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상일로(向上一路), 창조적 주체성을 드러내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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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26호 발행인 인선(강재훈) 발간일 2018-08-30 신문면수 4면 카테고리 지혜 서브카테고리 칼럼 지혜의 눈페이지 정보
필자명 김봉래 필자법명 - 필자소속 - 필자호칭 - 필자정보 김봉래(불교방송 선임기자) 리라이터 -페이지 정보
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18-06-21 04:58 조회 3,331회본문
“진정한 안심입명처로서 ‘자귀의 법귀의’가 대안”
“창조적으로 생각 드러내가는 향상일로 걸을 뿐”
역대 최고의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더니 어 느덧 찬바람이 돌기 시작하며 문득 인생과 세월의 무상(無常)함을 일깨운다. 좋은 일도 나쁜 일도 다 세월 속에 묻혀버리리는 인생 사이기에 아쉬운 감정과 속시원한 감정이 교 차하는 것 같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에 이런 저런 방황을 하고 끝내 스스로 생을 마 감하는 경우도 많다는 소식에는 안타까운 마 음 그지 없다. 파스칼이 인간을 생각하는 갈대에 비유했 지만 생각을 할 줄 안다는데서 인류 문명은 다른 생명체를 압도했다. 하지만 인간에게 생각은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손해 를 끼치기도 한다.
사실 우리는 생각 하나, 마 음 하나를 제대로 다루지 못해 곤란을 겪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최근 마음 수련이나 명 상이 유행하기 시작한 것도 생각에 대해 근 본적으로 다시 생각할 필요성을 보여주는 것 아니겠는가. ‘철학의 빈곤’이라는 단어가 거론되는 것 도 비슷한 맥락일 것 같다. 이른바 과학적 사 회주의를 내세운 마르크스가 무정부주의자 인 프루동을 철학이 빈곤하다고 비판했다지 만, 거기에는 어디까지나 자신은 옳고 다른 이는 옳지 않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그런데 자기는 늘 옳다고 믿고 싶지만 사실은 그렇 지 않은 경우가 많으니 마르크스 자신 또한 철학의 빈곤을 벗어나지 못한 것 아닐까. 생각을 좁고 얕고 가깝게만 하면 그런 정도 의 속 좁은 주체가 형성되며, 연륜과 수행을 더하여 생각 능력이 커질수록 인격도 깊어진 다. 따라서 자신과 세계가 어떠한지 근본적 인 물음을 가질 때 바람직한 주체 형성의 밑 거름이 될 수 있다. 그 중에 자신에 대한 태도를 놓고 생각해 보면 현실 속의 인간은 대개 세 가지 부류로 나뉘는 것 같다.
지나치게 주체에 집착하던 지, 반대로 주체성 상실에 가깝던지, 아니면 그 사이에서 적당하게 타협하고 살던지. 첫 번째는 ‘생각하는 자아상’에 매여 주체 의 진상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자기고집에 빠지는 경우이다. 또 두 번째는 주체성을 외 부 존재에 맡기거나 외계대상에 대한 탐욕에 빠져 주체성을 아예 상실하는 경우이다. 이 둘은 극단의 양변에 위치해 있다고 하겠다. 그리고 세 번째는 주위 상황이나 여론에 따 라 적당히 입장을 바꾸는 절충을 뜻한다. 위의 어떤 경우도 완벽한 자존감 내지는 행 복감을 얻는 것과는 멀다.
생각하는 주체에 지나치게 집착할 경우 자기 생각이 옳다는 관념을 자기와 동일시하고 그와 배치되는 것 들을 철저히 자신과 구별 짓거나 배격한다. 그럴 때 타인과 조화를 이루거나 세계를 바 르게 이해하기는 어려워진다. 또 주체를 상실할 경우는 외부 존재에 종속 된다. 예컨대 절대신이 하라는 대로 주어진 과업을 수행하고자 할 경우 그야말로 ‘착한 종’이 되고, 외계 대상에 탐닉하여 감각적 욕 망에 빠져 살면 그러한 욕망에 종속된다. 그 리고 적당히 타협할 경우는 마음의 부조화로 이도저도 아닌 채 확신을 갖지 못하고 내면 갈등을 면치 못할 것이다. 생명을 스스로 저버리는 일은 어디에 해당 할까. 주체를 스스로 포기했다고 하는 점에 서 두 번째 경우에 속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 다.
하지만 인생에 마침표를 찍고자 하는 자 기결정에 대해 확신을 가진 셈이므로 첫 번 째 경우에 속한다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주체성의 문제는 생각하는 존재로서 첫 단 추를 제대로 꿰자는 차원에서 매우 중요한 일이다. 이 때 불교가 과연 안심입명처가 될 수 있을까 돌아본다면 어떠한 답을 제시할 수 있을까. 자귀의법귀의(自歸依法歸依), 즉 자신에게 의존하고 진리에 의존하는 일이 그 하나가 아닐까 싶다. 진리와 더불어 살아가는 주인공으로서 우 리 스스로는 어떤 생각에도 매이지 않고자 한다. 그렇다고 생각 없음 따위에도 매이지 않고자 한다. 다만 생각을 창조적으로 자유 자재로 드러내 나가는 향상일로(向上一路) 를 걸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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