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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정대성사의 설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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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135호 발행인 지성[이기식] 발간일 2011-02-09 신문면수 5면 카테고리 설법/경전 서브카테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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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18-06-13 08:46 조회 1,98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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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정대성사의 설법

새로운 종풍운동에 나오는 법구 절에서 종조법설집(宗祖法說集)은 어떻게 표현되어 있는지 찾아보았 습니다. 내용과 상이(相異)한 부분 도 있습니다. 종조탄신제를 맞아 종조님의설법을 되새기는 뜻에서 구성하였음을 참고하여 주시기 바 랍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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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정진(精進) 


1. 수도(修道)에는 불퇴전(不退轉)으 로 수행(修行)해야 

수도(修道)는 종교적(宗敎的) 욕구 (欲求)를 충족(充足)시키기 위하여 영 원(永遠)한 진리(眞理)를 체현(體現) 하려면 가치(價値) 실현(實現)을 위 (爲)한 인격활동(人格活動) 즉, 실천 (實踐) 수행(修行)이 수반(隨伴)되지 않을 수 없다. 미망(迷妄)된 현실(現 實)은 결(決)코 신(神)이 조작(造作) 한 것도 아니요, 인(因)도 없고 연(緣) 도 없이 이루워진것도 아니다. 모든 인간(人間) 자신(自身)이 지은 것이므 로 인간(人間) 스스로가 이에 책임을 지고 불행한 현실을 극복하지 않으면 안된다. 여기에 불퇴전(不退轉)의 인 간(人間) 수행(修行)의 필요성(必要 性)이 있는 것이다. 


2. 삼밀관행 

육대(六大)를 체(體)로 하여 연기 (緣起)하는 만상(萬相)들은 반드시 모 든 작용(作用)을 일으키는 것인데 이 것을 신(身), 구(口), 의(意) 의 삼밀 (三密)이라 한다. 이를 현교에서는 삼 업(三業)이라 하여 좋은 대조(對照)가 된다. 이 삼업(三業)을 정화(淨化)하는 것이 곧 삼밀(三密)이니 즉, 부처님의 가지력(加持力)과 관행자(觀行者)의 공덕력(功德力)과 법계(法界)의 통합 력(統合力)에 의하여 정화(淨化)되는 것이므로 삼밀관행(三密觀行)으로 공 덕(功德)이 일어나는 것이다. 밀교에서 즉신성불(卽身成佛)의 진 언문(眞言門)을 개창(開創)한 것은 저 양일승(兩一乘)이 사유적(思惟的)인 선관(禪觀)에만 의(依)하여서 진리를 각오(覺悟)하려 하는 유심적(唯心的) 인 그 경향(傾向)을 차원(次元)높이 끌어올려서 삼밀로써 행득(行得)하는 전인적(全人的)인 불이문(不二門)을 개현(開顯)하는 것이다. 이것을 진언비밀보리도(眞言秘密菩 提道)라고 함이니 이를 실수(實修)하 여 본존(本尊)의 삼밀(三密)과 행자 (行者)의 삼밀(三密)이 상응(相應)하 여 평등법계(平等法界)를 자증(自證) 하게 된다. 즉 우주법계(宇宙法界)의 일체형색(一切形色)은 법계법신(法界 法身)의 신밀(身密)이요, 우주법계(宇 宙法界)의 모든 음성(音聲)은 법신구 밀설법(法身口密說法)이며 형색음성이 밀(形色音聲二密)에서 활동하는 그 진 리(眞理)는 그 모두가 법신여래의 의 밀이다. 이에 대한 행자들의 관행(觀 行)하는 삼밀행(三密行)은 법신여래 그 삼밀이 행자개체(行者個體)에 연기 (緣起)하고 분화(分化)하여 있는 것에 다름이 없는 까닭에 본존여래(本尊如 來) 삼밀(三密)이나 관행자(觀行者)의 삼밀이나 본래일여평등(本來一如平等) 으로 삼삼평등관(三三平等觀)이 되는 것이므로 이것을 즉신성불(卽身成佛) 이라 한다. 



