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체 존재의 이치를 깨닫다 - 성도지(成道地)『 붓다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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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138호 발행인 지성[이기식] 발간일 2011-05-04 신문면수 12면 카테고리 특집 서브카테고리 -페이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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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18-06-07 15:13 조회 2,129회본문
불기2555년 부처님오신날 특집기획 2 ‘불교 4대 성지’를 가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은 곳이‘붓다가야’ 이다. 이 붓다가야는 우르빌라라고 불리는 작은 마을이 다. 2600여 년전 고타마 싯달타 태자가 카필라성에서 모 든 부귀와 영화를 버리고 출가한후 오랜 고행 끝에 깨달 음을 이룬 곳으로 알려져 있는 성도지이다. 왕자의 신분 을 버리고 수행자가 된 싯달타 태자는 여러 스승들을 만 나 가르침을 받았지만 만족을 느끼지 못하자 스스로 수 행하여 깨달음을 얻고자 찾아온 곳이 버바로 이곳‘붓다 가야’의 동쪽에 위치한 고행림(苦行林)이었다. 고행림은 원래 수행하기에 좋은 장소라고 알려진 곳으로 그 당시 에는 약 2만여명의 수행자들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 경전에 의하면 고타마 싯달타는 카필라성 바깥으로 나와서 성의 주위를 흐르고 있는 아노마강을 건너 아누 피야 숲속에서 스스로 머리를 자르고 그때 옆을 지나던 사냥꾼이 노란 가사를 입고 있는 것을 보고 자신이 입고 있던 바라나시산 실크로 만든 옷과 바뀌 입은 후 수행자 의 모습을 갖추었다고 한다. 사냥꾼이 노란 가사를 입고 사냥을 하는 이유는 사냥꾼이 가사를 입고 사냥을 하면 짐승들이 해치지 않는다고 믿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옷 을 갈아 입은 싯달타 태자는 먼 길을 걸어 당시 문화의 중심지였던 베살리(바이샬리)에 도착한다. 여기서 알라 라 칼라마 선인을 만나고 무소유의 가르침을 받는다. 그 러나 그에 만족하지 못하고 또다시 라즈기르(왕사성)의 웃다카 라마풋다라고 하는 선인을 만나 가르침을 받게 된다. 그러나 많은 스승들에게서 가르침을 받았지만 깨 달음을 얻을 수 없다고 생각한 태자는 그때 당시 수많은 수행자들이 모여서 생활하던 이곳 가야로 오게 된다.
원 래는‘가야’라고 불리었는데 싯달다 태자가 깨달음을 이 루고 나서는‘붓다가야’라고 이름 붙여졌다. 고행림에 자리 압은 싯달타는 고행을 시작하였다. 처 음에는 음식을 하루 한끼를 먹었으나 얼마 지나서는 하 루에 쌀 한톨과 깨 한톨만을 먹고 오직 명상에만 집중하 였다. 지독한 고행을 하기를 6년. 몸은 말라가서 손으로 배를 만지면 등뼈가 만져지고 눈은 해골처럼 들어가서 빰에는 가죽만 남았다고 한다. 오로지 명상만을 하며 스 스로 마음을 조절하고 있는 싯달타를 보면서 다른 수행 자들은 놀라워 할 뿐이었다. 그렇지만 깨달음은 쉽게 오 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그렇듯 혹독한 고행을 하고 있는 시달타의 건강을 염려한 천신들이 명상에 잠겨 있 던 싯달타의 눈 앞에 선녀들을 내려보내 이런 노래를 들 려주었다. “기타의 줄을 너무 팽팽히 조이지 말라. 줄을 너무 팽팽히 조이면 그 줄은 끊어질지 모른다. 그렇다고 줄을 너무 느슨하게도 하지말라.
