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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의 여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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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118호 발행인 원송[서진업] 발간일 2009-09-13 신문면수 5면 카테고리 설법/경전 서브카테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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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미디어커넷 입력일시 18-06-22 03:45 조회 2,71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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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의 여울

삼독

“진여불성 의 모든 공덕은 깨침이 근본이 된다는 것은 알았으나 무명인 마음과 온갖 악은 무엇을 근본 으로 삼습니까?”

“무명인 마음에는 팔만 사천의 번뇌 와 정욕이 있어 악한 것들이 한량없으 나 그 모두는 삼돜 이 급본이다느 V 삼독이란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인 데, 이. 삼돆심에는 저절로 모든 악한 것이 갖추어져 있다. 마치 큰 나무가 뿌리는 하나이나 가지는 수없이 많은 것처럼, 삼독의 뿌리는 하나이지만 그 속에 한량없는 많은 악업이 있어 무엇 으로 비교할 수도 없다. 이와 같은 삼 독은 본체에서는 하나이나 저절로 삼 독이 되어 이것이 육근 에 작용 하면 육적 이 된다. 육적은 곧 육 식 이다. 육식이 육근을 드나들 며 온갖 대상에 탐착심을 일으키므로 악업을 지어 진여를 가리게 된다. 그 러므로 육적이라 이름한다. 중생들은 이 삼독과 육적으로 말미암아 몸과 마 음이 어지러워지고 생사의 구렁에 빠 져 육도 에 윤회하면서 온갖 고 통을 받는다. 이를테면 강물이 원래 조그마한 샘물에서 시작하여 끊이지 않고 흐르면 시내를 이루고 마침내는 만경 창파를 이루게 되나, 어떤 사람 이 그 물줄기의 근원을 끊으면 모든 흐름이 다 쉬게 된다. 이와 같이 해탈 을 구하는 사람도 삼독을 돌이켜 삼취 정계 서를 이루고, 육적을 돌 「이켜 육바라밀오이투며 저 절로 모든 고뇌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다.

“삼독과 육적이 광대 무변한데 마음 만을 보고 어떻게 한없는 고뇌에서 벗 어날 수 있겠습니까?”

“삼계에 태어남은 오로지 마음으로 되는 것이니 만약 마음을 깨달으면 삼 계에 있으면서 곧 삼계에서 벗어나게 된다. 삼계라는 것은 곧 삼독이다. 탐 내는 마음이 욕계 가 되고, 성내 는 마음이 색계 가 되며, 어리석 은 마음이 무색계부가 된다. 삼 독심이 갖가지 악을 짓고 맺어 업을 이루고 육도에 윤회하게 되니 이것을 삼계라 한다. 또 삼독이 짓는 무겁고 가벼운 업을 따라 과보를 받는 것도 같지 않아 여섯 곳으로 나뉘게 되니 이것을 육도라 한다. 그러나 악업은 오로지 자기 마음에서 일어난다는 것 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마음을 잘 거둬 그릇되고 악한 것을 버리면 삼계 와 육도를 윤회하는 괴로움은 저절로 소멸되고, 모든 고뇌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니 이것을 해탈이라 한다.”〈달마 관심론 〉

; 허삼취정계: 부처님이 제정한 규칙을 지켜 악을 막는 섭율의계 ,

자진해서 착한 일을 하는 섭선법계 , 중생을 교화하고 그들의 이 익을 위해 힘쓰는 섭중생계 .

부처란 마음이다

모든 부처님과 일체 중생의 본체는 한마음일 뿐 다른 것이 아니다. 이 마 음은 시작없는 옛적부터 나고 죽는 것 이 아니고, 푸르거나 누른 것도 아니 며 어떤 형상이 있는 것도 아니다. 모 든 이름과 말과 자취와 관계를 초월한 본체가 곧 마음이다. 여기서는 자칫 생각만 움직여도 벌써 어긋나는 것이 니, 마치 허공과 같아 끝이 없으며 짐 작이나 생각으로 헤아릴 수도 없는 것 이다. 이 한 마음이 곧 부처이다. 부처 와 중생이 결코 다를 것이 없지만, 중 생들이 상서0)에 집차하여 밖을 향해.

잃게 된다. 스스로 부처이면서 다시 부처를 찾고. 마음을 가지고 다시 마 음을 잡으려 한다면, 아무리 오랜 세 월을 두고 몸이 다하도록 애써도 이루 지 못할 것이다. 오직 생각만 쉬면 부 처가 스스로 앞에 나타나는 것임을 모 르고 있다. 이 마음이 곧 부처이며 부 처는 곧 중생이니, 이 마음은 중생이 되었을 때도 줄지 않고 부처가 되었을 때도 늘지 않으며, 육도만행 서과 항하의 모래만큼 많은 공덕이 모두 갖추어져 다시 더 닦거나 보탤 여지가 없는 것이다.

인연을 만나면 곧 따르고 인연이 없 어지면 곧 고요하다. 이 부처를 믿지 않고 상에 집착하여 수행하며 그것으 로 공덕을 삼는다면, 이런 것은 모두 가 망상이요, 도 와는 크게 어긋난 다^ 이 마음이 곧,부처요 다시 소다른 마

라도 움직인다면 곧 법체 와는 어긋나며 상에 집착하는 것이니, 일찍 이 이와 같은 상에 집착한 부처는 없 었다. 또한 육도만행을 닦아 성불하고 자 한다면 이것은 곧 점차로 부처를 이루려고 하는 것이니 점차로 된 부처 도 없다. 다만 한 마음만 깨달으면 다 시 더 얻을 아무 법도 없으니 이것이 곧 참 부처이다.

부처와 중생은 이 한 마음 뿐이요 조금도 다르지 않다. 마치 허공과 같 아서 더럽히거나 무너뜨릴 수 없으며, 해가 온 세상을 비춰 밝음이 천하에 퍼지더라도 허공은 일찌기 밝은 일이 없고, 해가 져서 어둠이 천하를 덮더 라도 어둡지 않다. 밝고 어둠이 뒤바 뀌더라도 허공의 성질은 조금도 변함 이 없으니, 부처와 중생의 마음도 이 와 같다. 부처를 생각할 때 청정한 광 명과 자재 해탈의 거룩한 모양으로 보 고, 중생 보기를 때묻고 어둑하고 생 사에 시달리는 혼탁한 것으로 생각한 다면,. 무량겁을 지내도록 수행해도 끝. 내 도는 이루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 면 상에 잡착해 있기 때문이다. 이 마 음에는 '타지 털끝 만한 것이라도 얻을 것이 없으니 마음이 곧 부처인 까닭이 다. 요즘 도를 배우는 사람들은 이 마 음의 본체는 깨닫지 못하고 마음에서 생각을 일으켜 밖을 향해 부처를 구하 며 상에 집착하여 수행하고 있다. 이 런 것은 모두가 그릇된 방법이요 보리 도는 아니다.

허육도만행  : 육바라밀의 실 천수행.

당대 남악 아래에 서 수행하던 선승. 백장 회해를 스승 으로 섬김. 황벽산에 살면서 종풍을 드날리다. 문하에서 임제 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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