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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4대 성지’를 가다!!!-「초진법륜지」와「열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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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139호 발행인 지성[이기식] 발간일 2011-06-01 신문면수 3면 카테고리 특집 서브카테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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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명 - 필자법명 법경 필자소속 - 필자호칭 정사 필자정보 밀교연구소 법경 정사 리라이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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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18-06-07 13:08 조회 2,758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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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4대 성지’를 가다!!!-「초진법륜지」와「열반지」
불기2555년 부처님오신날 특집기(끝)

사성제 팔정도를 설하다 

‘ 초전법륜지(初傳法輪地)’ 

『바라나시의 사르나트(녹야원)』 


깨달음을 얻고 49일 후에 부처님이 옛날에 함께 수행했던 다섯 비구(오 비구 五比丘)를 찾아가 처음으로 팔 정도, 사성제, 중도의 법을 설한 곳이 사르나트, 녹야원이다. 이 사르나트는 바라나시에 있다. 바라나시는 경제와 교역의 중심도시이자 인도수행자들의 성지로 유명한 갠지스강이 있는 곳이 기도 하다. 이 사라나트가 부처님께 서 처음 설법하신 곳으로도 유명하지 만 최초의 승가를 이룬 곳으로 중요 한 성지이기도 하다. 또 야외에서 법 을 전하던 야단법석의 시초이자 사원 이 생기기 이전 형태의 고전적인 탑 모양을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붓다가야에서 깨달음을 얻은 부처 님은 옛날 스승이었던 알라라 칼라마 와 웃다카 라마푸타를 찾았지만 이미 돌아가신 것을 알고 예전에 함께 수 행했던 다섯 명의 수행자들에게 법을 설하기 위하여 길을 떠나게 된다. 붓 다가야에서 약 300Km의 거리를 걸어 바라나시에 도착하여 바라나시 성안 에서 공양을 마친후 다섯 수행자가 있는 사르나트로 향하였다. 사르나트라는 이름은 사슴과 관련 해서 나오게 된 것이다. 부처님의 전 생이야기가 적혀있는‘자타카’에 다 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날마다 사냥을 즐기던 바라나시왕이 매일 사 슴 4~5마리를 잡아가자 사슴 왕이 찾아와 스스로 매일 한 마리씩 잡혀 줄테니 사냥을 삼가달라고 간청하였 는데, 차례가 된 사슴이 새끼를 배고 있음을 알게 된 사슴왕이 자기 차례 도 아닌데 대신 죽으려고 하자 이에 큰 감동을 받은 바라나시 왕은“훌륭 한 자비심이로구나. 비록 사슴이지만 사람 보다 더 훌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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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르나트의 다멕 스투파 : 부처님께서 오비구에게 처

음 법을 설한 장소이다.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아쇼카왕이

부처님 열반 250년후에 이곳에 스투파를 세웠다. 처음에는

‘다르마 차크라 스투파’라 불렸는데 나중에‘다멕 스투파’

로 바뀌었다. 진리를 보는 탑이라 하여 법안탑(法眼塔)이라

고 부르기도 한다. 아쇼카왕때에는 작은 스투파였으나 굽타

왕조에 와서 지금과 같이 증축되었다. 기단부의 지름이 28.5

미터, 높이는 42미터이다.


나는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긴 했어도 사슴 보다 못해 자비심이 없구나”라고 말하며 사슴왕을 돌려보냈고 그 이후로는 아 무도 이 동산에서 사슴을 잡지 말라 는 명령을 내렸다고 한다. 이러한 까 닭에 이곳을 사슴동산, 즉 녹야원(鹿 野園)이라 부르게 되었고, 산스크리 트어로‘사슴의 왕’을 뜻하는‘사랑 가나트(saranganatha)가 줄어‘사르나 트’라 불리게 되었다. 성도(成道)를 하신 후 바르나시에 이르신 부처님은 현재의 사라나트 박 물관 남쪽에 위치한 챠우칸디 스투파 자리에서 다섯 명의 옛 도반을 만나 게 된다. 부처님께서 다섯 비구들에 게 법을 설하려고 왔을때 그들은‘그 전에 고타마는 타락했던 수행자다. 가까이 오면 절대 아는 체하지 말자’ 고 약속하였으나 깨달음을 이루신 부 처님의 자비하신 모습과 그 광채 에 오히려 다섯 비구들은 감화되 어 먼저 머리를 숙이고 예의를 갖추었다고 한 다. 다섯 비구들 을 처음 만난곳 을 기념하기 위 하여 세운 탑이 바로 ‘챠우칸디 스투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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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타 쿠아르 사원 : 미타 쿠아르는‘죽은 왕자’라는

뜻이다. 열반당에서 10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세워져 있다.