너무 느슨하면 노래소 리는 울리지 않을 것이다” 싯달타는 그 선녀들의 노래에서 중도의 교훈을 얻었 다고 한다. 즉, 열반에 이르기 위해서는 엄격한 고행을 하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고, 편안함과 고행의 적절한 조 화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싯달타 태자는 지나친 고행과 단식이 열반을 향해 나아가는 길에 방해가 된다 는 사실을 깨닫고 고행과 단식을 멈추고 네란자라 강가에 내려가 목욕을 하고 그 동안 자르지 않 았던 긴 머리를 모두 깎은 채 다 시 명상에 들어가게 된다. 이미 쇠약해진 몸으로 강에서 언덕으 로 올라가는 일은 쉽지 않았다. 올라갈 힘도 없게 된 싯달타에게 나무여신이 나뭇가지를 내려주어 그것을 잡고 강 언덕으로 올라올 수 있었다고 한다. 언덕에 겨우 올라와 명상에 잠 겨 있던 싯달타 앞에 마침 우르 빌라 성주의 딸인 수자타가 나타 나게 된다. 수자타는 네란자라 강 가에 있는 숲의 나무신에게 공양 을 올리려고 왔는데, 때마침 나무 밑에 앉아 명상에 잠긴 싯달타의 모습을 보고 나무신이라고 착각 하고 싯달타에게 유미죽을 공양하게 된다. 이후로 날마 다 수자타의 공양을 받은 싯달타의 몸에는 힘이 생겨났 고 건강을 회복하기 시작했다. 그런 모습을 지켜 보던 다섯 도반 수행자들(오비구)은‘싯달타는 타락했다. 이 제 우리는 더러워진 수행자와 함께 더 이상 이곳에 머물 면서 수행할 수 없다’라고 말하며 바라나시의 녹야원으 로 떠나 버리고 말았다. 도반들이 떠나가자 싯달타의 마 음에서는 슬픈 마음이 들기도 하였다. 그러던 중에 고행 림에서 내려다 보이는 네란자라강 기슭에 있는 산을 바 라보게 되었는데, 싯달타는 그 산에 올라 그냥 열반해버 리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싯달타가 그 산에 오르자마 자 산은 아주 크게 흔들렸다. 그 이유는 그 동안 수년간 닦아온 공덕을 산에서 사는 신들이 안타까워 하며 수많 은 부처님들이 깨달음을 이룬 곳에서 성도하기를 바랬기 때문이다. 이 산의 동굴 속에 살고 있던 용(龍)은 자신 의 동굴 안에서 싯달타가 성도하기를 원하였으나 싯달타 는 그 용왕이 사는 동굴 안에 자신의 그림자를 남겨두고 떠났다.
그래서 이 동굴의 이름을 유영굴(有影窟)이라 부르게 되었다. 그림자가 있는 동굴이란 뜻이다. 지금은 이 동굴에 티벳사원이 들어서 있다. 이 산의 이름은 전 정각산으로 불리어지고 있다. 동굴을 떠난 싯달타는 피팔나무 그늘 아래의 동쪽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잠시 싯달타는 그 이전의 부처님들 은 어떤 자리를 깔고 앉으셨을까 하고 생각하였다. 이때 이곳에 살고 있는 길상이라는 사람이 나타나 싯달타에게 쿠샤라는 풀을 드렸으며 그 풀을 자리에 깔고 앉으며 스 스로에게 다음과 같이 굳은 약속을 하였다. ‘이 자리에 서 나의 몸이 없어져도 좋다. 하지만 어떤 때라도, 그 누 구도 얻기 어려운 깨달음을 얻지 못하면 나는 결코 이 자리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맹서하였다. 음력 2월 7일 저녁. 환한 달이 비추고 악마의 모든 유혹도 없어진 시간. 육계의 모든 유혹으로부터 벗어난 싯달타는 깊은 선정에 들었다. 첫 번째 선정에서는 욕심과 악을 버리셨으며, 두 번째 선정에서는 잡념을 버렸고, 세 번째는 바르게 생각하는 즐거움을, 네 번째는 고요함과 평온함으로 어떠한 번뇌도 없 는 편안함의 상태에 도달하게 되었다. 밤이 더 깊어지자 싯 달타는 세상의 모든 이치를 다 알 수 있게 되었고, 모든 중생 들이 업에 따라 고통하고 변화 하는 모습이 하나씩 보이기 시 작하였다. 밤은 더욱 깊었다. 싯달타는 지혜의 눈으로 생사 의 근원을 헤아리기 시작하여 성스러운 네 가지의 진리(四聖 諦)를 알 수 있었다. 인간의 삶 이란 고(苦)라는 사실과 그 고 통의 원인은 집(集)이며, 이러 한 고통을 없애는, 즉 멸(滅)은 바로 도(道)에 있음을 알 수가 있었다. 