B. 보시(布施) 


1. 희사(喜捨) 

(1) 무상희사(無相喜捨)는 삼륜체공 (三輪體空)하여 보시를 행한 사람 보 시를 받는 사람 보시한 물건을 모르는 까닭에 그 공덕이 허공과 같아서 한량 이 없느니라. 

(2) 십일희사는 무주상보시(無住相 布施)므로 그 공덕이 다른 보시보다 백천만배가 크고 세세로 불과가 무량 할지니라. 그것은 무소득(無所得)이며 무상(無相)인 까닭이니라. 

(3) 조석에 어른의 밥을 먼저 담는 것과 같이 수입할 때 제일 먼저 부처님 께 바치는 십일희사법을 세우면 가난과 곤난은 떠나고 안락과 행복이 오느니라. 

(4) 물질시대는 재물을 무정하게 벌 고 불의하게 쓰는 두가지 악이 점점 성해진다. 이것을 다스리자면 먼저 옳 게 쓰는 법으로 인도해야 하느니라. 

(5) 물질시대의 재물은 희사로 복되 게 나가는 것과 고통으로 나가는 두 문이 있으므로 복의 문을 힘써 여는데 재화로 나가는 문이 닫혀진다. 만약 부정하게 들어온 재물(財物)에 희사문 (喜捨門)을 열지 않으면 그 재화(災 禍)는 한량이 없느니라. 

(6) 희사묘덕(喜捨妙德)은 현재에는 곤난(困難), 재앙(災殃), 우환(憂患), 질 병(疾病)을 소멸하고 미리 없애며 미래 에는 부귀하고 복있는 사람이 되느니라. 

(7) 희사묘덕은 가난한 사람에게 수 입이 많아지고 부유(富裕)한 사람에게 는 여러 가지 헛되게 나가는 것이 적 어지는 것이니 각자가 절량(節糧) 차 별(差別) 십일희사를 실천하여 그 묘 덕을 내증(內證)하여 볼 것이니라. 

(8) 절량희사 묘덕은 양식(糧食)이 떨어지지 아니하고 일체 재난(災難)이 일어나지 아니하며 차별희사 묘덕은 무슨 서원이든지 다 이루어지는 것을 알게 되느니라. 

(9) 절량희사는 생미(生米)로써 불 공 함이라. 때마다 식구마다 정성으로 부처님께 공양하는 것이므로 세계로 자량(資糧)이 증장(增長)하고 복덕이 무량하다. 



C. 수순 (隨順) 


1. 마음을 바로 닦자. 

은혜는 평생으로 잊지를 말고 수원 (讐怨)은 일시라도 두지를 말라. 내가 어버이에게 효순(孝順)하면 자식이 어 찌 효순하지 않겠느냐. 효순은 심덕 (心德)의 대원(大元)이요 백행의 근본 이며 보리행의 으뜸이 되는 것이니라. 이 마음을 잘 닦자면 나라에 충성하 고 부모에게 효순하며 가정에 화목하 고 친구에게 신(信)을 두고 남에게 불 의(不義) 하지말며 산목숨 죽이지말고 남의 재물 훔치지 말며 내 가속(家屬) 두고 남의 사람 욕심두지 말며 모진 악담 하지말며 두 말로 사람을 속이지 말며 말을 이리저리 꾸미지 말며 남의 못된 험담 하지말며 못된일 하지말고 착한 일만 하는 것이 이 마음을 잘 닦 는 것이니라. 「옴마니반메훔」을 어찌 이렇게 외우 는가. 이 진언을 외우는데 비로자나부 처님의 설법을 듣게 되어서 이전에 잘 못한 것을 알게되고 마음이 곧 고쳐지 게 되느니라. 마음 고치는데는 어떠한 방법이 있 는가. 관음보살 본심진언(本心眞言) 「옴마니반메훔」을 오나가나 항상 외 우고 하루 열 번 이상 자성참회(自性 懺悔)만 하면 탐진치(貪瞋癡)는 물러 가고 본심(本心)이 일어나게 된다. 부처님께 불공하는 것은 무슨 뜻으 로 하는가. 내마음을 닦고 밝히는 법 을 세우려고 한다. 어리석은 것은 무엇인가. 사견(邪見)에 집착하여 인과이치(因果 理致)를 모르는 것이 어리석은 것이다. 내 허물을 어떻게해야 쉽게 알 수 있는가? 남이 내 허물을 말하거든 즐겁게 듣 고 스승과 친구와 부모와 형제에게 묻 는 것이 속히 알게 된다. 


