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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로 돌아간 자리, 적멸보궁- 함백산 정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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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86호 발행인 우승 발간일 2007-01-01 신문면수 10면 카테고리 전통사찰 문화탐방 서브카테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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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미디어커넷 입력일시 18-06-05 06:02 조회 2,69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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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로 돌아간 자리, 적멸보궁- 함백산 정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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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공기를 마시면서 부리나케 달려 겨우 출발시각에 맞추어서 도착했다.

오랜만에 도반들과 사찰탐방 할 시간이 주어 진다는 느낌만으로도 행복하다.

그리고 일년 동안 함께 해온 도반 들과의 시간도 하나 하나가 소중하게 느껴진다.

며칠전에 많은 눈이 내린데다가 더욱이 강원도라는 지역 때문에 고민도 많이 되었는데 다행히 부처님의 보살 핌으로 날씨가 우리들의 걱정을 씻어 내었다.

중부 고속도로를 타고 영동 고속도로와 중앙고속도로를 번갈아 타면서 영월, 태백 가는 도로에 몸을 실어 정선에 접어들 즈음에는 정선 아리랑이 떠올랐다.

정암사는 우리나라 5대 적멸보긍의 하나이다.

그래서 출발부터 가슴 설레이나 보다.

또한 정암사는 경남 양산에 있는 영축산 통도사, 강원도 오대산 상원사, 영월 사자산 법흥사, 그리고 설악산에 있는 봉정암과 함께 자장율사가 모셔온 석가모니부처님의 진신사리 를 봉안한 ‘5대 적멸보궁’중의 하나로 유명하다.

적멸이란 모든 번뇌의 불이 꺼진 곳, 본래의 마음자리인 고요의 상태로 돌아감을 말한다고 한다. 법신인 부처의 세계에서 육신으로 인한 마지막 장애까지 훌훌 털어 버리고 영원한 진리 그 자체로 돌아가면 곧 적멸인 것이다. 적멸보궁이란 석가모니 부처님의 뼈에서 나온 사리를 모시는 보배로운 궁전의 의미라고 한다.

불교에 입교한지는 꽤 오래됐지만 이제야 적멸보궁에 대하여 알았다는 것이 부끄럽다는 생각 마저 들게 하였다. 적멸보궁에는 이러한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봉안되어 있기에 별도의 불상을 두지 않는다

이는 일견으로 밀교에 가까운 모습이 아닐까 라고 나름대로 생각도 해 보았다.

정암사 적멸보궁에도 역시 불상이 없다. 다만 부처님이 앉아 계신 것을 상징하는 방석이 수미단 위에 놓여 있을 뿐이다. 사리가 모셔진 곳이 바로 빈 방석 너머 장방형으로 난 창문 밖에 서 있는 수마노탑에 봉안되어 있다. 이 수마노탑을 보궁안에서 직접 바라볼 수는 없고, 탑을 제대로 친견하려면 적멸보궁 뒤편 급경사를 따라 100m쯤 올라가야 한다.

눈 덮인 일주문을 들어설 때면, 거 창하게 해탈까지는 이르지 못해도 쓸데없는 아집은 미련 없이 실어 보낼 수 있을 것만 같다. 왼쪽으로 기다란 건물이 있고 정면 오른쪽으로 범종각 이 보인다. 범종각을 지나 '극락교를 건너게 되면 정암사의 주전이라 할 수 있는 ‘적멸궁’ 으로 들어서게 된다.

적멸궁 앞은 산그늘 때문인지 하얀 눈이 그대로 소복이 쌓여 청정한 마음이 절로 생겨났다.

잠시동안 기념 사진을 찍으면서 동심의 세계도 느껴 보았고 눈 한줌 뭉쳐서 보살님께 장난도 쳐보았다. 언제 또 이런 시간이 주어질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다리를 건너지 않고 건물을 끼고 왼쪽로 돌게 되면 정면에 관음전이 있고, 그 뒤쪽 언덕으로 휘굽어진 소나무와 함께 삼성각과 자장각이 있다.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봉안된 정암사의 사리탑은 극락교 위쪽에 있는 다리를 건너 비탈진 언덕길을 6〜7분 쯤 올라야 한다. 부처님이 남기신  적을 찾아가는 길은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다. 눈이 내린 탓으로 미끄러움에 조바심이 났다. 울창한 숲을 지나 자마자 시작되는 급경사의 오르막길은 조금만 여유 있는 마음으로 걷는다면 편안하게 오를 수 있게 되어있다. 오름길 내내 길을 만든 이의 정성이 눈에 띄도록 단정한 돌들이 가지런하게 놓여져 고궁의 돌담길 같은 착각을 일으키는 그런 길이다.

