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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물거품처럼 아지랑이처럼 볼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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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83호 발행인 우인(최명현) 발간일 2023-06-01 신문면수 8면 카테고리 기획연재 서브카테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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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3-05-31 12:49 조회 1,57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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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글: 종조 원정 대성사 일대기 (20회)

삶을 물거품처럼 아지랑이처럼 볼 수 있어야 한다

대성사는 한걸음에 달려가 야윈 아들을 집으로 데려왔는데, 포로수용소에서 굶주리고 고생한 탓에 처음에는 그가 아들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야위어 뼈만 남았고, 훤칠하던 모습은 어디가고 그저 지친 포로의 형상을 보일 뿐이었다.

아들을 집으로 데려와서도 이것이 실제인지 꿈인지 분간이 가질 않았다. 부부가 잠든 아들의 곁을 지키며 여윈 얼굴과 뼈마디를 쓰다듬으며 밤을 지새웠다. 이런 날이 오기를 바란 것이 얼마나 간절했는지 꿈결 같아 삶을 물거품처럼 아지랑이처럼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가르침이 실감이 되었다.

손순표는 한동안 먹고 자고 또 먹고 자기만을 반복했다. 부모는 아무 말 없이 그의 속을 헤아릴 뿐이었다. 다만 이 비극이 이 나라 온 국토에, 자식 가진 모든 부모들에게 닥친 일임을 마음에 새겼다. 대성사는 이 일을 계기로 더 큰 발심을 하게 된다.

아들의 실종이라는 가족사에 매달려 있었지만, 그 시간 동안 대성사와 한국 불교의 운명을 가른 큰 사건이 있었다.

세간에서는 이를 한국 밀교의 일대사라 평한다. 마치 불법이 지혜와 자비로써 세상을 밝히고 고난을 건너게 하듯이 서로 다른 두 큰 인물이 만나면서 현대 한국 밀교는 새로 태어난다.

대성사가 자식의 생사를 알기 위해 백방으로 다니며 지극한 기도로 삼매를 이룬 모습은 이미 밀양과 인근에 널리 알려졌다. 몸과 마음에 흔들림이 없이 오직 관세음보살을 염하며 일체 헛말과 행동을 하지 않아 몸과 마음이 일념에 든 상태를 보인 것은 화제가 됐을 뿐더러 그 모습을 보고 따라하는 이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차츰 처음 기도를 시작한 목적을 초월하여 진리에 대한 열망과 정진으로 이어졌으니, 이제까지 책으로 알고 절에 가서 경험했던 수행을 넘어서 새로운 신행에 대한 체현으로 이어지게 됐다.

대성사는 진리를 생각으로 이해하는 것과 간절함으로 실제 닦아 경지에 도달하는 단계에 대해 이런 가르침을 남겼다.

진리를 사상적으로 사유하여 이해하고 배워 닦는 데만 그쳐선 안 된다. 그 진리를 오로지 자기 생명으로 행동하고 실천하는 전인적인 체현에 도달해야 한다.”

 

결국 관세음보살을 간절히 생각하고 부르는 바가 관세음보살과 한 몸 되는 경지로 이끌며, 보살의 서원을 다짐하는 것으로 우주 법계의 진리가 자신의 생명처럼 실천된다. 일념의 기도를 통해 나와 진리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다.

고요히 무엇인가를 염하는 모습에서 한 치 흐트러짐이 없어 그 안색과 안광이 빛이 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 난리 통에 어지러운 민심 사이로 도인이 났다는 소문은 소리 없이 퍼져갔다. 이리저리 대성사를 만나길 바라는 이들도 나오기 시작했고, 집으로 학교로 찾아오는 이들이 늘어갔다. 대성사는 그들을 전쟁의 와중에 잃어버린 자식 같이 보았다. 자신을 내세워 높이거나 사사로이 따를 것을 바라는 대신 자신이 얻은바 진실에 다가서고 마음의 고통을 넘어 고요함에 이르는 방법을 일러주었으니, 오직 관세음보살을 생각하고 한시라도 소리 내어 염하라고 당부하였다. 다만 말로써 하는 것이라면 그 감응이 없었을 터이나 실제 사람들이 보고 들은 것은 흔들림 없는 불보살의 현신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자연 몸과 마음을 조복하여 그를 따르는 이들이 생겨났다.

평판은 따로 말하는 이가 없어도 멀리 퍼진다. 작은 소문은 울림이 되고 더 큰 힘을 세상에 전하는 법이다. 전쟁을 겪으며 마음 둘 곳이 없던 이들에게 대성사의 모습은 하나의 모범이 되었다.

그러던 차에 대성사 집으로 낯선 손님이 찾아왔다. 양복을 말쑥이 차려입은 풍채 좋은 신사가 자가용 지프에서 내렸다. 당시 지프차는 귀하기도 했지만 아무나 탈 수 없는 특별함이 있었다. 기별 없이 찾아온 지프차를 보고 궁금증에 동네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대성사를 찾아온 이가 누구인지 모두 궁금했다.

회당(悔堂) 손규상(孫珪祥). 불교를 배우다가 육신의 병고를 이기려 100일 정진 후 깨달음을 얻어 1947년부터 대구 인근 달성군 성서면 농림촌을 시작으로 경주와 포항 등 경상북도 일대에서 새로운 불교를 세우기 위해 고심하고 있었다. 그의 명성은 이미 세상에 잘 알려져 있었다.

교화의 근거지였던 포교당을 참회원(懺悔園)이라 부르며, 자신이 체득한 밀법(密法)을 세상에 전하고 있었다. 이전에 없던 가르침을 펼치자 세상의 관심을 끌었고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비록 자증자득하였다고 하나 법을 펼치는 일은 쉬운 일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갖추어야 할 교법과 교단의 형태를 바로 세울 일도 필요했다. 그래서 자신과 함께 종단의 기틀을 만들고 이 땅에 밀교를 전할 사람을 찾게 됐다. 그러던 중 대성사의 소문을 들었고 이리저리 알아본 끝에 밀양으로 온 것이다.

대성사는 차에서 내린 회당 대종사를 한눈에 알아보았다. 그가 어떤 이야기를 할지 이심전심으로 안 것이다. 두 거인은 자신을 소개한 후 한동안 말없이 마주 앉았다. 말 한마디가 무거웠고 눈짓 하나가 진실하게 방안을 울렸다.

손규상 대종사는 월성 손 씨로 대성사와 비록 본관은 달랐지만 성씨는 같아 먼 친척을 본 것과 같이 대했다. 금강관이 내온 다과상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대성사는 깊은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주변 사람을 물렸다.

짧은 침묵이 이어진 후 찻잔을 내려놓으면서 회당 대종사가 입을 열었다.

나와 함께 뜻을 세울 이를 찾고 있었습니다. 전란으로 세상의 고통은 깊어졌고 사람들은 나와 남으로 갈려 서로에게 미움의 총칼을 겨누고 있습니다. 누구라도 나서서 세상을 구해야 할 것이고, 여기 내가 믿고 있는 길이 있습니다.”

대성사는 그 말 한마디 한마디에 집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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