2. 감사하는데 병이 낫는 원리 

현상적(現象的)으로 나타난 인간은 적어도 몇백조의 세포에 의하여 구성 되어 있다. 이들 세포의 특성은 생장 하고 분열하고 증식하는 것이다. 즉 신체는 살, 혈액, 뼈는 육십년마다 전 연 새로운 것과 교체되고 새로 생긴 다. 이와같이 가경(可驚)할 인체의 세 포활동(細胞活動)은 우주의 현리(玄 理)로서 영적가능성(靈的可能性)을 부 여한 것이다. 이 세포가 곧 상념(想念) 의 집합체이다. 그러므로 우리들의 잠 재의식, 즉 상념활동이 과거와 달라질 때 과거의 상념생활(想念生活)에서 얻 었던 병이 의식(意識)의 변화(變化)로 낫게 되는 것이다. 참회(懺悔)와 보은 (報恩), 감사(感謝)로서 병이 낫는 원 리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것이 정신 과학이다. 


3. 순리(順利) 

땅에 엎어지면 땅을 짚어야 일어난다. 육대사만삼밀은 법신불의 응화신인 즉(卽) 조화체(造化體)로서 인과의 진 리를 소소영령(昭昭靈靈)하게 밝혀 주 는 지극공도(至極公道)이며 만물을 생 성화육(生成化育)하고도 조금도 상을 나타내지 않는 응용무념(應用無念) 순 환(循環) 무궁(無窮) 영원 불멸 순리 자연(順理自然) 광대무량의 체성이다. 



D. 생활불교 


1. 인간(人間) 

