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불교의 사원, 그 진정한 역할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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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132호 발행인 원송[서진업] 발간일 2010-11-05 신문면수 3면 카테고리 특집 서브카테고리 -페이지 정보
필자명 석길암 필자법명 - 필자소속 - 필자호칭 - 필자정보 - 리라이터 -페이지 정보
입력자 미디어커넷 입력일시 18-06-23 08:25 조회 2,966회본문
경전의 권수만도 6,000-7,000 권, 번역자로 이름을 등재한 이들의 숫자만도 200명에 이른다. 물론 이름이 알려진 번역자, 남아있는 경전의 권수 만을 따져서 그렇다. 자세히 보면 또 다르다. 흔히 팔만대장경이라고 하듯 이 이들 경전을 인쇄하기 위한 목판의 숫자만 팔만여 판이다. 이것이 전부는 아니기에 숫자는 급격히 증가한다.
때로는 경론의 번역을 위한 역경승 을 국가적 차원에서 양성하기도 했는 데, 이는 역경에 국가의 명운을 걸기 도 했다는 의미이다. 왜 그랬을까? 외 부세계와 접촉할 수 있는 매체가 거의 없었던 당시의 세계에서, 불경은 단순 히 한 종교의 가르침을 담고 있는 것 만은 이’니었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인 도인들의 수천 년의 문화와 사상이 담 겨 있었다. 그리고 불교가 동쪽으로 이동하면서 만났던 서역이라는 세계 또한 담겨있었다. 당시의 중국인들에 게 불교의 경론이란 한 종교의 성전이 기도 했지만, 정보의 대용량저장소이 기도 했던 것이다.
많은 이들은 고대의 역사에 등장하 는 이들 서역 줄신 전법승들과 동아시 아 출신 구법승들을 그저 불교의 전파 에 기여한 승려 정도로만 이해한다. 또 많은 이들은 실크로드를 비단이 거 래된 통상로로만 바라본다. 실크로드 가 문화교류의 현장임을 주목하는 이 들은 많아도, 그 길이 불교와 불교인 들이 가꾸었던 세계를 그대로 동아시 아 이식함으로써 동아시아 사람들의 세계를 완전히 바꾸어 낸 불교의 길, 다르마의 길임은 알차 못한다.
동아시아의 불교사원이 과거의 사원 처럼 더 이상 새로운 지식문화의 종합 정보센터일 수 없다면, 최소한 작금의 문화를 재해석하고 걸러내어 미래의 대안을 재창조하는 공간일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연후에야 오늘날의 세계에 서 불교의 입지를 고민할 수 있는 기 본 자격이 주어질 수 있지 않을까?
우리나라에서는 사찰 그 중에서도 좀 이름이 알려진 큰 사찰을 찾으면 반드시 만날 수 있는 공간 중의 하나 가 판전 이다.
고려시대의 불교는 제지술 과 인쇄기술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는 데, 국교의 위치를 점하고 있던 불교 경전의 사경과 인쇄에 대한 수요가 막 대했기 때문이다. 전 국가적 차원에서 호국신앙%서의 불교가 강조되었기 때문에 이전 시대보다 훨씬 더 많은 불경의 간행이 이루어졌다. 특히 고려 의 사경 은 신앙적 그리고 수행 적 차원에서 이루어졌던 것으로 보이 는데, 왕실의 주도로 이루어졌던 금니 사경들의 예술성은 비교의 대상이 드 물 정도로 뛰어난 것이었다. 오죽하면 원나라 황실에서 고려 사경의 뛰어남 을 찬탄하면서 국가 차원에서 고려 사 경승 들의 파견을 요청하였겠 는가. 사경과 인쇄가 활발했다는 것은 자연스럽게 종이의 품질을 끌어올리게 된다. 고려는 지장 을 두어 종이 의 수요에 대응하고자 하였으나, 사찰 을 비롯한 민가의 종이 수요까치 감당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국가 다음으로 많은 종이를 소비할 수밖에 없었던 사찰들로서는 사찰에서 소용되 는 종이를 독자적으로 생산했던 것으 로 보인다. 불교가 억압받았던 조선 시대에 사찰의 공납품으로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했던 것 중에 하나가 종이 였다. 고려 시대에 사찰의 수요에 대
응하기 위해 발전되었던 사찰의 제지 술이 조선시대에는 착취의 대상이 되 었으니 아이러니한 사태라 아니할 수 없다.
오늘날 한자문화권을 영역으로 하는 동아시아 불교권은 한국과 중국, 대만, 일본, 티베트 및 동남아시아 일부 지 역만으로 축소되어 있다. 게다가 그 권역에 자리하고 있는 불교사원들의 입지 또한 심각하게 축소되어 있다. 이러한 사태의 원인으로는 무엇보다도 지난 세기 동안 전 세계를 휩쓸었던 서구화 혹은 근대화의 영향을 가장 먼 저 지목해야겠지만, 동아시아의 불교 사원의 기능이 축소되었던 데서도 그 원인을 찾아볼 수 있다.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불교사원들은 대부분 신행 공간으로서 의 기능만.가진다. 사실 불교나 기독 교를 막론하고 오늘날의 종교 공간들 이 신행공간으로서의 기능을 위주로 짜여지게 된 데는 근대화가 이루어지 는 동안 종교의 사회적 영역이 축소된 것에 가장 큰 원인이 있다. 쉽게 접할 수 있는 집 주변의 사원이나 교회는 대부분 신행공간으로서의 역할만 담당 하고, 오랜 역사적 전통을 가지고 있 는 종교공간들은 거기에 더하여 전통 문화의 전시관으로서의 기능이 더 강 한 것이 현실이다. 특히 동아시아 세 계에서 불교사원은 어떤 경우에는 신 행공 간으로서의 기능보다는 전통문화 의 보존공간이자 전시관으로서의 기능 이 더 강한 경우도 심심치 않게 나타 난다. 그러나 우리는 정작 중요한 부 분을 소홀히 하는 우를 범하고 있는 듯하다. 필자는 여기에 새로운 기능, 너무 오래되어 잊어버렸던 기능을 되 살릴 것을 추천한다. 실크로드에 흩어 져 있던 석굴사원들이 했던 불전의 재 편집 기능, 중국과 백제의 불교:사원 들이 수행했던 역경장의 기능이 그것 이다. 실크로드의 사원들이 '했던 불전 의 재편집은 시대와 장소에 맞는 불전 의 재해석을 의미한다. 중국 불교 초 기에 이루어졌던 ‘격의 처음 전 해진 불교의 가르침을 바르게 이해하 기 위해서 중국인들이 자신들의 사유 에 맞주어 불교의 가르침을 해석하던 것)’ 가 바로 그런 경우이다. 제대로 된 격의는 전통의 불전에 대한 명료한 이 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여기에 필요한 것이 바로 번역이다. 이 시대의 사람 들이 읽을 수 있는 번역이 필요한 것 이다. 어쩔 수 없는 경우도 있겠지만, 일부만 이해하는 그런 번역이 아니라 대중이 이해할 수 있는 번역이 필요한 것이다.
불전의 새로운 번역과 불전의 재해석 은, 당연한 말이겠지만 불교사원이 아 닌 다른 어떤 곳에서 행해주는 것이 아 니다. 불교사원들이 그러한 작업들을 제각기 또는 힘을 모아서 수행해나갈 때, 과거 속에 잊혀져버린 문화전시관 이 사회를 변혁해가는 수행자의 산실로 다시 한 번 탈바꿈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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