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 무심천에 나타난 일곱부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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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14호 발행인 인선(강재훈) 발간일 2017-09-01 신문면수 10면 카테고리 종합 서브카테고리 불교설화페이지 정보
필자명 조귀자 필자법명 - 필자소속 - 필자호칭 - 필자정보 설화 : 조귀자 삽화 : 김홍균 리라이터 -페이지 정보
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18-06-15 13:03 조회 2,937회본문
때는 조선 고종 광무(1901년). 왕후 엄비는 이상한 꿈을 꾸었다. 갑자기 천지가 진동을 하 며 문풍지가 흔들리는 바람에 엄비는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 와 하늘을 쳐다보았다. 순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오색영롱 한 안개 속에 칠색 선명한 무지개가 자신의 처소인 내당을 향 해 뻗고 있는 것이 아닌가. 엄비는 자신도 모르는 새에 옷매무 새를 가다듬고는 방으로 들어와 정좌 한 후 밖을 보았다.이번 엔 아름다운 풍악소리가 울리는 가운데 일곱 미륵 부처님이 일곱 선녀의 부축을 받으며 내당을 향해 오고 있었다. 엄비는 얼른 일어섰다.
주위에는 온갖 나비와 새들이 저마다 자태를 뽐내며 춤을 추고 있었고 하늘에선 꽃비가 내렸다. 부처님 일 행이 내당에 도착하자 합장 삼배를 올렸다. “그대가 바로 불심 지극한 엄비요?” “예. 그러 하옵니다.”엄비는 떨리는 목소리로 간신히 답했 다. “부탁이 있어 이렇게 왔소. 우리는 매우 위태로운 처지에 놓여 있다오. 하루속히 우리를 구하고 절을 세워 안치해 주길 간곡히 당부하오.”부처님 눈가엔 어느새 눈물이 주르르 흐르 고 있었다. “어느 곳에 계시오며 무슨 사연인지 알았으면 합 니다.” “그 내용은 청주 군수가 잘 알고 있소.”이렇듯 간곡히 당부 의 말을 남긴 미륵부처님들은 영롱한 안개를 일으키며 서쪽 하늘로 사라졌다.
합장한 채 부처님이 사라진 쪽을 한동안 바 라보던 엄비는 부처님을 하루속히 구해드려야 한다고 생각 했다. “얼마나 힘드시고 다급했으면 저토록 눈물까지 흘리시 며 당부하셨을까.”여느 날과 달리 오늘따라 기침 시간이 늦어 지자 시종 삼월이는 아무래도 이상하여 엄비의 늦잠을 깨웠 다. 부처님을 친견하느라 정신이 없었던 엄비는 나인의 목소 리에 잠에서 깨었다. “거참 이상한 꿈이로구나.”엄비는 마치 꿈을 확인이라도 하는 듯 문밖으로 나와 일곱 부처님이 사라진 서쪽과 무지개 가 피어오르던 하늘을 보았다. 그러나 허공엔 아무 흔적도 남 아 있을 리가 없었다.
아무래도 가만히 있을 일이 아니라고 생 각한 엄비는 간밤의 꿈 이야기를 왕에게 고하고는 청주에 사 람을 보내 달라고 청했다. 한편 엄비의 꿈 이야기와 함께 아는 대로 상세히 조사하여 고하라는 어명을 받은 청주 군수 이희 복은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니 사흘 전 내가 꾼 꿈과 흡 사한 꿈을 엄비 마마께서도 꾸시다니‥‥”엄비가 일곱 부처 님을 꿈에서 친견 하던 날 밤, 청주 군수 이희복은 깊은 잠 속 에 스르르 방문 열리는 소리를 들었다.그리고는 장삼이 온통 흙탕물에 젖은 스님 한분이 바로 옆에 와서 앉는 것이었다.
놀 란 이희복은 스님을 자세히 바라보았다. 이마에선 피가 흘렀 고 목에는 이끼가 끼어 있었다. “너무 놀라지 마시오. 내 지금 서쪽 큰 늪에 빠져 헤어날 길 이 없어 구해 달라고 이리 왔으니 귀찮게 여기지 말고 힘껏 도 와주시오.”말을 마친 스님은 홀연히 서쪽으로 사라졌다. 이희 복은 서쪽을 향해 합장을 하며 머리를 조아리다 잠에서 깨어 났다. 아무래도 심상치 않게 생각하던 중 어명을 받은 그날로 사람을 풀어 서쪽 큰 늪을 조사하도록 했다. 그날 오후 조사 나갔던 나졸들은 큰 발견이나 한 듯 군수에 게 고했다. “서쪽으로 가보니 「무심천」이라 부르는 황량한 개울이 있는데 그 주변에 머리 부분만 밖으로 나와 있는 돌부 처 한 분이 늪과 잡초에 묻혀 있었습니다.”이희복은 급히 무 심천으로 달려갔다.
가보니 낚시꾼들이 석불을 의자삼아 걸 터앉아 낚시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무리 늪에 묻혀 있 을지언정 부처님이시거늘 그토록 무례할 수가 있는가.”하며 호령을 했다. “살펴보지 않아 미처 몰랐습니다. 이후로는 그런 일이 없을 것이오니 한번만‥‥”얼굴이 붉어진 낚시꾼은 무안하여 도 구를 챙겨든 채 자리를 옮겨갔다. 이희복은 부처님을 조심스 럽게 파내었다. 석불은 이마 부분이 손상되어 있었다. 그날부 터 사람을 동원하여 무심천 물을 퍼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7 일을 퍼내니 무심천에서는 모두 일곱 분의 미륵부처님이 출 현했다. 너무 기뻐 급히 왕실에 상고문을 올렸다. 왕실에서는 신기한 사실에 엄비의 불심을 높이 칭송하는 한편, 청주 군 수 이희복에게 많은 재물을 내려 절을 세우고 칠불을 모시도 록 했다.
그 절이 바로 오늘의 청주시 사직동 무심천 변에 있 는 용화사다. 신라 선덕여왕 대에 창건됐다가 대홍수로 인해 부처님이 개울에 묻힌 지 천 여년 만에 다시 복원된 것이다. 용화사 복원이후 청주 지역엔 자주 있던 홍수 피해가 없어졌 다고 한다. 현재 미륵칠불은 지방문화재 14호로 지정돼 있다. 『무심천』은 부처님의 흔적을 찾지 못한 채 무심한 세월만 흘렀다 하연 붙여진 이름 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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