수마노탑은 모전석재를 이용한 7층탑으로 높이는 9m가량이다. 탑신을 구성하고 있는 석재는 수 성암질의 석회암으로 판석의 길이는 30~40cm , 두께 5-7cm정도다. 상륜부는 화강암으로 조성한 노반위에 모전석재를 올리고 다시 그 위에 청동제 상륜을 설치한 탑이다. 또한 수마노탑은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돌아올 때 가지고 온 마노석으로 만든 탑이라 하여 마노탑 이라고 하는데, 마노 앞의 수자는 자장의 불심에 감화된 서해 용왕이 마노석을 동해 울진포를 지나 이곳까지 무사히 실어다 주었기에 ‘물 길을 따라온 돌’이라 하여 덧붙여진 것이라고 한다.

수마노탑이 칠보 중의 하나인 마노석으로 되어 있다 하니 엄청 화려할 것으로 생각할지 모르나 전혀 그렇지 않다. 백색을 띤 수수한 색깔에 은은함이 담겨있는 정겨움이 가슴에 와 닿는다.

수마노탑은 자장율사가 전란과 천재가 없는 태평성대를 기원하며 불사리를 모시며 세웠다고 하는데 현재의 자리에 탑이 들어서기까지의 과정을 알려주는 설화가 있다.

자장율사가 정암사 근처에 불사리 탑을 세우려 하였으나 세울 때마다 계속 쓰러졌다고 한다. 이에 율사가 간절히 기도하니 동지섣달 혹한 속에도 하룻밤 사이에 칡 세 줄기가 눈 위로 뻗다 멈추어 서니 그곳이 지금의 수마노탑, 적멸보궁, 사찰터라고 한다. 그런 연유로 정암사를 한때는 갈래사(칡넝쿨에서 온 절)라 하였다고도한다.

본래 자장율사는 당나라에서 귀국 하며 석가세존의 사리, 치아, 염주, 불장주, 패엽경등 석가의 신물을 가져왔다고 한다. 이 신물들은 ‘세 줄기의 칡이 서린 곳’에 나누어 각각 금탑과 은탑 그리고 수마노탑에 모셨다고 한다.

자장율사는 후세 중생들의 탐욕을 우려해 불심이 없는 중생들이 육안으로는 금탑과 은탑을 볼 수 없게 신통을 부려 현재 금탑과 은탑은 그 행방이 묘연하다 한다. 정암사 북쪽으로 금대봉이 있고 남쪽으로 은대봉이 있으니 그간의 어디에 금탑과 은탑이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정암사는 석가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곳이기도 하지만 자장율사가 일생을 마친 곳이기도 하다,

또한 ‘숲과 골짜기는 해를 가리고 멀리 세속의 티끌이 끊어져 정결하기 짝이 없다’ 하여 정암사라는 이름이 붙여졌다는 정암사는 신라의 큰스님이었던 자장율사가 645년 선덕여왕 14년에 계곡 깊고 산이 높아 산세 웅장한 태백산 서쪽 기슭인 현재의 터에 창건하였다 한다.

삼국유사 제4권 자장정율조에는 자장율사가 선덕여왕 14년(645)이곳에 석남원을 세웠고, 그 석남원이 지금의 정암사라는 기록이 있다. 여기에는 자장율사와 문수보살 사이에 얽힌 설화가 실려 있지만 언제 무엇 때문에 정암사로 바뀌었는지 그 밖의 세세한 내력은 전해지지 않는다고 한다.

고요하고 정겨운 정암사를 찾아 많은 것을 느끼고 돌아 왔다.

때마침 점심 공양시간이라 오랜만에 사찰에서 공양도 하였고, 모퉁이 한켠에 있는 정겨운 장독대와 청국장 맛에 감사의 마음과 행복감을 느낄 수가 있었다. 비록 바루공양은 아니 였지만 정암사의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가 이어다

산과 전나무들의 배웅을 받으면서 돌아오는 길에서 모든 아집을 버릴수 있길 바래 보았다.

탄광촌과 정선 아리랑이 함께 어우러진 정암사의 답사는 불자라면 한번 쯤은 꼭 찾아 볼만 하다는 생각을 해 본다.

최해선(총지사 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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