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수학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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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140호 발행인 지성[이기식] 발간일 2011-07-04 신문면수 9면 카테고리 종단 통신원 소식 서브카테고리 학생문예페이지 정보
필자명 박준하 필자법명 - 필자소속 - 필자호칭 - 필자정보 박준하 <동해중학교 2학년 4반> 리라이터 -페이지 정보
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18-06-07 12:36 조회 2,621회본문
친구들과 함께 하는 수학여행이라 무척 재미있을 것 같은 기대에 부풀었다. 첫날 우리들은 선비의 고장 영주시에 있는 소수서원, 선비촌, 소수박물관을 가 보았는데 먼 저 소수서원은 조선시대 최 초의 사액서원인데 겉과 속 이 모두 붉다하여 적송이라 부르며 3백 년에서 길게는 천 년에 가까운 적송나무 수 백 그루가 서원 주변을 뒤덮 고 있는 학자수림을 볼 수 있었다. 숙수사지 당간지주는 통 일 신라시대 작품, 절에서 석조지주 가운데 기둥을 높 이 세워 깃발을 걸었던 곳이 다. 취한대는 퇴계 이황 선생 이 명명한 취한이란 뜻은 푸 른 연화산의 산기운과 맑은 죽계의 시원한 물빛에 취하 여 시를 짓고 풍류를 즐긴다 는 뜻에서 옛 송취한계의 비 취 취자와 차가울 한자에서 따왔다.
학구재와 지락재는 유학생들이 공부하 던 기숙사 자리이고 직방재와 일신재는 서원의 원장과 교수의 집무실이다. 전사 청은 제사용 그릇 등을 보관해 두는 곳이 며, 장서각은 오늘날의 대학 도서관으로 임금이 직접 하사하신 어제 내사본을 비 롯 많은 장서를 보관하던 곳이다. 강학당은 유학생들이 모여서 강의를 듣 던 곳이고 탁영대와 탁청지는 임진왜란을 전후하여 겸암 류운용 선생이 풍기군수로 재임할 때 연못을 파고 대를 쌓았던 곳이 다. 선비촌은 우리 민족의 생활 철학이 담 긴 선비정신을 거양하고 사라져 가는 전 통문화를 재조명하여 윤리, 도덕의 붕괴 와 인간성 상실의 사회적 괴리 현상을 해 소해 보고자 충효의 현장을 재현하게 된 것이다. 우도불우빈의 공간에서는 가난을 부끄 러워하지 않고 청빈한 삶을 살았던 선비 들의 모습을 느낄 수 있도록 하였다. 수 신제가의 공간에서는 자기수양을 위해 노 력했던 영주 선비의 모습을 살펴보고 우 리나라의 전통적인 교육방식도 직접 체험 할 수 있다.
거무구안은 명상과 풍류를 즐기면서도 자신의 안위를 우선시하지 않 고 현실의 잘잘못을 비판한 영주 선비의 굳은 기개를 엿볼 수 있도록 하였다. 입신양명의 공간에서는 중앙관직에 진 출하여 다양한 활동을 하였던 영주 선비 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도록 하였다. 소수박물관에는 영주지역이 선사시대부 터 사람들의 주거생활 신앙공동체의 주요 대상 지역이었음을 확인시켜주는 자료인 가흥리 바위 그림과 고인돌, 대성지성 문 선완전 좌도, 퇴계 이황선생께서 성학의 개요를 그림으로 설명한 목판, 국보 제78 호 금동 미륵보살 반가사유상등이 전시되 어 있었다. 그 다음은 단양 온달관광지를 들렀는데 고구려의 명장 온달장군과 평강공주의 전 설을 테마로 온달전시관. 산성. 동굴 등 명승지를 모아놓은 곳이다.
첫날 저녁에 는 대명콘도에서 짐을 풀었다. 둘쨋날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조선왕릉인 영릉을 관람하였다. 세종대왕과 소헌왕후릉을 보기 위해서 는 정자각을 지나야 하는데 세종 영릉의 정자각 동편으로는 신계 좌우에 동계가 두개 설치되어 있고, 세종 영릉은 하나의 봉분 아래에 왕과 왕비 두 분의 현궁을 마련한 동봉이실의 합장릉이다. 조선왕릉 최초의 합장릉이라고 한다. 조선왕릉의 금천교가 홍살문에 이르기 전에 금천을 건널 수 있도록 조영된 것과 달리 효종 영릉의 금천교는 참도 중간에 조성되어 있다.
효종 영릉은 하나의 산줄기에 상하로 봉분을 배치한 동원상하릉의 양식으로 조 성되어 있고 위쪽에는 효종릉이, 아래쪽 에는 인선왕후릉이 조성되어 있다. 효종 영릉의 재실은 대부분의 조선왕릉 재실이 산실되거나 원형을 간직하고 있지 못한 상황에서 그 옛 모습을 보여주는 소 중한 문화유산이다. 여주에 있는 명성황후 기념관도 들러보 았는데 명성황후의 숭고한 뜻을 기리고 우리 민족의 역사와 주권의 소중함을 되 새기며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아 후손들의 산 교육장으로 활용하고자 조성되었다고 한다. 전시실에는 명성황후의 친필과 서가집, 고종의 영정 등을 비롯한 관련 자료들을 전시한다. 지금까지 명성황후에 대해 사 치가 심하고 시아버지인 대원군과의 전쟁 만을 일삼는 등 부정적인 시 각으로 전해진 이유는 조선 근대사를 쓴 사람이 일본인 이었으며 철저하게 역사를 왜곡한데서 비롯하였다. 일본은 명성황후의 반대파 세력이나 친일파들로 하여금 중상모략토록 하였고 일제강 점기 36년 동안 비하시켜 왜 곡했다고 한다.
명성황후는 어려서부터 글 읽기를 좋아하고 성격이 강 직하였으며 옳고 그른 것을 뚜렷이 밝히는 분별성과 행 동에 과단성이 있었고 명성 황후의 필적은 힘이 있고 당 당하여 국모로서의 위엄을 느낄 수 있었다. 명성황후기 념관을 나와 우리는 점심을 먹은 후 에버 랜드에 갔다가 캐빈 호스텔에서 둘쨋날을 보내었다. 셋쨋날 카이스트 도서관과 학교를 둘러 보았다. 카이스트 도서관은 1971년 한국과학원 도서실로 출발하여 1990년 3월 현대식 건 물을 준공하여 현재의 도서관으로 개관하 였으며 현재 과학기술분야의 도서와 학술 저널 등을 보유하여 이용할 수 있도록 하 고 있다. 수학여행은 선생님과 친구들이 2박 3일 동안 함께한 시간이라 너무 재미있었고 짧은 일정이 아쉬웠다. 학창 시절의 아름다웠던 추억으로 중학 교 2학년 때의 수학여행, 영원히 잊지 못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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