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선우감독의<화엄경> “세상 전부가 어머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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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139호 발행인 지성[이기식] 발간일 2011-06-01 신문면수 11면 카테고리 영화이야기 / 신행 서브카테고리 -페이지 정보
필자명 김은주 필자법명 - 필자소속 - 필자호칭 - 필자정보 자유기고가 김은주 리라이터 -페이지 정보
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18-06-07 13:45 조회 2,267회본문
장선우감독의<화엄경> “세상 전부가 어머니구나!”
내가 다니는 절에는 수다쟁이가 두 사람 있습니다. 이들 수다쟁이는 서로를 싫어합니다. 그런데 놀랍게 도 서로를 싫어하는 이유가, 상대가 말이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상대가 말이 많아서 싫다고, 침을 튀기며 흉보는 걸 보면서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다른 수다쟁이를 욕하 는 또 다른 수다쟁이는 자기는 수다 쟁이가 아니라고 생각하는구나, 자 신도 말이 많으면서 말 많은 사람을 싫어하는구나, 입니다. 만약 내가 누군가의 모습을 보면 서 화가 나고 괴롭다면 그 모습 속에 내 모습이 있는 것이구나, 하는 깨 달음을 얻었습니다. 그 모습이 내 모습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하지만 사실 상대의 끔찍한 모습 은 내 모습인 것입니다. 어쩌면 상대는 싫은 모습 을 보여줘서 내게서 나쁜 습관을 고쳐주기 위한 불 보살의 화현일지도 모른 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장선우 감독의 <화엄경 >은 어린 소년이 다양한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서 깨달음을 얻어가는 이 야기입니다. 영화 속에서 선재가 만나는 사람들 중 에는 어느 한 사람도 필 요 없는 사람은 없었습니 다. 여자만 밝히며 건들 거리는 장꾼도, 술독에 파묻혀 세월을 죽이는 별 박사도 모두 그에게는 스 승이었습니다. 한 명 한 명이 다 소중 했습니다.
결국에 가서는 선재가 만났던 모든 사람 들이 그토록 찾아 헤매던 어머니의 다른 모습이었 습니다. 소년을 키워주고 가꿔주는 어머니인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보 면 절에서 만났던 수다스런 보살도 나의 스승이었습니다. 내게 깨달음 을 주었으니까요. 이렇게 세상에는 스승 아닌 게 없습니다. 본격적인 구도영화를 표방한 장선 우 감독의 <화엄경>은 고은의 소설 <화엄경>을 원작으로 했습니다. 한편 고은의 <화엄경>은 <대방광불화엄경 > <입법계품>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 다. 고은의 <화엄경>이 53선지식을 찾 아가는 선재동자의 여정을 따라갔다 면 장선우의 <화엄경>은 우리나라를 배경으로 현시대를 살아가는 다양한 군상을 통해서 깨달음을 얻어가는 어린 소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주인공 선재는 어린 시절 자신의 이름이 박힌 노란 담요에 싸여 버려 진 소년입니다. 한때는 전과자였으 나 선재를 만나면서 넝마주의로 살 아가는 문수에 의해 길러집니다. 그 러다 그 문수마저 죽자 선재는 자신을 감쌌던 모포 한 장을 갖고 길 을 떠납니다.
떠남의 목 적은 ‘어머니를 찾아 서’입니다. 그런데 단서 라고는 담요 한 장밖에 없는데 이 넓은 세상에 서 어떻게 어머니를 찾 겠다는 것인지, 모래 속 에서 바늘을 찾는 것만 큼이나 무모해보입니 다. 선재의 아버지 문수 는 죽기 전 선재에게 어머니를 찾는 방법을 가르쳐줍니다. “착한 사람을 보면 눈을 크게 뜨고, 나쁜 사람을 만나면 고개를 돌리고, 그러다 보면 반 드시 어머니를 찾게 된 다.” 문수의 사고는 이분법적입니다. 착 한 사람과 나쁜 사람을 편 가르기를 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런 가치관 이 세상 사람들의 일반적인 가치관 일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런 식으로 무 자르듯 나와 남을 가 르고, 이 세상과 저 세상을 가르고, 좋은 이와 싫은 이를 가르고, 옳고 그름을 가르고, 좋은 일과 나쁜 일을 가르면서 분열된 세계 속에서 살아 갑니다. 그래서 길을 떠난 후 가장 먼저 만난 법운을 보고 선재는 고개를 돌 립니다. 왜냐하면 그의 눈에 비친 법 운은 나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승려이면서 술과 고기를 맛있게 먹 는 법운의 모습이 어린 선재에게 좋 을 리 없었습니다. 선재의 예상은 빗 나가지 않았습니다. 법운은 자신이 먹은 술값과 밥값을 선재에게 지불 하게 했습니다. 그러면서 피리를 그 댓가로 주었습니다. 불지 못하는 거 라 필요 없다고 하는데도 막무가내 로 맡기고 가버렸습니다. 그런데 껄렁해보였던 법운이 선재 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는 중요한 역 할을 하는 인물이었습니다. 미리 나 쁜 사람이라고 짐작하고 고개를 돌 렸던 그 법운이 사실은 선재의 가장 큰 스승이었던 것입니다. 땡초로 보였던 법운은 어린 선재 에게 문수와는 다른 방법을 가르쳐 줍니다.