과학문명(科學文明)이 발달(發達)할 수록 인간은 인간성(人間性)을 잃고 향락적(享樂的), 타락적생활(墮落的生 活)에 주저(躊躇)하지 않고있다. 과도 (過度)한 향락(享樂)은 타락(墮落)을 초래(招來)한다. 그러므로 이시대(時 代) 만큼 인간성(人間性)이 요구(要 求)되는 시대(時代)도 없으며 따라서 그 가치(價値)도 높아진다. 이것은 곧 종교활동(活動)과 종교적(宗敎的) 신 앙생활(信仰生活)에서 인간성을 높여 야한다는 것을 의미(意味)한다. 인간은 저마다 선(善)을 주장(主張) 하지만 마음속에 이기주의(利己主義) 가 도사리고 있는한 그것은 위선(僞 善)에 불과하다. 진실(眞實)한 선이란 다만 봉공(奉公)이다. 이타(利他)에 있 는 것이다. 즉(卽) 소아(小我)를 떠나 대아(大我)에 봉사(奉仕)해야 한다. 인간은 목석(木石)이나 금수(禽獸) 가 아니다. 그것은 그 의식구조(意識 構造)의 탁월성(卓越性)이니 바로 잘 잘못을 아는 의식의 주인공(主人公)이 다. 이것은 곧 가치판단(價値判斷)으 로 확대(擴大)되어 의식에만 그치지않 고 행동화(行動化)되어 생활에 나타나 고 있는 것이다. 선악(善惡)의 판단(判斷)은 결(決) 코 전통적(傳統的)인 교육(敎育)의 결 과로서 비로소 가능(可能)하게 된것이 아니라 인간이면 누구든지 선천적(先 天的)으로 그것을 알만큼 판단의 가능 성(可能性)을 그 의식 기능(機能)속에 지니고 태어난 존재(存在)이다. 단적 (端的)으로 인간은 잘못을 뉘우칠 줄 아는 가장 고귀(高貴)한 마음을 가지 고 있는 것이니 인간의 기본적(基本 的)이며 동시에 최대(最大)의 특유성 (特有性)인 참회(懺悔)하는 마음이다. 금수(禽獸)는 참회하는 눈물이 없다. 이 참회없이 교육(敎育)을 통(通)한 지식(知識)만 있는 자는 그 지식을 악 용(惡用)하여 자기의 죄과(罪過)를 합 리화(合理化)하려 들고 선(善)을 가장 (假裝)한 위선(僞善)에 기교(技巧)를 부리기에 힘쓰며 진정(眞正)한 선(善) 을 부정(否定)하려든다. 그러므로 인 간이 된 연후(然後)에 지식을 가져야 그 지식이 자타(自他)에 도움이 될 것 이다. 이것이 선후본말(先後本末)의 원리(原理)인 것이다. 사람은 본질적(本質的)으로 악 하거 나 본질적으로 선하기만한, 결정(決定) 되고 완료(完了)된 존재(存在)가 아니 다. 부처님도 어떤 사람을 그 사람 자 신의 힘으로는 어쩔수 없는 어떤 고정 (固定)된 운명(運命)에 결박(結縛)시키 지는 못하는 것이다. 쉽고 어려운 구별 (區別)은 있을망정 인간에게는 그가 스스로 자신의 미래를 형성(形成)할 능력이 부여(賦與)되어 있다. 보살도 되고 성불(成佛)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인간의 존엄성(尊嚴性)이다. 생활(生活)과 교조(敎條)를 원만(圓 滿)하고 정당(正當)하게 결부(結付)시 켜야만 생활불교가 되는 것이다. 교조 (敎條)를 위주(爲主)로 한다면 생활은 교조의 노예(奴隷)가 될 것이요, 생활 을 위주로 한다면 교조는 한갓 공염불 (空念佛)에 불과(不過)하다. 이율배반 (二律背反)이 있어서는 아니된다. 불설 (佛說), 그것은 곧 인간생활의 향상(向 上)을 위한 것이며 그에 입각(立脚)한 생활은 곧 진리(眞理)이기 때문이다. 



E. 중생제도 


1. 법시공덕(法施功德) 

법시공덕은 삼종시(三種施) 가운데 최상이라고 경(經)에 설하시고 부처님 께서도 성도(成道)하신후 먼저 다섯사 람을 제도(濟度)하여 불법승(佛法僧) 삼보(三寶)가 서게 되었으므로 우리교 에서도 누구든지 다섯집을 제도하여야 하느니라. 그 복덕은 부처님과 같이 세세(世世)로 무궁하고 현세에서도 결 정코 소원이 성취되느니라. 


2. 속제(俗諦)와 진제(眞諦) 

지혜는 여러가지가 있다. 세간지(世 間智)가 있고 출세간지(出世間智)가 있다. 세간지란 것은 육안(肉眼)으로서 보고 배우고, 출세간지란 것은 심안(心 眼)으로서 관(觀)하여 깨치는것이다. 출세간지에는 방편지(方便智)가 있고 또 진여실상지(眞如實相智)도 있다. 중생의 지혜와 불의 지혜가 이것이 니라. 중생의 지혜란 옅고 사람을 속 이고, 불의 지혜란 깊고 넓어서 사람 을 제도하나니라. 전자는 탐욕이 있는 까닭이며, 후자는 자비가 있는 때문이 니라. 그러므로 반야(般若)는 소득이 없음으로써 그 근본을 삼느니라. 


3. 중생구제는 실천 

세상을 구제하는 데는 이론이 필요 없다. 요는 실천이다. 물에 빠진 자는 먼저 언덕에 올려 놓고 옷과 먹을 것 을 준 후에 그 다음 빠진 원인과 신분 을 물어야 한다. (금강(金剛)산, 솔거 화송(率居畵松) 등 예술과 구경도 좋 지마는 급급한 중생(重生) 구하는 데 는 실천이 요선(要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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