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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는 오직 깨닫기 위해 매일 정진을 거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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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87호 발행인 우인(최명현) 발간일 2023-10-01 신문면수 5면 카테고리 설법 서브카테고리 왕생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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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3-10-10 15:17 조회 1,32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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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는 오직 깨닫기 위해 매일 정진을 거듭한다

“부처님께서는 ‘살생한 죄 참회하라, 도둑질한 죄 참회하라, 사음한 죄 참회하라, 거짓말한 죄 참회하라, 우치한 죄 참회하라’고 하셨듯이 스스로 뉘우쳐야 하는 것입니다.”


부처님 말씀 중 『화엄경』에 이 세상 만류를 다 스승 삼아서 배우라고 하셨는데, 이는 사람 뿐 아니라 형상이 있는 것에는 다 배울 것이 있다는 말입니다. 하늘을 쳐다보면 과거의 허공이나 현의 허공이나 미래의 허공이나 허공은 변함이 없고 가는 것도, 오는 것도 없고 생사도 없는 것입니다.


법문을 들을 줄 아는 그 마음자리도 또한 저 허공의 바탕과 같다는 것입니다. 태양에서 밝음을, 산에는 동요함이 없는 부동자세를, 초목과 초림에는 굳은 절개를, 물에는 유연함과 청정함 등 백만 가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이 법은 본래의 무생한 도리를 우리가 비로소 알고, 이 자리를 깨닫기 위해서 오늘도 내일도 정진을 거듭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그것을 모른다면 많은 사람들이 살다 갔지만 그 가운데서 인생답게 보람되게 살다 가신 분은 몇 분밖에 안 될 것입니다.


우리가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려면 


첫째, 자기 마음자리를 잘 다스려 나아가야 합니다. 자신 마음자리가 우주의 진리이니 자기의 마음자리를 스스로 믿고 행하라는 것입니다. 


올바른 신앙생활이라는 것은 자기 마음을 어떻게 잘 믿고 양심의 가책 없이 살아나가느냐 하는 것이 제일 첫째 문제입니다. 항상 겉으로는 부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되느냐 살펴보면 몇 사람 안 될 것 입니다.


우리는 항상 신앙생활을 하면서 내 마음 가운데 잘못됨을 먼저 다스려야 합니다. 남의 허물을 흉보기 전에 내 잘못을 먼저 뉘우치고, 말을 입 밖에 내기 전에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살생한 죄 참회하라, 도둑질한 죄 참회하라, 사음한 죄 참회하라, 거짓말한 죄 참회하라, 우치한 죄 참회하라’고 하셨듯이 스스로 뉘우쳐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처음부터 완성되어 있다고 한다면 학교도 교육자도 지도자도 또한 필요 없을 것입니다. 완성되지 못하므로 교육자도 배우는 자도, 스승도 제자도, 종교인도 다 있는 것이지 미리 다 완성되어 있을 것 같으면 그것이 왜 필요하겠습니까? 완성되지 못한 정한 이치입니다.


둘째는 불교는 독선이 아니라 겸손입니다. 서원당에서 하루 종일 수행정진 하는 것은 자기 혼자 잘 되려고 그러는 것이 아니라 나중에 자기가 깨닫고 중생교화 하려는 겸손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내가 한 가지를 알면 한 가지를 가르쳐 주고, 두 가지를 알면 두 가지를 가르쳐 주고 내가 모르거든 아무것도 모른다고 자칭할지언정 남에게 모르는 것을 거짓으로 안다고 가르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모르면서 남의 지도자가 되는 것은 한 봉사가 다른 봉사를 이끌어 불구덩이에 들어가는 것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한 사람이 잘못하여 여러 사람을 도탄에 빠지게 하니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하여 서원당에서 혼자 수행 정진하는 것을 두고 독선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나중에 많은 중생들을 구하려고 겸손하게 도를 닦는 것입니다.


셋째, 불교는 차별이 아니라 평등입니다. 항상 차별을 두지 않습니다. 잘 사는 사람이나 못 사는 사람이나 어떤 사람을 막론하고 불문 문중에 들어오면 동일계급 입니다. 속세에서 유명했건 부자였건 간에 불가에서는 계를 받은 순서로 선참, 후참을 정하고 동일한 도반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래서 차별이 아니라 평등인 것입니다.


넷째, 불교는 타력신앙이 아니라 자력신앙이며, 자력 해탈이라 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힘을 빌려 해탈하려고 하거나 부자가 되려고 하고 운명을 바꾸려고 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너희들이 부자가 되고자 한다면 베푸는 마음을 가져라, 그러면 틀림없이 부자가 될 것이다. 너희들이 오래 살고자 하면 죽어 가는 목숨을 살려 주어라. 만 사람의 윗사람이 되고자 한다면 만 사람의 발 아래로 하심을 하라.”고 하셨습니다.


불교는 항상 화합하라고 합니다. 아무리 극악무도한 사람도 교화해서 착한 사람 만들어 세상에 내보내고. 악한 사람 그대로 내쫓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항상 부처님의 자비를 실천에 옮겨야 합니다. 나보다는 남을 위하는 생각이 견고했을 때 이 세계는 밝은 세계가 이루어집니다.


결론적으로 항상 우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양심의 가책 되는 일이 없이 활동을 해야 합니다. 활동을 하되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지는 못할지언정 피해는 입히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남에게 의존하는 사람이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스스로 개척해서 나가려는 생각으로 한 걸음씩 전진해 나가야 됩니다. 더불어 헌신 보시할 줄 알아야 합니다. 나 혼자만 많이 벌어 잘 살려고 하면 부자가 못 됩니다. 헌신 보시하는 것이야 말로 복덕 종자를 심는 것입니다. 그 다음은 노력하는 것 입니다. 부지런히 노력하면 계속 전진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인욕을 하는 것입니다. 참고 견디는 생각이 없으면 절대 성공 못합니다. 무엇을 하든지 인내성을 가져야 합니다. 한 생각 어리석었을 때는 우리가 중생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라도 당연한 생각, 한 생각을 깨달으면 그것이 성불입니다. 그렇게 하면 바로 우리가 부처가 되는 것입니다. ‘나는 안 된다’고 생각지 말고 행하십시오. 틀림없이 성불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현세의 행복은 그 가운데 다 있는 것입니다. <총기 32년 8월 이달의 설법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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