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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것을 탐하여 큰 것을 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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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77호 발행인 우인(최명현) 발간일 2022-12-01 신문면수 5면 카테고리 설법 서브카테고리 이달의 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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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2-12-07 12:23 조회 1,75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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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것을 탐하여 큰 것을 잃는다

행복은 마음이 느끼는 감정, 좋은 마음은 탐진치 없는 마음

좋은 마음과 지혜가 우리를 편안케 하고 자유롭게 만들어


 불교총전 375쪽에 ‘작은 것을 탐하여 큰 것을 잃는다’는 제목의 『백유경(百喩經)』 말씀이 있습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욕심이 아주 많은 부부가 있었다. 하루는 그들에게 떡 세 개가 생겼다. 부부는 떡 한 개씩 나누어 먹고 나서 나머지 한 개를 서로 먹겠다고 입씨름을 벌였다. 그러다가 끝까지 말을 하지 않는 사람이 떡을 먹기로 했다. 떡 한 개 때문에 종일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밤이 되자 그 집에 도둑이 들었다. 도둑은 방 안으로 들어가 물건을 모두 훔쳐 쌌다. 그러나 부부는 입을 봉한 채 도둑이 하는 짓만 쳐다보고 있었다. 도둑은 그들 부부를 이상하게 여기면서도 아무 말이 없는 것에 용기를 얻어 그 부인을 범하려 했다. 그래도 남편은 말이 없었다. 참다못한 아내가 ‘도둑이야!’하고 고함을 치며 남편에게 대들었다.

“미련한 사내야, 그래 떡 한 개 때문에 자기 아내를 범하려는 것을 보고도 가만있단 말이오?”그러자 남편은 “떡은 내 것이야!”하고 비로소 입을 열었다.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모두 비웃었다.

 범부들도 그와 같다. 조그만 명성이나 이익을 위해 큰 손해를 보면서도 잠자코 있다. 온갖 번뇌와 악한 도둑의 침범으로 좋은 법을 잃고 악도에 떨어진다 해도 그것을 두려워하기는 고사하고 출세의 길만 구한다. 그리고 오욕락에 빠져 큰 고통을 당하더라도 그것을 재난이라 생각하지 않으니 그것은 저 어리석은 부부와 같다.


 현실에서 떡 욕심 때문에 강도가 재물과 부인을 범하려는 것을 보고 가만히 있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법구비유경』은 쉽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비유를 들어 우리에게 깨닫도록 도와주는 경전이라 이 이야기의 숨은 뜻을 잘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떡’은 우리에게 욕심을 불러일으키고 집착하게 하는 대상입니다. 흔히 우리가 쓰는 관념적 표현으로 돈, 명예, 권력, 가족, 건강 등이 해당됩니다. 지혜가 얕을수록 우리 행복에 있어서 이런 환경들이 많은 영향을 미칩니다. 어쩌면 우리의 인생이 평생 이러한 것들을 채우려고 노력하다가 한평생을 보낸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행복은 마음이 느끼는 감정입니다. 우리가 행복해지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요? 우리가 원하는 환경이 갖춰진다고 행복이 이루어질까요? 

 종조님께서는 ‘본체가 바르면 그림자도 발라진다.’, ‘불법이 체가 되고 세간법은 그림자.’라고 했습니다. ‘불법’은 다 마음을 좋게하는 지혜의 말씀입니다. 행복을 위해서 마음을 닦는 노력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도 부처님과 종조님의 법을 따르는 우리들은 세간법의 성취를 최우선 과제로 기도합니다. 좋은 마음이, 지혜가 왜 ‘본체’가 되는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떡 때문에 재물과 부인을 잃은 사람처럼 우리도 세간적 욕망 때문에 정작 중요한 마음은 소홀히 하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아야 합니다.


