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총지종

총지신문 아카이브

불교총지종은 ‘불교의 생활화, 생활의 불교화’를 표방하고 자리이타의 대승불교 정신을 일상에서 실천하는 생활불교 종단입니다.

규제와 편견의 한계를 넘어 선 여성들

페이지 정보

호수 141호 발행인 지성[이기식] 발간일 2011-08-03 신문면수 8면 카테고리 인물 / 설화 서브카테고리 -

페이지 정보

필자명 - 필자법명 - 필자소속 - 필자호칭 - 필자정보 - 리라이터 -

페이지 정보

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18-06-07 11:22 조회 2,887회

본문

규제와 편견의 한계를 넘어 선 여성들
김만덕(1739~1812)

김만덕은 조선 후기 제주도에 살았던 여성 사업가로 제주 특산품을 취급하는 무역업을 하여 큰부자가 되었다. 

제주도에 흉년이 들어 백성들이 굶어 죽게 되자 그는 자신의 장사밑천과 여윳 돈까지 다 털어 백성들을 살려냈다. 

사업 가로서 여성 CEO로서 뛰어난 인물이며 가진 자의 의무를 실천할 줄 아는 부자 였다. 김만덕은 영조 15년 제주 현 에서 양 인 아버지 김응열과 어머니 고씨 사이의 외동딸로 태어났다. 그가 12살 되던 해 전국을 휩쓴 전염 병으로 부모가 죽어 하루 아침에 고아가 되었다. 그는 어느 기생의 양녀로 들어간 후 제주에서 유명한 기생이 되었다. 

만덕은 스스로 기생이라고 생각한 적 이 한번도 없었다. 스물 세 살이 되던 해 만덕은 제주목사를 직접 찾아가 설득해 서 원래 자신의 신분인 양인의 지위를 되찾았다. 대부분의 기생들이 어느 남성 의 첩이 되어 기생 신분을 벗어나려 했 던 것과는 다르게 스스로의 의지와 노력 으로 신분을 바꾼 것이다. 남성의 보호를 받는 삶을 사는 대신 자신이 경제적 기 반을 확실히 마련해 자립하는 객주 주인 의 삶을 택했다. 양인의 신분을 회복한 김만덕은 혼자 살았다. 조선시대에는 노비나 기녀, 과부 가 아닌데 혼자 사는 여성은 극히 드물 었다. 

만덕은 자기 의지대로 흔치 않은 삶을 택했다. 만덕은 집안살림 대신 장사를 시작하 고 객주를 운영했다. 녹용, 귤, 미역, 전 복 등 제주 특산품과 제주에서 필요한 물건의 수요를 잘 헤아려 다양한 물건을 취급하는 일종의 무역업을 했는데 사업 수완이 뛰어났다. 비싼 물건과 싼 물건을 쌓아두거나 팔거나 하는 방법으로 사업 을 하는 동안 재산은 날로 늘어갔다. 그 는 관가의 물품도 조달하고 여객주인권 이나 포구주인권을 획득하여 당당한 사 업가로 성공했다. 김만덕이 유명해진 것은 단지 부자이 기 때문은 아니었다. 제주에는 계속 흉년 이 들어 굶어 죽는 백성들이 많이 있었 다. 1794년 거대한 태풍이 제주를 휩쓸었 다. 산더미 같은 해일이 해안 인근 밭들 을 덮쳐서 공들여 키운 곡식이 바닷물에 잠겨 버렸다. 

이 태풍은 조정에서 보낸 곡물 1만1천석을 실은 배마저도 삼켜버 렸다. 제주가 죽음의 땅으로 변해갈 즈음 자신이 가지고 있는 돈을 모두 털어 쌀 수송선과 뱃길에 익숙한 노련한 사공들 을 구해 쌀 오백여 섬을 무사히 제주에 도착하게 하였다. 만덕은 그 중 오십 섬 으로 친족들을 살리고 나머지는 모두 관 아에 운반해서 죽기 일보 직전의 백성들 을 살렸다. 크게 벌어 크게 쓴 여성, 만 덕은 진정한‘큰 손’이었다. 김만덕의 선행을 전해 들은 정조는 만 덕을 만나보고 싶었다. “어떻게 양반도 아니고 남자도 아닌 제주도 아낙이 이런 기특하고 큰 일을 자원해서 할 수 있단 말인가?”하며 만덕에게 소원을 물어 상 을 내리라고 명했다. 만덕의 소원은 임금 님이 계신 서울에 올라가 보는 것과 금 강산에 가서 일만 이천 봉우리를 보는 것이었다. 

제주 여성은 육지 구경을 할 수 없도 록 국법으로 정해져 있었다. 만덕의 소원 은 임금님의 어명이 아니면 불가능 한 것이었다. 만덕이 원한 것은 돈도 아니고 명예도 아닌 미지의 세상이었다. 정조는 여성으로 최고의 벼슬인 의녀 반수(궁중 최고 여의사)를 제수하고 만 덕의 소원을 기꺼이 들어 주었다. 제주도 에서 한양으로, 금강산으로 가는 길에 있 는 모든 관공서가 만덕에게 편의를 제공 하도록 지시하였다. 만덕이 가는 길목마 다 사람들이 몰려나왔다. 여성으로 놀라 운 일을 행하였고 새로운 것을 개척해 나가는 용기 있는 만덕을 칭송하였다. 

만덕은 유명 인사가 되었다. 육십이 넘 은 나이에 금강산을 유람했고 천하의 기 이한 경치를 다 본 후에 서울로 돌아왔 다. 김만덕은 여성의 사회활동이 드물었던 조선 후기에 신분의 구애를 받지 않고 자유로이 활동했다는 점에서 특기할 만 한 여성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상업의 원리를 잘 파악하고 이를 적절히 활용하 여 거상으로 성공했다는 것이다. 현대에 도 김만덕의 업적이 높게 평가받는 이유 는 개인의 사리사욕을 떠나 굶주리는 지 역민들을 위해 평생 모은 전 재산을 자 진해서 헌납했다는 사실이다. 현재 김만덕은‘제주의 할머니’로 칭 송 받고 있다. 

전 생애 동안 누구도 하기 힘든 선택과 결단을 했고 당당하고 독립 적인 하층여성 김만덕은 살아서 공적인 명예를 획득한 몇 안되는 여성이었다. 현재 제주도 내의 초, 중학교 교실 향 토 학습관의‘내 고장을 빛낸 인물’에 어김없이 첫머리에 등장하는 역사적인 인물이다. 


(자료~여성사전시관)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