그리고 그 도(道)에 이 르는 바른 길은 바로 여덟가지의 길(八正道)에 있음을 간파하였다. 싯달타는 다시 선정에 들었다. 무엇으로 인해 늙고 죽 음이 있는가? 그것은 태어남이 있기 때문이다. 그 태어 남은 무엇으로 인하여 생기는 것인가? 그것은 세 가지 존재가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세 가지 존재란 욕계?색계?무색계라는 삼계를 말하는 것이다. 이 세 가지가 있게 되는 근거는 바로 집착이 있기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고, 집착은 욕심이 있기 때문에 일어난다 는 것이다. 이러한 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것이 무명 (無明)이다. 이렇게 싯달타는 모든 인간의 괴로움의 근 본을 간파하였으니 바로 인연소생(因緣所生)으로 인하여 생겨난다는 것이다. 결국 인간의 괴로움과 고통이란 것 이 결국 열 두가지의 인연을 거쳐 생겨남을 알게 되었다. 이것이 십이인연(十二因緣), 십이연기(十二緣起)이다. 시간이 흘러 새벽이 되었다. 이때가 음력 2월 8일. 동쪽하늘에 샛별이 떠오르고 있을 때, 싯달타는 마침내 깨달음을 얻게 되었고, ‘진리를 깨달음 사람’이라는 뜻의 붓다 (Buddha), 부처가 되었다. 순간 싯달타의 얼 굴에는 무엇으로 표현할 수 없는 법열(法 悅)이 피어올랐고 그 기나긴 구도의 길은 마침내 끝이 났다. 부처님은 깨달음을 이루 신 뒤 이렇게 외치셨다.
“이제 더 이상 태어 남의 길을 밟지 않을 것이니 이것으로 번뇌 의 마지막이 될 것이로다!!!”깨달음을 통 하여 완전한 해탈, 영원한 열반에 드심을 선 포하신 것이다.
# 유적
1) 마하보디 사원
이 사원은 지금으로부터 2260여 년전인 기원전 250년, 아쇼카왕에 의해 금강좌(金剛座) 위에 세워졌다. 처음에 는 4개의 돌기둥 위에 지붕만을 얹어 간단하게 지어진 사원이었다. 그러다가 서기 5세기경에 와서 현재의 모습 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금강좌는 현재 사원 안에 모셔 져 있다. 그러나 보리수 바로 아래에 철망을 치고 그 안 에 모셔져 있는 금강좌는 사원 바깥에서도 볼 수 있도록 모형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사원 안에 모셔져 있는 금강 좌는 사방 15미터의 기단 위에 52미터의 높이로 세워져 있다.
사원 동쪽에는 중각이 세워져 있고, 사원 입구의 좌우에는 관자재보살과 미륵보살상이 모셔져 있다. 사원 안에는 오른손을 땅을 향해 짚고 있는 불상이 모셔져 있 는데 이 본존불은 13세기경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오른손으로 땅을 가리키고 있는 형상은 부처님께서 성도 를 이루려 하실 때 스스로의 인내력으로 악마의 유혹을 물리칠 수 있음을 나타낸 것이다. 손으로 땅을 가리키자 땅에서 지신(地神)이 나와 그 증인이 되어 주었다는 전 설을 담고 있다.
2) 보리수
보리수는 원래 피팔나무라고 불렸으나 부처님께서 이 나무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었다고 하여‘깨달음의 나 무’, 즉‘보리수(菩提樹)’로 불려지게 되었다. 전설에 의하면, 이 나무는 싯달타가 룸비니에서 태어 나실 때 이 자리에 솟아 올랐다고 하며 해마다 여래의 열반일이 되면 나뭇잎이 모두 떨어지고 며칠이 지나면 다시 나뭇잎이 피어난다고 한다. 현재의 나무는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이룰 당시의 것이 아니고, 원래의 보리수 나무의 손자격에 해당하는 것으 로 아쇼카왕이 부처님의 법을 널리 알리고자 딸인 상가 미타 공주로 하여금 스리랑카의 아누라다푸라에 어린 묘 목을 심도록 하여 무성하게 자란 나무의 어린 묘목을 다시 가져와서 자란 것이라 고 한다. 말하자면 역수입된 것이다. 현 재의 보리수 나무는 약 27미터에 이른다.