 좋은 마음은 탐진치 없는 마음입니다. 마음을 닦는다는 것도 마음에 탐진치를 없애는 것입니다. 마음이 보이는 것과 들리는 것, 생각과 느낌 같은 대상에 집착할 때 마음은 자연히 탐진치로 반응합니다. 이 사바세계에 태어난 중생의 자연스런 마음 작용이 그렇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마음을 좋아지게 할 수 있을까요? “마음아! 좋아져라. 마음아! 좋아져라.” 한다고 마음은 좋아지지 않습니다. 마음이 좋아지려면 지금 알아지는 대상들을 알아차림해야 합니다. 알아차림이 좋은 마음을 위한 조건입니다. 나의 몸과 마음을 항상 알아차리면 번뇌가 줄어들고, 알아지는 대상으로부터 덜 동요합니다. 이렇게 알아지는 대상으로부터 자유로워 고요함이 지혜의 원인입니다. 무엇을 보고 듣더라도 ‘그려려니... ...’하십시오. 다 마음이 그려낸 것입니다. 마음이 좋게 보거나 싫게 봅니다. 마음을 알아차리지 못하면 느낌이나 생각을 다 사실로 믿게 되고, 믿는 순간 우리는 번뇌에게 속을 수밖에 없습니다. 알면 ‘그냥 마음이 또 짓는구나’라고 알 수 있습니다. 『대일경』에서 ‘10연생구’라하여 알아지는 모든 것을 아지랑이처럼, 물거품처럼 보라고 했습니다. 반야심경에서는 앎의 실재는 다 공(空)하다고 했습니다. 실제는 ‘색성향미촉법’, ‘색수상행식’입니다. 아무리 좋은 대상도 다 실재는 보이는 것이고 느껴지는 것이고 냄새 맡아지는 것이고 생각이 일어난 것일 뿐입니다. 대단할 것도 없고 더한 것도 없습니다. 마음이 그렇게 그려낸 것이지 실재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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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알아지는 것에서 실제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지금 앉아있다면 엉덩이 느낌이 실재이고 내가 앉아있다는 것은 마음이 그려낸 것입니다. 누가 내게 욕했다면 소리가 실재이고 아무개가 욕했다는 것은 관념입니다. 보인다는 것이 실재이고 색깔이나 모양, 크기, 속도는 다 관념입니다. 우리의 앎이 다 관념입니다. 마음이 그려낸 것입니다. 알아차림 하십시오. 알면 관념이 약해집니다. 생각에 빠져있을 때 단지 “생각(번뇌)가 일어났구나”라고 아십시오. 아무리 가치있는 생각도 단지 생각이 일어났을 뿐입니다. 아무리 맛있고 비싼 음식을 먹을지라도 실제 있는 것은 단지 어떤 맛일 뿐입니다. ‘맛있다. 비싸다.’는 것은 마음이 그려낸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관념들로부터 자유로울 때 우리의 마음은 편안하고, 자유로우면 활발합니다. 산다는 것이 새롭고 늘 가치 있게 느껴집니다. 돈이나 명예 같은 조건이 아니라 좋은 마음, 지혜가 우리를 편안케 하고 자유롭게 합니다. 


 인생을 욕심에 빠져서, 화에 빠져서, 어리석게 살아가다가는 정말 중요한 것을 잃고 맙니다. 가족과 건강 같은 소중한 것들도 다 그런 연유에서 잃어버리고 맙니다. 항상 마음에 번뇌라고 하는 강도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자신에게 ‘알아차림’이라고 하는 보초를 잘 세워 두시기 바랍니다. 잠시 한눈을 팔면 번뇌가 주인 되어 우리를 여기저기로 끌고 다닙니다. 평생 번뇌의 노예가 되어 삶을 마감한다면 다음 생에 어떤 존재로 태어날까요? 답은 스스로 알 것입니다.

 겨울이 왔습니다. 한 해를 잘 마무리하시고 항상 수행 잘하셔서 몸도 마음도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대일여래 비로자나 부처님의 지혜와 가지(加持)가 늘 함께하시길 기원합니다. 옴마니반메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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