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교의 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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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82호 발행인 우인(최명현) 발간일 2023-05-01 신문면수 4면 카테고리 지혜 서브카테고리 함께 읽는 종조법설집페이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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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3-05-02 15:41 조회 1,694회본문
밀교는 대승불교 발전의 귀결이자 전환점으로 탄생
오늘날 불교총지종은 고려시대 혜통 스님에서 연원
제1장 교상(敎相)과 사상(事相) 편(篇)
제1절 밀교(密敎)란 무엇인가
1. 밀교의 전래(傳來)
대승장엄보왕경(大乘壯嚴寶王經 - 밀교장경密敎藏經31면面)에 의하면 시기불(式棄佛)때에 관자재보살(觀自在菩薩)이 이미 보왕경을 설(說)하고 또 비사부불(毘舍浮佛)때에는 부처님이 인욕선인(忍辱仙人)으로 계실 때 관자재보살로부터 보왕경을 들었다는(밀교장경32면)것을 보면 밀교의 역사는 그때부터 시작 되었다고 할 것이다. 그 후 무수겁(無數劫)을 지나서 불멸후(佛滅後) 팔백년대에 남천축(南天竺) 철탑(鐵塔)속에서 십만송(十萬頌)의 밀교경궤(密敎經軌)가 출현(出現)하여 대일여래(大日如來), 금강수보살(金剛手寶薩), 금강지(金剛智), 선무외(善無畏), 등(等)에 의하여 혜과(惠果)에게 전하고 혜과로부터 신라(新羅)에서는 혜일(惠日)과 불가사의(不可思議)가 수법(受法)하였고, 일본(日本)에서는 공해(空海)가 수법하였으나, 공해보다 혜일이 먼저 수법하였으므로 법형(法兄)이 되는 것이다. 한편 신라시대의 혜통국사(惠通國師-총지종總持宗의 개조開祖) 입당(入唐)하여 선무외삼장(善無畏三藏)으로부터 수법하였으므로 공해보다 휠씬 먼저가 되는 것이다. 이상은 밀교의 역사적인 측면(側面)이요 교리(敎理)적인 측면으로는 현교(顯敎)와 상대(相對)하여 불교중에도 특히 비교적(秘敎的)인 요소(要素)가 농후(濃厚)한 교를 말하는 것이다. 밀교의 유포(流布)를 보면 팔세기 이후 인도(印度)에서 번영(繁榮)하여 점차(漸次)로 동남아시아, 중앙아시아, 티베트, 네팔, 중국, 신라, 일본 등에 전해졌다.
신라밀교는 혜통국사가 선무외와 금강지로부터 여러 가지 밀교경궤를 가져왔고 불가사의는 대일경소(大日經疏)를 저술(著述)했다.
티벳불교는 대부분이 밀교를 주로한 라마교다.
일본에서는 전교대사(傳敎大師), 자각대사(慈覺大師), 지증대사(智證大師)에 의하여 천태종(天台宗)에서 전래(傳來)한 밀교를 태밀(台密)이라 하고 홍법대사공해(弘法大師空海)에 의하여 진언종(眞言宗)내에서 전개(展開)한 밀교를 동밀(東密)이라 한다.
註 - 밀교의 흐름은 크게 二단계로 나누어져 아시아 전역(全域)에 확산(擴散)되었다.
하나의 줄기는 동북아세아, 즉 중국, 한국, 일본 등지에 흘러 들어간 종류(種類)의 밀교이고, 이것은 七세기의 밀교가 중심(中心)이 되었던 것이다.
또 하나의 흐름은 대일경(大日經), 금강정경(金剛頂經) 성립이후 긴 밀교의 역사속에서 성립(成立)된 것이다. 八세기에서 一三세기에 걸쳐서 즉 五세기란 긴 밀교역사 속에서 성립된 밀교는 다행(多幸)인지 불행(不幸)인지는 모르겠으나 중국, 한국, 일본 등 동북아세아에는 흘러들어오지 않았다. 이것이 제二기(期)의 밀교 또는 후기밀교(後期密敎)라는 것인데 티베트, 네팔, 몽고, 만주 등 중앙아세아에서 북아세아에 걸쳐서 확산되었다.