석가족의 죽은 왕자인 고타마 싯달타를 기리기 위하여 세워

진 사원이다. 사원과 불상은 서기 10~11세기의 칼라츄리 왕

조때에 만들어졌고 현재의 사원은 1927년에 다시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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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반상 : 열반당 안에 모셔진 부처님의 열반상. 서기

5세기경 하리발라라고 하는 스님이 거대한 열반상을 만들고

오래된 사원을 수리하였다.


여 기서 바로 설하 지 않고 1Km 정 도 떨어진 녹야 원의 동산에 가 서 법을 설하셨 다고 한다. 또한 사르나트에 도착 한 즉시 바로 법 을 설하신 것이 아니고 3일 동안은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가 3일이 지나서야 법을 설 하셨다고 한다. 부처님께서는 녹야원 에 이르러 현재의‘디멕 스투파’자리 에 앉아서 다섯 비구에게 최초의 법 을 설하셨다. 디멕 스투파 자리는 석 가모니 부처님 이전에도 1000분의 부 처님께서 해탈을 이루고 법을 전하셨 다고 한다. 사성제, 팔정도와 중도의 가르침을 전해들은 오비구(五比丘)는 모두가 완전한 깨달음을 얻었으며 이를 본 부처님은 기쁨에 넘쳐“여기에 여섯 아라한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오비 구에게 법을 설하고 난후 부처님께서 는 사르나트에 머무시는 동안 바라나 시에 사는 대지주의 아들 야사와 그 의 친구 50명을 제자로 받아들여서 최초의 비구승가를 이루게 되었다. 아들 야사의 출가를 만류하려 찾아온 야사의 부모 역시 부처님께 귀의하여 불교신자가 되었다. 

그리하여 부처님, 초전법륜, 부처님과 법을 받드는 승 려들을 포함하여 불법승(佛法僧)의 삼보가 갖추어졌 고 여기에 남자 신도인 우바새와 여자신도인 우바 이가 생기면서 승가의 조직을 갖추게 된 장소로서 의의가 아주 큰 곳이기 도 하다. 부처님의 법을 모든 제자들이 바르 게 이해하자 부처님은“비구들이여, 너희들은 법을 듣고 해탈을 얻어 속 세의 많은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많은 중생들은 아직 도 고통으로 인하여 괴로워하고 있 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떠나거라. 모든 중생의 편안함을 위해서…”라는 유명한 전법의 선언을 하시게 된다. 제자들을 떠나보내신 부처님은 이후 깨달음을 이루어셨던 붓다가야의 네 란자라 강가에 살고 있는 가섭 3형제 들을 제도시키기 위하여 사르나트를 떠나 다시 붓다가야로 향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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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초전법륜지 사르나트 오비구에게 처음 법을 설한 곳이 바라나시의 사르나

트, 녹야원이다. 초전법륜지에서 총지종의 승직자와 교도들이 참배법회를 올리고 있다.

(우) 차우칸디 스투파 : 깨달음을 이루신 부처님께서 붓다가야를 떠나 오비구들

에게 법을 설하기 위하여 바라나시로 오셨는데, 오비구들을 처음 만난 자리가 바

로 이곳이다. 이 스투파를 영불탑(迎佛塔)라고도 한다. ‘부처님을 맞이한 장소’

를 기념하기 위하여 서기 5세기경 굽타왕조시대에 건립되었다.



영원한 해탈, 열반에 드시다 

‘ 열반지(涅槃地)’ 

『쿠시나가라』 


붓다가야로 돌아온 부처님께서는 가섭 3형제를 교화하고 나서 중인도 의 전지역을 다니시며 전법을 하셨 다. 

특히 마가다국의 라즈기르(왕사 성), 코살라국의 쉬라바스투(사위성), 베샬리, 바라나시 등 교역과 상업, 교 통, 문화의 중심지를 주로 다니시며 법을 전하셨다. 깨달음을 이루신 뒤 45년을 오로지 중생들을 위하여 전법 활동을 하셨던 부처님께서는 80세의 일기로 열반에 드시니 그곳이 바로 인도북부 지방의 쿠시나가라이다. 『대반열반경』에 의하면, 라즈기르를 떠난 부처님은 나란다를 거쳐 파트나 와 갠지스강을 건너 베샬리의 암바팔 리 동산과 벨루바 마을을 차례로 들 러신후 벨루바 마을에서 마지막 하안 거를 보냈다고 한다. 그 당시 이미 부 처님께서는 몸에 병을 얻어 많이 쇠 약해진 상태였다. 걱정스러운 아난다 가 부처님께 병이 어떠신냐고 묻자 부처님은 이렇게 대답하셨다. “아난 다야, 내 몸은 이제 늙어서 마지막에 이르렀다. 내 나이 지금 80이니 마치 낡은 수레와 같아 이제는 더 이상 강 건하기를 기대할 수 없다. 사람이 태 어나고 죽는 것은 때가 있는 것으로 세상에 한번 태어난 사람은 반드시 죽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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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반당과 아쇼카 스투파 :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곳이 쿠시나가라이다. 여기

에 열반당을 세워 부처님의 열반상을 모시고 있고, 열반하신 자리에 아쇼카왕이

스투파를 세웠다. 앞이 열반당이고 뒤가 아쇼카 스투파이다.


