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외아들과 연락두절 그리고 관세음보살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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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80호 발행인 우인(최명현) 발간일 2023-03-01 신문면수 6면 카테고리 기획연재 서브카테고리 -페이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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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3-03-06 12:01 조회 1,546회본문
한국전쟁, 외아들과 연락두절 그리고 관세음보살을 만나다
대성사는 좌와 우의 대립을 넘은 곳에 부처님의 가르침이 있다고 보았다. 평등을 주장하는 좌의 입장과 자유를 앞세우는 우의 입지를 동시에 아우르는 길이 불교에 있다고 간파하였다.
대성사는 자유와 평등의 조화를 불교의 수행과 해탈에서 찾아냈다.
중도를 기반으로, 세상이 고정된 실체 없이 인연에 따라 일어났다가 사라진다는 이치를 이해하는 지혜로 일체 중생을 위해 자비를 베푼다면 모든 갈등이 해소되고 그것이 해탈의 길이라는 것이다. 결국 불교를 통해 모든 갈등을 해소하고 자유와 불평등의 모순이 사라지는 새로운 길과 만난 것이다.
위태롭던 정국은 결국 전쟁이라는 파국을 맞게 된다.
광복과 분단으로 이어진 갈등의 골은 서로가 서로에게 총을 겨누는 전란의 비극을 가져왔다. 전쟁이 터졌다는 소식과 더불어 북한군은 걷잡을 수 없는 기세로 밀고 내려왔다. 남한 땅 상당수가 북한군의 점령 하에 떨어졌고, 대성사가 있는 밀양을 지척에 두고 최후의 방어선인 낙동강 전선이 펼쳐졌다. 지축을 울리는 대포소리는 밀양에서도 생생히 들을 수 있었다.
전쟁 속에서 인간은 한 없이 나약한 존재가 된다. 거칠 것 없는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되고, 때로는 적과 동지 어느 편에 설 것인지 선택을 강요받는다. 총알에는 눈이 없고, 포탄에는 동정심이 없다. 누구라도 어디서 날아올지 모르는 총탄의 두려움을 안고 견뎌야 한다. 전쟁은 세상 모든 것을 바꿔 놓았다. 대성사의 인생에서 가장 큰 전기를 만든 것도 한국전쟁이다.
개인적으로 이제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큰 시름이 닥쳤으니, 절망의 순간이 왔다. 외아들인 손순표의 소식이 끊긴 것이다.
당시 손순표는 고려대학교 상과대학, 지금의 경영학과에 진학하였는데 전쟁이 예고 없이 터진 탓에 미처 피난하지 못하고 행방 또한 알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피난 온 친지들도 손순표의 행방을 알지 못했다. 알 만한 곳에 물어도 소식은 닿지 않았고 그렇다고 적지인 서울로 찾아 나설 수도 없는 일이었다. 가슴은 타고 불안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 갔다.
사방에서 들리는 소문은 흉흉하기만 했다. 사상을 의심받으면 처형당한다는 이야기도 있었고, 북으로 끌려가는 이도 있었다. 더욱이 손순표는 어린 시절부터 활달하고 총명하게 자란지라 대성사와 집안에서 거는 기대는 남달랐다. 해방된조국에서 열심히 배워 큰 인물이 되겠다는 포부도 있었다.
그런 금쪽같은 자식이 온데간데없이 행적을 알지 못하게 되자 대성사는 사방으로 소식을 묻고 또 물었다. 피난 온 이들 중 고려대학교와 조금이라도 인연이 닿을 만한 사람이 있으면 어디건 달려가 아들 소식을 들을 수 있을까 간청했다.
희망의 실낱을 한 가닥이라도 찾아 나섰지만 어디서도 아들을 보았다거나 소식을 아는 이들이 없었다. 행적은 둘째치고 생사조차 알 수 없는 상황이 계속되자 대성사 집안에서는 외아들을 위해 어떤 일이라도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대문을 활짝 열어 오고 가는 피난민들을 불러들여밥이라도 한 끼 먹이며 멀리 서울과 피난 행렬의 소식을 물었다. 일부러라도 어려운 이를 찾아가 적선을 하여 티끌 같은 공덕이라도 자식의 앞길을 밝힐 수 있도록 하였다.
대성사는 금강관에게 무겁게 입을 열었다.
“자식의 생사를 알지 못하는데 어찌 밥이 입에 넘어가겠소. 오늘부터 어디든 나서서 찾아봐야겠소.”
금강관 또한 이런 대성사의 마음을 헤아렸다. 덕을 베푼다는 소식을 듣고 피난민들이 몰려왔다. 이런저런 소식을 들었지만, 딱히 실마리가 될 만한 것은 찾을 수 없었다. 그러던 참에 피난민으로부터 솔깃한 소문을 들었다.
“저기 대구 밖에 용한 이가 있는데, 죽은 사람 소식이건 산사람 소식이건 모르는 게 없다고 합니다. 생사를 못 찾는 이들 여럿 찾았다고 해요.”
믿기 어려운 이야기였지만 그렇다고 무시하기에는 마음이 너무 급했다. 대성사는 한달음에 그를 찾아가 아들의 행방과 생사 여부를 물었다.
용하다는 보살은 대성사를 한참 바라보다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좋은 소식은 살아 있다는 것이고, 나쁜 소식은 꼼짝 못하게 사방이 막혀 있다는 것입니다. 덕을 많이 베풀고 부처님전에 간절하게 기도해야 합니다. 관세음보살을 일심으로 외우다 보면 머지않아 좋은 소식을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비록 종잡을 수 없는 말 한마디였지만 한 가닥 빛을 찾은 것 같았다.
이때부터 대성사의 일과가 달라졌다. 금강관은 새벽이면 정화수를 떠놓고 기도를 올렸고, 대성사는 관세음보살 염송하기를 정오까지 그치지 않았다. 아침상을 들일 때를 말고는 잠시도 그치지 않고 일심으로 염송할 뿐 아니라 간간히 포행할 때도 마음을 다져먹고 일념을 흐트러뜨리지 않았다.
기도를 올린 지 삼칠일이 되자 마음에 의심이 사라졌고, 무거운 먹구름이 가셨다. 비록 자식의 소식은 듣지 못했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 확신이 생겼다. 더 이상 자식의 생사와 소식에 연연하지 않아도 된다는 기도의 감응이 있었다.
간절한 기도는 대성사를 더더욱 불법으로 이끄는 계기가 됐다. 만주에서 모았던 불교 서적들을 다시 펼쳐 부처님의 가르침을 읽고 새기기를 하루 일과의 전부로 삼았다. 관세음보살을 염송함으로써 자식뿐 아니라 이 땅에서 전쟁으로 고통 받고 희생된 모든 이를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다.
대성사 가족은 물론이고 인척과 이웃도 일념으로 관세음 보살을 염하는 대성사를 보고 따라 함께 기도하는 일이 늘었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대성사 친인척과 그를 아는 밀양 사람들은 대성사를 보면 당연히 “나무관세음보살”을 외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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