총지종의 사상을 알려면 그 뿌리인 밀교에 대해 아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학계에서는 불교역사 속 밀교의 위상과 역할에 대해 소홀히 다뤄지는 편이고 일반인은 물론이고 불자들 역시 크게 관심이 없거나 자세히 알지 못한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그것은 아마도 밀교가, 교리적으로나 신앙적으로 화려하게 꽃피운 대승불교의 마지막 한 부류 정도로 여겨지기 때문이자 밀교를 끝으로 인도불교가 역사 속에서 사라졌기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1,600년 한국불교역사에 있어서도 밀교의 자취는 흐릿하다. 근래 들어 불교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고 특히 달라이라마를 중심으로 티베트 불교가 각광받음에 따라 이제야 비로소 밀교가 주목받기 시작했으니, 일찍이 원정대성사께서 학문적으로도, 대중적으로도 거의 알려진 게 없는 밀교의 가치를 알아봤다는 건 혜안이 아닐 수 없다.
당시에는 접할 수 있는 밀교 경전이나 의궤가 많지 않고 배울 수 있는 스승이나 전통도 전무한 환경에서 관련 기록을 찾아 가치와 의미를 발견하고 교상과 사상을 체계화하기까지 부단히 수행하고 연구하며 체득했으리라 짐작할 뿐이다.
대승불교 발전의 귀결이자 전환점으로서 탄생한 밀교는 시대적 흐름 속에서 시기마다, 나라마다 조금씩 다른 모습을 띄게 되었다. 초기밀교는 중국을 거쳐 한국과 일본에 전래되었으며 『대일경』과 『금강정경』을 기점으로 하는 중· 후기 밀교는 초창기에 중국, 한국, 일본에 일부 전해졌으나 주로 티베트와 네팔 등으로 전해져 그 맥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밀교가 전래된 기록은 신라 때 안홍스님과 혜숙스님이 중국으로 구법유학을 다녀와 황룡사에서 경을 번역하고 만선도량을 열었다는 것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후 문두루법이라고도 하는 신인비법을 행한 명랑스님은 고려시대에 신인종이 성립하는 기초가 되었고, 혜통스님은 처음으로 순수 밀교를 배워 고려시대에 진언 수행 중심의 총지종을 성립하는 기초가 되었다. 이에, 중국에 최초로 순수 밀교를 전하고 『대일경』을 한역한 선무외스님과 중국 밀교의 대성자이자 『금강정경』을 한역한 불공스님의 스승인 금강지스님으로부터 밀교를 배운 혜통스님에서 오늘날 불교총지종의 연원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이후 고려 때는 밀교가 대중들 사이에 크게 숭상되었으며 특히 진호국가의 개념을 건국이념으로 수용한 왕실을 중심으로 다양한 밀교의식과 행사가 행해지고 밀교 경전이 다수 간행되었다. 그리고 조선에 이르러서는 선교양종의 통폐합 과정을 거치면서 독립된 종파로서의 밀교는 사라졌지만 현교와 조화를 이루며 불자대중의 의식 저변에 깊이 뿌리내렸다.
그러므로 불교총지종은, 독자적인 모습을 띄고 있지는 않지만 개인과 국가의 소구소망을 빌고 진언과 염불 수행을 중심으로 법화사상, 정토신앙 등 여러 종파와 융합하여 교학과 사상 및 신앙 전반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있던 한국의 밀교를 오늘에 다시 체계화하여 시대에 맞춤한 재가불교운동으로 구현한 것이다.
* 밀교의 역사와 우리나라 밀교 역사에 관하여 『밀교사상사개론』,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다음백과』 등을 참조하였습니다.
윤금선 (BBS 「무명을 밝히고」 「거룩한 만남」 구성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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