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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언행자의 가족을 찾아서- 실보사 김임이 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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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84호 발행인 우승 발간일 2006-11-01 신문면수 11면 카테고리 - 서브카테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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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미디어커넷 입력일시 18-06-02 06:45 조회 2,35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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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언행자의 가족을 찾아서- 실보사 김임이 보살
신천하지 않는 수행은 공허한 메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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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형색색 아름다운 단풍들이 물결치고, 오곡의 과일이 출렁이는 기을들녘에 농부들의 손놀림이 바쁘게 움직인다. 

흐르는 세월따라 자연의 풍경도 울긋불긋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고 있는 가운데 독야 청청 오로지 일념정진으로 옴마니반메훔 진언으로 수행하고 있는 실보사 김임이 보살을 찾아가본다.


경제와 병고해탈위해 입교

10월의 풍성한 모습처럼 실보사를 찾아가는 발걸음은 설레임으로 가득하다. 오랜 세월동안 수행하여 오신 진언행자의 수행담을 듣기 위해 찾아가는 길이기에 더욱더 반가움이 앞서는 것 일까? 실보사 서원당에서 수행하는 김임이 보살은 노령의 육신에도 불구하고 곧은 허리에 진정한 수행자와 모습이 베어 나온다.

그동안 할 이야기가 많았던 탓일까? ,인터뷰를 시작하자마자 마치 많이 준비해온 것처럼 말문이 부드럽게 나온다.

 김임이. 보살이 처음 입교하게된 것은 총기 5년, 그러니까 30여년 전이다. 그 당시 가정 형편은 각차님이 시업에 실패하여 빈털터리가 되었고, 설상가상으로 보살님도 병을 얻어 거동도 불편한 상황이었다. 6남매의 아이들을 데리고 살집을 찾아간 곳은 산중턱의 성냥개비 같은 허름한 집이었다. 삶에 대한 절망의 시기인 그 당시 채소가게 주인이 ‘성화사란 절이 있는데 그 곳에 가면 경제도 해탈되고 병도 고칠 수 있다.“고 해서 마치 실날같은 희망의 불씨를 안고 찾아가게 된 곳이 성화사이다. 당시에는 성화사가 아니라 이화서원당이었다. 그 후 스승님의 말씀이 곧 진리임을 믿고 용맹 정진하였다.


의심없이 믿고 욤맹정진할 때 해탈

처음 성화사에 갔을 때 손영우 정사님이 계셨다. 정사님은 반갑게 맞아 주면서굳은 신심을 가지고 지심으로 불공하면 반드시 해탈을 이루게 됩니다.’ 라고 말씀하셔서 스승님의 말 씀을 굳게 믿으며 죽고 사는 마지막 선택이라 생각하고 서원당에서 하루에 5시간 이상씩 매일 불공을 하였다. 아픈 몸을 이끌고 서원당에 나와 불공을 시작한지 2년이 지나자 모든 것이다 해결되었다. 가정형편도 풀리고, 아팠던 몸도 완쾌되었다. 모든 것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일이 실타래 풀리듯 술술 풀리는 것이었다.

경제도 어느 정도 풀리고 몸도 완쾌되다 보니 마음에 번뇌가 들기 시작했다. 4년 정도 지난 시기였다. 모든 일에 고비가 있듯이 그렇게 재미있던 염송이 하기 싫었다. 마음에 잡념이 생기고 모든 것이 귀찮다고 느꼈다. 마침 ! 정각사에 계시던 정각원 스승님이 성화사에 방문 하셨다. 정각원 스승님께 ‘스승님 정말 염송하 기가 싫습니다.’라고 말했더니 정각원 스승님께서는 두 손을 꼭 잡아주시면서 ‘보살아! 용맹정진만이 해탈을 이룰 수 있다네. 인욕하며 열심히 불공하게나’ 하시었다. 그 말을 듣고 나서 마음을 다잡고 힘들 때마다 정각원 스승님 의 말씀을 상기하며 하루 7시간 정진을 밥먹듯이 하였다.

성화사에서 수행한 후 울산으로 이사왔을 때 성화사 보살님들 30여명이 관광버스를 타고 가정방문을 왔는데 성화사에서 불공해서 경제적, 육체적으로 해탈한 모범가정이라 많은 보살들이 참석하였다고 한다.


수행은 말없는 실천과 자신을 살피는 것

김임이 보살 자녀 6남매는 모두 총지종에서 열심히 용맹정진하고 있다. 총지종에서 불공한 공덕을 입었기에 그 은혜갚기 위해 각자님이 더욱더 열심히 불공하시면서 자녀들 모두 불공 할 수 있도록 권유하고 이끌어 주었다.