아난다야, 너는 네 스스로를 등불로 삼고 자기자신을 집처럼 생각하라. 그리고 법을 불빛 처럼 생각하고 법을 집으로 여겨서 법에 귀의하여야 한다”고 하셨다. 열 반에 이르러 설하신‘자등명 법등명’ 의 가르침이다. 마지막 하안거를 마치고 부처님은 베샬리의 파후푸드라카(다자탑)에서 고통스러움을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 다. “내가 등이 많이 아프구나. 여기 서 잠시 쉬어가는 것이 어떻겠느냐. 좀 쉬어가고 싶구나”라고 말씀하셨 다. 나무그늘에 앉아 잠시 쉬고 계시 는 동안 한 악마가 부처님을 찾아와 서 어서 열반에 들라고 말한다. 그러 자 부처님께서는“악마야, 저리가라. 나는 스스로 언제인지를 알고 있으니 지금으로부터 석달이 지나서 내가 원 래 태어났던 곳인 쿠시나가라의 사라 쌍수 사이에서 열반에 들 것이니라” 라는 말씀을 하셨고 부처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자 갑자기 땅이 크게 진동하였다. 이에 놀란 아난다가 부 처님의 열반에 대해 다시 묻자 부처 님께서는 3개월 후에 열반에 들리라 는 말씀을 전하였다고 한다. 열반을 이미 예언하신 것이다. 『열반경』에 따르면, 부처님은 전생 에‘마하 수다르사나’라고 불리우는 왕으로 태어나서 이곳 쿠시나가라를 통치하였다고 한다. 

이때에도 왕은 세상의 어떤 부귀영화도 오래 갈 수 없으며 결국 썩어가는 것이니 오직 도(道)가 진실할 뿐이라고 생각하고 도를 닦았다고 한다. 이와같이 쿠시 나가라는 부처님의 전생과 깊은 인연 이 있는 곳이므로 부처님은 전생에 입은 은혜를 보답하기 위하여 이곳 쿠시나가라를 열반지로 결정하셨다고 한다. 다른 추측도 있는데, 죽음을 예 견한 부처님께서는 고향 카필라와 탄 생지 룸비니에 가서 마지막 숨을 거 둘 생각을 하고 베샬리에서 출발하여 카필라를 향하던 도중 경유지인 쿠시 나가라에서 마지막 숨을 거둔 것이라 는 주장을 하기도 하지만 이는 다만 추측일뿐이다. 경전에 근거한 바가 아니기 때문이다. 경전에 근거한 바로는, 열반을 미리 예언하신 부처님께서는 베샬리를 떠 나 쿠시나가라로 향하셨다고 한다. 도중에 부처님께서는 쿠시나가라의 남서쪽 약 20Km에 위치한 파바마을 에 있는 춘다의 동산에 머무시었다. 춘다는 부처님이 오셨다는 소식을 듣 고 돼지고기로 만든 요리를 정성껏 만들어 부처님께 공양을 올렸다. 

그 러나 부처님께서는 춘다가 준비한 음 식을 모두 드신후 춘다에게 나머지 음식을 버리라고 말씀하셨다. 이에 춘다가 이유를 묻자 음식이 상하였기 에 다른 사람들이 먹어서는 안된다고 말씀하셨다. 이미 상한 음식임을 알 고 계셨던 부처님은 내색하지 않고 정성스레 준비한 춘다의 음식을 모두 드시고 다른 사람들은 먹지 못하도록 하였던 것이다. 이에 춘다는 부처님 께 공양올린 자신의 음식으로 인하여 이미 쇠약해진 부처님의 건강을 더 나쁘게 하였다는 죄책감에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자 부처님께서는“춘다가 마지막으로 공양 올린 음식은 성도 전에 수자타가 내게 공양한 유미죽과 다름없다”고 말씀하시며 부처님의 마 지막 공양을 올린 춘다를 위로하고 축복하여 주셨다. 하지만 부처님은 그 공양 때문에 병은 더욱 깊어졌고 ‘붉은 피가 나오고 죽음에 가까운 심 한 고통을 느끼셨다’고 경전은 전하 고 있다. 부처님의 괴로움은 파바마 을에서 쿠시나가라로 향하시는 도중 에 무려 25번이나 휴식을 취하셨다고 하니 그 고통이 어떠했는지를 상상할 수 있다. 마침내 쿠시나가라에 도착한 부처 님은 희연강을 건너 두 개의 사라나 무 사이에 침대를 준비하신 다음, 머 리를 북쪽에 두고 얼굴은 서쪽으로, 오른쪽 옆구리를 침대에 놓으신후 옆 으로 조용히 누우셨다. 부처님께서 자리에 누우시자 갑자기 옆에 있던 사라나무에 꽃이 피고 그 꽃잎이 부 처님께서 누워계신 곳에 겨울의 하얀 눈처럼 내리기 시작했 다. 

