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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대 사진의 원조 임응식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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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147호 발행인 지성[이기식] 발간일 2012-02-02 신문면수 7면 카테고리 편집위원회 서브카테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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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명 김종열 필자법명 - 필자소속 - 필자호칭 - 필자정보 정리 김종열 기자 리라이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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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18-06-07 03:05 조회 2,36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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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대 사진의 원조 임응식을 만나다.
그 시절 명동의 추억

임진년 새해가 밝았다. 편지위원회는 일주일간의 새해불공을 마치고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였다. 한해의 살림살이를 위한 새해불공에 묵언으로 수행한 위원님도 계시고, 각자가 서원한 바램들이 모두 이루어지기를 서로 축원하였다. 종보의 새로운 변화를 바라는 편집위원들의 열띤 토론을 거쳐 이번 호는 덕수궁 현대미술관에서 열리는 한국 사진예술의 원조 임응식 작가전을 취재하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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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의 정궁 경운궁(덕수궁)


2012년 1월20일 설 명절을 앞두고 조금은 분주한 마음이지만 모두들 덕수궁으로 모였다. 젊은 시절을 서울에서 보낸 사람들은 누구나 한번은 걸었을 덕수궁 돌담길 추억을 떠올리며 , 설레는 마음으로 덕수궁으로 입장했다. 예전에 비하면 많이 정비된 모습이지만, 도심 한가운데 이런 궁궐들을 가진 나라는 그리 많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한 왕조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궁궐은 관람할 때 마다 또 다른 감응으로 다가 온다. 대한제국의 정궁인 덕수궁은 원래 성종(9대)의 형인 월산대군의 저택이었다. 임진왜란으로 인해 서울의 모든 궁궐이 불타 없어지자 1593년(선조 26)부터 선조의 임시 거처로 사용되다가 광해군이 1611년(광해3) 정릉동 행궁으로 불리던 이곳에 ‘경운궁’이라는 정식 궁호를 붙여 주었다. 그 후 광해군은 1615년(광해7) 재건한 창덕궁으로 어가를 옮기고 경운궁은 별궁으로 남게 되었다. 경운궁은 1897년 대한제국 출범과 함께 한국 근대사의 전면에 등장한다. 전성기 때의 경운궁은 현재 넓이의 3배에 달하는 큰 궁궐이었다. 현재의 미국대사관저 건너편 서쪽에는 중명전을 비롯해 황실 생활을 위한 전각들이 있었고, 북쪽예는 역대 임금들을 제사 지내는 선원전이 있었으며, 

동쪽에는 하늘에 제사 지내는 환구단을 설치하여 황제국의 위세를 과시했다. 그러나 고종황제가 황위에서 물러나면서 경운궁은 선황제가 거처하는 궁으로 그 위상이 달라졌고 이름도 덕수궁으로 바뀌었다. 덕수궁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궁궐 건축물인 석조전이 자리한다. 석조전의 기본 설계는 영국인 G.D.하딩이, 내부 설계는 영국인 로벨이 하였다. 1900년(광무 4)에 착공하여 1910년(융희 3)에 완공하였다. 지금은 원형 복원을 위한 공사가 진행 중이다. 석조전의 서편 건물은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분관으로 덕수궁 미술관으로 불린다.

1937년 이왕직박물관 으로 지은 건물이다.

덕수궁 주변에는 정동교히, 이화여고, 러시아대사관, 성공회 서울대교구 주교좌성당, 영국대사관들이 자리 잡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세로운 연인 들은 한번은 다녀가는 데이트코스 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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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응식 모두 기록의 예술, 예술의 기록


사진작가 임응식은 올해로 탄생 1.00주년을 맞는다. 사진작가로서 뿐만 아니라 사진 계몽운동가 및 교육가로서 탁월한 역량을 발휘한 그의 작품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전시가 덕수궁 미술관에서 열렸다. 이번 전시는 임응식이 사진을 찍기 시작하는 1930- 40년대 '예술사진, 시대의 작품부터 그의 이름을 본격적으로 알리게 된 1950년대의 리얼리즘 계열 사진, 그리고 1960년대 후반 이후로 작가가 일정한 주제를 내걸고 촬영하여 ‘공간’지에 연재한 문화재 전문가, 사진가, 예술가의 초상 시리즈를 모두 볼 수 있었다. 특히 이번 전시에는 그 

동안 거의 발표되지 않은 작업인, '명동 사진'이 출품되는데, 유족이 소유한 필름을 인화하여 세상에 처음 공개되는 사진들을 만날 수 있었다. 임응식이 명동 거리를 다니면서 ’명동의 풍경과 사람들의 모습을 스냅 사진으로 찍은 작품들로, 195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변화하는 명동의 분위기를 엿볼 수 있었다.