자녀들은 부모님이 불공하는 모습을 보며 거부반응 없이 부모님들을 따라 절에 다니게 되었고 며느리들도 절에 나가 불공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모든 가족들이 총지종에서 수행한 덕분에 각자님이 열반했을 때 49재를 모시는 동안 주일마다 지내는 49재불공에 모든 가족들이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참석하여 가족애을 보여주어 모든 것이 부처님의 공덕임을 깨닫게 되었다.

이렇게 모든 가족들이 불공정진 할 수 있었던 것은 보살님의 남다른 수행덕분이다. 보살님은 수행하시면서 ‘절대 남의 모습을 보며 수행하지 마라. 자신을 보며 수행하고 절대 말을 많이 하지 마라.’는 수행철학과 수행은 말보다 실천이 중요하다, 실천하지 않는 수행은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할 뿐, 수행이라 할 수 없다며 실천을 강조하신다. 이러한 수행덕분에 가 족들은 어머님의 모습을 본받아 수행을 하고 있으며, 성화사나 실보사에서도 주변의 많은 사람들을 제도하기도 하였다.


어려운 환경일수록 더욱더 용맹정진

인고의 세월을 용맹정진으로 극복한 탓일까? 김임이 보살의 모습은 78세 노령의 육체이지만 건강하고 자비스런 모습이 베어 나온다. 김임이 보살은 병고와 싸우면서 생사의 고난을 겪 으셨다. 젊은 시절 병고와 싸우면서 주변사람 들은 50세를 살면 많이 산다고 말할 정도로 단명을 예측하였다.

이러한 단명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용맹 정진뿐이었다고 한다. 그저 스승님들의 말씀이 진리라 믿고 스승님의 말씀대로 행동하고 실천 하였다. 그저 용맹정진!, 용맹정진 뿐이었다.

이러한 용맹정진의 힘에 .의해 인연따라 다가 오는 조상영식을 천도하고 마장을 미연에 예방 하였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 있더라도 먹어봐야 제 맛을 알 수 있듯이 용맹정진하지 않고 불공의 의미를 알 수 없다고 한다. 과학문명이 발달된 요즈음 젊은 사람들은 그저 편안함만을 추구하다보니 아무리 노력해도 인력으로 풀리지 않는 일들이 많다. 인력으로 풀리지 않는 일들을 억 지로 풀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오히려 더 복잡 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러한 경우에는 부처님전에 앉아 모든 것을 풀어놓고 용맹정진해야 하지만 용맹정진하려 하지 않기 때문에 안타깝 다고 한다.

우리 총지종같이 좋은 법을 많은 사람들이 알고 수행하였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보지만 시대가 변하고 세월이 흐른 탓일까? 젊은 사람들 이 용맹정진하는 모습을 보기가 힘들다.

용맹정진만 하면 부처님께서 다 알아서 해결 해 주는데 왜 모르는지? 아쉬움을 나타내기도 한다.


탐욕을 버릴 때 지혜증득

사람들은 처음 불공할 때 부처님께 무엇인가 를 바라는 마음에서 불공을 하게된다. 몇 개월 동안 불공해도 자신이 바라는 것이 이루어 지지 않으면 퇴전하는 보살들이 많다.

그리고 보살들을 보면 바라는 것이 왜 그리 많은지도 모르겠다. 한 가지 소원도 성취하기 힘든데 수 십가지 소원을 부처님께서 어떻게 들어 주실까?

김임이 보살이 해탈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의심없는 믿음과 용맹정진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번뇌 망상의 잡된 마음을 버리는  수행을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모든 일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며 무상, 무념의 정진중에 서광처럼 갑자기 떠오르는 영감을 깨닫고 법문의 방편을 세웠기 때문이다.

무엇인가를 바라는 마음보다 부처님께 감사 하는 마음이 앞설 때 생활이 즐겁고 삶의 활력 소를 얻게 된다. 이제는 부처님께 무엇을 바라는 마음보다 부처님의 은혜갚기 위해 용맹정진 한다. 고 한다.

부처님의 크나큰 공덕은 ‘내가 더 가져야지, 내가 더 편안해야지 하는 마음보다 내가 남을 위해 무엇을 할까’ 하는 마음을 가질 때 주어지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김임이 보살이 바라는 것은 ‘모든 보살들이 부처님께서는 모든 것을 해결해 주신다는 의심없는 믿음을 가지고 스승님들의 말씀을 진리라 생각하며 따르고 실천하고 용맹 정진해서 해탈을 이루기 바라는 마음뿐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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