어머니를 찾기 위해서는 지 혜를 길러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 니까 선재의 원래 목적은 어머니인 데 그 어머니를 찾기 위해서는 지혜라는 수 단이 필요하고, 그 지 혜를 얻기 위해 선지 식을 찾아다녀야 한다 는 것입니다. 법운의 생각은 대승 불교의 핵심사상이라 는 생각이 듭니다. <반 야심경>에도 나오지만, ‘반야’라는 지혜를 통 해 피안의 세계인‘바 라밀’에 이른다고 했 습니다. 그러니까 지혜 를 통해‘어머니’라는 상징으로 표현된 피안 의 세계를 얻음을 보 여주는 것입니다. 그러 니까 선재에게서 ‘어 머니’라는 상징은 선 불교적 표현을 빌리면 ‘불성’입니다. 때로는 ‘고향’이라고 표현하는 ‘어머니’를 찾기 위해 선불교에서는 참선을 하고, 아미타신앙을 추구하 는 이들은 염불에 일념정진할 것입 니다. 그런데 선재는 세상 속에서 지 혜를 구하고자 합니다. 즉 현실과 격 리된 세계에서 홀로 수행하는 게 아 니라 세상 사람들 속에서 깨달음을 구합니다. 선지식을 찾아다니며 배움을 구하 는 것입니다.
그런데 선지식이라고 칭하는 사람들은 상식적인 선지식하 고는 사뭇 다릅니다. 어린 아이에게 밥값을 내게 하는 법운을 시작으로 욕쟁이 의사 해운, 장기수 해경, 그 리고 장님가수 이나와 별을 관찰하 는 소년 김박사가 있습니다. 이밖에 도 장꾼 지오나 이련이라는 여인, 자 비심이 넘치는 등대지기가 있습니 다. 선재는 이들에게서 사람이 바다보 다 우주보다 더 크다는 것을 배우고, 평등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서도 배 우게 됩니다. 소년 김 박사에게서는, 한 번 태어난 것은 언젠가 소멸한다 는 것을 배웁니다. 이미 이렇게 많은 사람들과의 만 남을 통해서 선재는 지혜를 얻었습 니다. 법운의 가르침대로 선지식을 찾아다니며 지혜를 쌓았습니다. 지 혜를 얻으면 어머니를 찾을 수 있다 고 했는데, 이제 그 마지막 관문을 남겨두고 있습니다. 선재와 어머니 의 만남은 영화의 절정이자 선재가 새로운 사람으로 재탄생하는 특별한 상황이기도 합니다. 긴 여행에 지친 선재는 어느 곳에 쓰러집니다. 쓰러져서 잠에 빠집니 다.
꿈속에서 어머니라고 여겨지는 여인을 만납니다. 여인은 곱게 한복 을 차려입고 연꽃을 들고 있습니다. 매우 성스러워 보이는 모습입니다. 선재를 낳아준 물리적 어머니라기 보다는, 정신적인 어머니, 즉 신의 영역을 느끼게 하는 어머니입니다. 선재는 마침내 그 어머니의 품에서 참으로 깊고 편안한 잠을 잡니다. 그 리고 어머니에게 묻습니다. “왜 이제 오셨습니까?” “나는 여러 가지 몸을 나타내어 언제나 네 옆에 있었다.” 그러니까 어머니는 항상 그의 옆에 있었고, 선재가 긴 여행을 하면서 만났던 장꾼 지오, 법운 스님, 장 님가수 이나, 평등을 가르 쳤던 감옥의 해경, 바닷가 무료봉사 의사 해운, 그리 고, 선재의 아이를 낳았던 이련 이라는 여인 등 이 모든 사람들이 바로 자신 의 어머니라는 걸 가르쳐 준 것입니다.
어머니와의 짧은 대화를 통해 선재는 많은 것을 깨 닫습니다. 이전의 선재와 작별하고 완전히 다른 사 람으로 태어날 만큼 어머 니와의 만남은 특별한 깨 달음을 주었습니다. 선재의 깨달음은 이렇습 니다. 선재가 노란 담요를 들고 열심히 찾아 헤매던 ‘어머니’라는 존재는 결국 자기 불성입니다. 그런데 그 불성이 바깥세계, 세상 속에도 있었습니다. 우리 가 과거에 만났고, 지금도 만나고 있는 모든 모습이 결국 나와 뗄 수 없는 나의 불성이 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앞에서 문수의 가르침처 럼 나쁜 이를 만나 고개를 돌려버린 다면 결코 내 불성을 찾을 수 없는 것입니다. 오히려 법운의 가르침처 럼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을 선지 식으로 대하고, 그들에게서 가르침 을 배워 지혜를 기를 때 우리 본향 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장선우 감독의 <화엄경>은 꽤 난 해한 영화였습니다. 솔직히 원작인 고은의 <화엄경> 또한 읽다가 포기 해버렸을 정도로 집중하기가 힘들었 습니다. 그러니 이들의 뿌리인 <화엄 경> <입법계품>은 읽을 엄두를 못 냈습니다. 그러나 영화를 보면서 경 전 <화엄경>에 도전해 보고픈 욕구 를 느꼈습니다. 영화도 이토록 많은 가르침을 주는데 경전은 얼마나 많 은 보물을 담고 있을까, 하는 생각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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