3)금강좌(金剛座)
원래의 금강좌는 마하보다사원 안에 있고 사원 뒤에 만들어진 지금의 금강좌 는 5세기경 굽타왕종시대에 만들어진 것 이라고 전해진다. 싯달타 태자가 깨달음 을 얻기 이전에 1,000분의 부처님이 금강 정에 들어 해탈을 얻은 곳이기에 금강좌 (金剛座)라 하고 깨달음을 연 곳이라 하 여 보리도량이라고도 한다.
4)불족석(佛足石)
금강좌 좌측에는 깨달음을 얻은 후 부 처님께서 처음으로 걸음을 걸었다는 곳 에 족적이 돌로 새겨져 있다. 길이 약 90센티미터의 발 바닥 모양에는 법륜(法輪), 물고기, 차크라의 문양이 새 겨져 있었다고 한다.
5) 아쇼카왕 석주
아쇼카왕은 이곳에 두 번 찾아왔다고 한다. 처음에는 금강좌 사원을 세웠고 두 번째는 보리수 주변에 돌담을 치고 석주를 세웠다고 한다. 이 석주의 꼭대기에는 코끼 리 머리상이 얹혀져 있었다고 하는데, 무칠린다 용왕 못 앞에 있는 석주를 아쇼카왕 석주라 부르고는 있지만 그 사실여부는 확실치 않다고 한다. 아쇼카왕은 부처님과 관련된 곳을 위시하여 수많은 곳에 석주를 세우고 꼭대 기에는 여러 가지 상(像)을 세웠는데, 대표적으로 바라나시의 사르나트(녹야 원), 산치, 베샬리, 왕사성 등에 세운 석주 위에는 사자상을, 람푸르바에는 황소상을, 룸비니의 석주에는 말 머리 상을, 붓다가야와 상카시아의 석주에는 코끼리상을 세웠다. 이는 부처님의 전 생담을 담은 자타카, 담마파다, 숫타니 파타 등의 경전에서 묘사된 부처님의 용감하고 훌륭한 인격을 상징한 것이라 고 한다. 이 가운데 가장 특별한 석주 상이 사르나트의 4사자상이다. 네 마리 의 사자를 상으로 삼은 것은 여기 뿐이 다. 아마 탄생지, 성도지 보다 초전법륜 지의 중요성을 부각시킨 듯하다. 전법 (傳法)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다.
6) 깨달음을 얻으신후 부처님은 보리 수 주변에 49일간 머물면서 명상을 하셨는데, 그곳이 일 곱 곳인데, 지면 관계상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7) 붓다가야 주변 유적지
① 수자타의 집터
부처님께서 성도하기 전에 유미죽을 공양올렸던 우리 빌라 지방 성주의 딸 수자타의 집으로 추정되는 곳이 마 하보디 사원에서 동쪽으로 2km 정도 떨어져 있다.
② 전정각산(前正覺山)과 유영굴(有影窟)
네란자라강 건너에 몇 개의 산봉우리를 가진 바위산이 보이는데 이것이 바로 전정각산이다. 이곳은 싯달타가 수자타의 공양을 받아들인 것을 보고 싯달타가 타락하고 더러워졌다고 여긴 다섯 도반들이 녹야원으로 떠나버린 후 싯달타가 깨달음을 얻음과 동시에 바로 열반에 이르 고자 하는 생각으로 찾아온 장소이다. 이곳의 동굴에 사 는 용은 자신의 굴에서 깨달음을 얻기를 간청하자 싯달타 는 용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하여 그림자를 이곳에 남겨두 고 떠났다하여 이곳을 유영굴이라 부르게 되었다. 또한 이 산을 깨달음(정각)에 이르기 전에 오른 산이라 하여 전정각산(前正覺山)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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