편집위원들은 혹시 자신의 젊은 시절이 사진으로 남지는 않았을까 하는 기대로 꼼꼼히 살펴보기도 했다. 또한 작가와 함께 활동한 동료,.제자들이 촬영한 ‘기억의 헌사: 임응식의 초상사진’과 초기 부산에서 함께 활동했던 작가들의 작품을 모은 ‘작은 역사전: 임응식과 초기 부산사진’도 전시에 포함되어 작가의 삶을 보다 입체적으로 살피는 기회가 되었다.



임응식의 시대별 작품세계


예술사진에서 사진예술로(1930년대-1960년대)


일제 강점기부터 1960년대까지 임응식의 초기 작품을 다룬 섹션이다. 사진은 일제강점기에 수용 우 정착되고 제도화된 예술사진이 성행하다가 한국전쟁기에 들어서 기록사진의 성향을 띈 작품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전후에는 리얼리즘과 모더니즘 계열의 사진이 주류를 이르는데, 임응식의 사진 활동 역시 한국사친사의 전개과정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음을 작품을 통해 알 수 있다.



문화재와 예술가의 기록 (1960-1908년대 초)


1960년대 중반부터 1980년대 초반 사이에 작업한 고 건축 사진과 예술가들의 초상사진으로 구성되었다. 1960-70년대에는 한국의 전통과 미를 재발견함으로써 한국 문화의 정체성을 세우려는 작업이 역사, 문학, 미술, 사진 등 여러 분야에서 일에』게 되는데, 임응식은 문화재 사진을 통해서 사진이라는 매체가 지닌 기록성과 예술성을 성취하고자 했다.

 


명동, 명동 사람들 (1950년대서 990년대)


한국전쟁에 종군하여 폐허로 변한 명동을 기록하기 시작한 1950년부터 타계한 해인 2001년 직전까지 50년 넘게 촬영한 명동 사진을 다룬다. 임응식은 명동을 '한국 사회변화의 축소판'으로 보고, 문화사적인 관점에서 하루하루 변하는 명동의 모습을 가록하려고 노력했다. 이번 전시에 출품되는 명동 사진 중에는 유족이 소장한 필름을 인화하여 처음으로 공개되는 작품들도 다수 포함 된다. 명동 풍경, 명동1의 인물, 명동의 패션을 비롯하여 임응식이 주로 다녔던 명동 코스를 지도와 사진으로 재구성한 사진가 그씨의 명동 일일 등이 눈에 띠는 작품이다.



임응식과 사진 아카이브


마지막에는 두 개의 소품전과 임응식이 남긴 유품 및 저서 등의 각종 아카이브 자료로 구성된다. ‘작은 역사 전: 임응식과 초기 부산사진’은 그와 함께 설립한 부산광화회 (1946년 창립), 부산예술사진연구회(1947년 창립)를 중심으로 활동한 이병삼, 박기동 등 부산출신 사진가들의 작품들을 다룬다. ‘기억의 헌사’는 임응식과 함께 활동했던 동료와 그에게서가르침을 받은 후배나 제자들이 촬영한 임응식의 초상사전으로 구성되는데, 권태균, 주명덕 등 현재 활동 중인 유명 사진가들이 출품하였다. 이 밖에도 임응식이 생전에 사용하던 카메라와 그가 저술하거나 참여한 교재와 서적, 임응식의 모습이 담긴 기념사진들을 함께 전시하여. 그의 사진. 활동뿐만 아니라 인간적인 면모까지 이해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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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 산책- 흑룡과의 만남

추억으로의 여행을 마치고, 전시장을 나선 위원들은 덕수궁의 작은 전각들을 천천히 관람하였다. 덕수궁에는 정관헌이라는 서양식 건물이 있다. 고종이 다과를 들고 음악을 감상하던 곳으로, 한때는 태조 . 고종 . 순종의 영정을 봉안한 곳이기도 하다. 벽돌을 쌓아 벽을 쌓고, 석조기둥을 세우고 건물 밖으로 목조의 가는 기둥을 둘러 테라스를 만든 건물이다. 편집위원들은 봄날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고종 황제와 함께 차를 마시는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그윽한 차향기와 감미로운 음악이 흐르는 정관헌, 아쉽지만 지금은 테이블만 남아 쓸쓸해 보이기까지 했다. 정광헌 관람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중화전으로 통하는 작은 문에서 위원들은 흑룡을 발견했다. 올해가 임진년이고 또 흑룡의 해에 만난 작은 행운 '이었다. 모두가 흑룡의 기운을 하나 가득 받고 취재를 마친 하루였다.


취재: 편집위원 이인성, 박정희, 최영아, 강경민

벽룡사 통신원 양재범, 밀인사

통신원 이형자 

정리= 김종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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