겁니다. 한마디 로 애태우는 인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문 제의 근본을 해결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타고난 팔자소관의 문제가 아닙니다. 단지 마 음과 행동 속에 그 원인이 들어 있습니다. 그 원인은 우리가.각자 가지고 있는 욕망과 집 착에 휩싸인 마음과 이기적인 행동 때문입니 다.
욕망과 집착으로 뒤덮여 있는 것을 ‘어리 석음’이라고 합니다. 또한 이기적인 행동, 바 르지 못한 행위를 ‘나쁜 업, 악업’이라고 합 니다. 이 어리석음과 나쁜 업이 우리들의 생 활을 나쁜 방향으로 몰고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마음을 온통 덮고 있 는 욕망과 집착을 밀어내고 나쁜 업을 없앨 수 있을까요?
이 문제를 놓고 정토종의『아미타경』에서는 간단한 방법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오로지 ‘아미타불’의 이름을 일심으로 부르라는 것 입니다. 그리고 아미타부처님이 계신 극락세 계에 태어나려는 뜻을 깊히 간직하라고 합니 다. 그러니까 아미타불의 나라에 태어날 것을 크게 발원하고 일심으로 아미타불을 부르기 만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총지종은 더욱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육자진언 옴마니반메훔을 염송하면,『대승장 엄보왕경』에서 무수한 공덕과 불가사의한 힘 을 얻는다고 하였습니다.『아미타경』에 비할 바가 아닙니다.
혼탁한 세상에서 우리는 하루도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고통과 아픔 을 마음으로부터는 자유로워질 수가 있습니 다. 이것이 수행이고 부처님 말씀대로 살아가 는 길입니다. 마음의 평화, 평정심, 이러한 것이 중생의 삶에서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마치 연꽃이 진흙더미 속에서 자라나지만 그 영롱하고 화사한 모습은 어디에 비할 데가 없는 것처럼, 아무리 세상이 혼탁하다 하더라 도 자신부터 청정한 마음으로, 마음의 평화를 얻고, 남을 이해하고 더불어 살아간다면 고통 과 괴로움은 줄어 들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서는 많은 중생들을 제도해야 합니다. 부처님 법을 따르고 실천하는 것은 바로 중생제도에 있다고 말씀드릴 수가 있습니다.
수많은 중생들을 제도하고 있는 승직자나 교도 보살님들은 바로 부처님의 위대한 일을 하고 있는 것이며, 불가사의한 힘을 발휘하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참으로 막중한 일을 하 고 있습니다. 그 무게는 참으로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의 막중한 사업을 아무나 할 수 있 는 것도 아니고, 또 아무렇게나 해서도 안되 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먼저, 자기 수양이 되어야 가능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그런 점에서 나 자신부터 되돌아보도록 해 야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중생을 제도한다는 것은 곧 나를 먼저 제도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 다.
중생제도 이전에 부족한 부분을 채워 가면 서 다른 한편으로는 부처님과 같이 중생을 제도하는 일에도 게을리하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내 것도 열심히 닦아가면 서, 또 여러 중생들을 열심히 제도해나가는 것이 참수행이고 바른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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