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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가불교의 철학과 조직변화의 이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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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108호 발행인 원송[서진업] 발간일 2008-11-03 신문면수 8면 카테고리 특집 서브카테고리 국제재가지도자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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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미디어커넷 입력일시 18-06-20 10:19 조회 2,16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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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가불교의 철학과 조직변화의 이끔
제프 와이스텔

철학에서의 영성 을 논 의해 보는 데에 이 발제문의 의의가 있다. 영성 의 개념 자체는 개 인적이며, 다가서기 힘들고, 무한성 에 대한 각자의 정의에 달린 것이고, 잴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는 것이 기에 결론적으로는 이해 불가능한 개 념이지만 조직적 변화라는 틀 안에서 접근해 보았다.

‘영성 ’은 불자의 수행, 육체 적이며 구체적 체험을 통한 깨달음에 서 나오는 지혜를 내포하는 수행과는 대비된다. 영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 의 이분은 영성 에의 접근을 막 는다. 나와 나 아닌 것의 구분이 개 인주의로 흘러가 버리듯이. 이러한 이분은 조직적 변화에 적합하지 않 다. 불교의 이원론 아닌 이원론이 일 하는 조직과 구성원들을 보는 시각으 - 로 적합하다. 상호 의존성을 강조하 는 시각으로 구성원과 변화의 사건들 을 대하기‘ 때문이다. 집단에 대한 시 , 각을 지닌 이 철학은 변화윙 과정에 ! 서 개인 간의 싸움을 완화시킨다. 불발해 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 나 부처님의 가르침은 우리가 살아가 는 땅에 확실히 뿌리내리고 있기에, 불교 안에서 비지니스와 영성  은 유리되지는 않는다.

영성 을 믿지만 종교와는 상 관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비지 니스 영역에서의 영성〔불성)은 잘 접 목될 수 있다. 물론 불교의 가르침에 따르는 것은 개인마다 다르고 각자의 몫이지만, 이 발제문은 최소한 비지 니스 영역에서 영성이라는 것의 대안 으로 명상의 혜택, 이원론 아닌 이원 론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

우리가 주의를 놓춰서는 안될 문제다

하고 있지만 그러한 사람들 중에는 카르마 카규파의 법통을 이은 사람들 을 찾아 볼 수 없다.

논점의 입장에서.살펴보면, 성별과 성에 대한 니달의 입장은 기능주의적 입장에서 티벳 불교의 전통을 계승하 고 있다고 보는 사실이다. 전제왕국에서는 탄압받기도 하며, 새로운 문화와 맞 딱드리고 새로운 도전을 받아들이기 도 한다. 그런데 불교가 그동안 얼마 나 변화를 잘 받아들였었는가? 예를 들어 선불교는 어떠한 교리도 어떠한 단어에도 의존하지 않고 명상에만 집 중했었지 않은가. 그러한 단순함과 유연함이 변화에 적응케 한 것이다. 하지만 단순함과 유연함은 양날의 검 이다. 미끌미끌한 물고기처럼 손에서 빠져나가기도 하고, 코에 걸면 코걸 이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명상이란 허명 하에, 참선이 란 허명 하에 개인의 존재 자체를 무 시하기도 했었던 예가 있지 않은가. 암베드카르 는 불교를 공 산주의 형태로 만들기도 했었던 예를 보듯이 참선은 위험한 것이 될 수도 있다.

불교의 탈바꿈은 불교가 현 상태를 유지하려 하는지를, 보수세력과 결탁 했는지, 억압적 권력에 동조했는지를 의문 삼는 데에 까지 확장된다. 깨달 음만을 위해 사회에의 관심을 거둘 수는 없다.고통과 그로부터의 해벼은 개인의마음의 문제라고 이야기 되었지만 고통을 유발하는 사회와 정치적 구조에도 눈을 떠야 한다.

종종 불교에서 평화를 근간으로 삼 기도 한다. ‘한 걸음 한 걸음에 평 화’ 를 외치는 틱낫한이 그 예가 될 것이다. 반면 가톨릭의 사화 운동은 ‘정의와 평화’를 기치로 내걸고 있 다. 이는 평화의 얻음 여부가 외부와 연결되어 있다고 인식하는 것이다. 사회의 고요함 이면에 자리 잡은 구 조적 폭력을 허명의 평화를 내세워 인식하지 않고 있을 수도 있는 것이 다. 틱낫한은 개인의 변화가 궁극적 으로 사회의 변화를 이끌 것이라고 순진하게 생각한다. 이러한 주장은 사회의 이미 확고한 구조에 대해 변 화시키려는 시도조차 못하게 한다. 나아가, 가난과 그에 따른 고통의 구 조적 원인을 이해하고 캐내는 대신 조선왕조식 복지 형태를 모범으로 삼 아 가난하고 억압받는 이들에게 뻗치 는 사회의 구조적 도움의 손길을 사 장시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이러한 것들이 불교 자체의 변화와 더불어 실천해야 하는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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