하늘에서는 좋은 향 이 냄새를 풍기고 천사 들의 노랫소리가 여러 곳에서 흘러나오기 시작 했다. 그러기를 한참, 곧 저 녁이 되었다. 밤이 깊어 지자 부처님께서 열반하 실 것이라는 소문을 전 해들은 수바다라라는 늙 은 수행자가 부처님을 찾아와 다음과 같은 질 문을 하였다. “부처님이 시여, 세상의 모든 수행 자들은 서로 자신의 생 각만이 옳다고 하며 서 로를 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과연 어떤 것이 옳은지 그른지를 알 수 있습니까? 어떤 사람이 정직한 수행자이고 어떻 게 행동해야 깨달음을 이룰 수 있겠습니까?”하 고 여쭈었다. 

이에 부처 님께서는 “수바드라여, 팔정도를 행하지 않는 자는 좋은 수행을 한다 고 말할 수 없다. 팔정 도를 행하지 않고는 중도를 이룰 수 없으며 중도를 통해서만 깨달음을 얻 을 수 있다. 내가 설한 법이 깨달음을 이룰 수 있는 길이다. 그대 수바드라 는 현명하여서 이 모든 것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이 말씀을 듣는 순 간 수바드라는 자신도 모르게 땅바닥 에 엎드려 부처님께 예경을 올렸고 부처님께 귀의하게 되었다. 이렇게 출가한 수바드라는 부처님 생전의 마 지막 제자가 되었다. 쿠시나가라의 밤은 더욱 깊었다. 만 물이 숨을 죽이고 있었다. 오랜 침묵 속에서 누군가 흐느끼기 시작했다. 울음 속에서 아난다가 부처님께 여쭈 었다.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계실 때 우리는 많은 가르침을 받을 수 있었 지만 이제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시면 우리는 가르침을 원해도 받을 곳이 없을 것입니다. 그때는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 다. “아난다야, 그때가 되면 너희는 모두 네 군데의 장소를 생각하게 될 것이다. 

곧 부처가 태어난 곳을 생각 할 것이며, 또 부처가 깨달음을 얻은 곳, 부처가 법을 설한 곳과 열반에 든 곳을 생각하게 될 것이다. 너희들은 이 네 곳을 생각하므로써 부처를 기 억할 수 있을 것이며, 그의 가르침을 생각해서 부처님의 법을 지킬 수 있 게 될 것이다. 아난다야, 부처가 열반 에 든 것을 보고 법이 없어졌다는 생 각을 해서는 안된다. 나는 너희 비구 들을 위하여 법을 설하였다. 이제 그 것이 너희 비구들의 스승이 될 것이 다. 그러므로, 비구들아, 내가 열반에 든 다음에도 법을 존중하기를 마치 어둠 속에서 빛을 만난 사람이 빛을 귀중하게 생각하고 가난한 사람이 보 물을 얻은 것처럼 하여라. 법은 너희 들의 스승이기 때문이며, 내가 살아 있는 것과 똑같이 생각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나를 보는 것은 법을 보는 것이고, 법을 보는 것은 또 나를 보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달빛만 있는 사라나무 주변의 침묵 속에서 부처님의 이 설법은 사람들의 마음 깊은 곳까지 파고 들었다. 

잠시 후 모든 비구들을 불러 모은 부처님 께서는 무엇이든 질문하라고 하신다. 아무런 물음도 없자 부처님께서는 다 음과 같은 말씀을 남기신다. “비구들 이여, 모든 현상은 변한다. 오직 부지 런히 정진하라.” 그날은 유난히도 달이 밝게 비치고 있었고, 사라나무 주위에는 아름다운 향기가 피어났으며, 천지를 흔드는 울림이 일어났다. 이날이 음력 2월 15 일 밤이었다. 이렇게 부처님께서는 우리 곁을 떠나시며 영원한 열반에 드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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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르나트의 아쇼카왕 석주 : 아소카왕 석주는

원래 높이 15.25미터, 지름 71.1미터의 석주가 다섯

개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위에는 네 마리의 사자상과

법륜상이 놓여 있었으나 지금 남아 있는 것은 위사

진에서 처럼 약 2미터 정도의 기단부이다. 사자머리

의 초전법륜상은 현재 사르나트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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