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탈의 감로수 흐르는 - 구례 천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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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84호 발행인 우승 발간일 2006-11-01 신문면수 10면 카테고리 전통사찰 문화탐방 서브카테고리 -페이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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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미디어커넷 입력일시 18-06-02 06:19 조회 2,417회본문
지리산 가는 길은 늘 마음이 조급하고 설렌다.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는 보고픔이 조급증을 더해 주는 것도 있지만 사실 몰려드는 인파 때문에 서두르지 않고는 해거름 돌 아오는 길이 너무 고달파서 종종 걸음을 해야 한다.
화려하지 않은 가을의 서사시! 올 뱀사골 가을은 바로 그런 곳이었다.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의 서글픈 죽음 이 전해져 온다는 뱀사골의 전설 위엔 아직 껏 아물지 않은 슬픈 역사가 붉은빛으로 드리워져 있다. 토벌군이나 빨치산이나 다 같 은 핏줄들이기에 이들의 혼은 이데올로기의 처절한 희생물이 되어 이곳 뱀사골 아니 지리산 전역에 해마다 가을이 되면 붉은꽃으로 피어난다.
샘물마저 숨었다는 전설의 산사지리산 천은사. 고요함이 더해 적막 속에 숨어 있는 천은사는 울창한 숲에 가려 일부러 찾지 않고서는 지나치기 십상이다.
오래전에 원교 이광사가 쓴 일필휘지 ‘천은사' 의 일주문이 인상적이고 일주문을 지나면 종석대에서 발원한 천은사 계곡 물줄기가 천은지로 모이기 직전의 계류위에 있는 수홍루를 적시는 계곡과 호수가 짙푸르다 이름하여 한 폭의 동양화다.
수홍루는 계곡을 건너 절간으로 들어가는 무지개다리 위에 만들어진 정자다. 천은지에 비친 수홍루 물그림자는 가히 절경으로 여름 이면 찬바람이 절로 일어 피서지로 그만이다. 수홍루를 건너면 달고 시원한 샘물로 목을 축일 수 있다. 이른바 감로수다. 바위를 다듬어서 만든 홈통에 고인 맑은 물 감로수는 천은사의 상징이기도 하다.
천은사의 최대 자랑거리가 감로천 샘물인데 원래 감로수와는 거리가 있는 듯하다.
하지만 천은사의 샘물에 얽힌 사연을 음미 하며 가만히 목을 적셔 볼일이다
여기서 가파른 계단을 올라서면 비로소 법당이다. 비록 오래된 건축물이 아니지만 천은사는 그런대로 오래된 절의 품위를 보여주 고 있다. 새로 지을때 옛 모습을 살리기 위 해 무진애를 쓴 정성의 승화물이리라.
수홍루에 비친 자신의 그림자를 보며 사바를 건넌 사람들. 절 마당을 거닐며 살아온 세월들을 떠올려 보는 것도 속세 사람들에겐 참뜻이 있지 않을까.
천은사는 화엄사, 쌍계사와 함께 지리산의 3대 명찰로 손꼽힌다. 지리산 서남쪽 기슭으로 지세가 포근하고 양명하다. 사찰기록에는 인도 승려였던 덕운이 신라 흥덕왕 3 년(828)에 창건한 것으로 되어 있다. 특히 이곳의 샘물은 만병에 특효라고 하여 처음에는 감로사라고 불렀다.
그 뒤 875년(헌강왕 1년)에 도선국사가 중건하였고, 고려 충렬왕 때에는 남방제일선찰로 승격되었으나 임진왜란 때 완전히 불에 타고 말았다. 1678년 선숙종에 중건하면서 천은사로 이름을 바꾸었다. 이름을 바꾼데는 그만한 까닭이 있다. 중건 당시 감로사의 샘가에 큰 구렁이가 자주 나타나 놀래게 하자 한 승려가 이를 잡아 죽였더니 그 뒤부터는 물이 솟 아나지 않았고 샘이 숨었다 해서 천은사로 개명하였다. (절 식구들은 살생을 금하고 있는 스님이 어떻게 뱀을 죽였겠느냐면서 한 사코 스님이 죽인게 아니라 공사장 인부가 죽였다고 말을 고친다)
그런데 절 이름을 바꾼 뒤 이상하게도 이 사찰에는 원인 모를 불이 자주 나 편할 날이 없었다. 재화가 끊이지 않자 그것은 절의 수기를 지켜주는 뱀을 죽였기 때문이라며 두려워하였다. 그때 조선 4대 명필의 한 사람인 이광사가 수체로 물흐르듯 ‘천은사' 라는 글씨를 써서 수기를 불어넣은 현판을 일주문에 걸게 한 뒤로는 다시 불이 나지 않았다고 한다.
현판글씨를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세로로 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금도 새벽녘 고요한 시간에 일주문에 귀를 기울이면 현판 글씨에서 신운의 물소리가 연연히 들 린다고 전해온다.
극락보전 뒤로 계단을 올라가면 여러 전각 중 가운데 있는 전각이 관음전이다. 대승불 교의 수많은 불 보살 가운데 중생구제를 위한 대자대비의 원력으로 대중들에게 가장 친 근한 보살인 관세음보살을 모신 전각이 관음 전인데, 사찰에 따라서는 원통전, 대비전, 보타전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관음전에는 관세 음보살과 더불어 그 협시로서 남순동자와 해 상용왕을 모시며 그 뒤에 천수천안관세음보 살도나 수월관음도 혹은 아미타 불탱화를 봉안한다
관세음보살은 대체로 손에 연꽃을 들고 있다. 연꽃은 본래 중생이 갖추고 있는 불성을 상징하는 것으로 그 꽃이 완전히 피어난 것은 불성이 드러난 성불을 의미하고 아직 덜 핀 봉오리는 불성이 번뇌에 물들지 않은 것을 상징한다. 십일면의 얼굴을 지닌 관세음보살은 자비상· 진노상· 대폭소상등 중생을 제도할 때마다 여러형태의 얼굴을 말한다.
천은사 뜰에 들어서면 들리는 자연으로부터의 법문, 그것은 나무잎새 스치는 바람소리, 계곡의 물소리, 호수에 떠있는 물새떼의 울음소리, 가슴을 시원케 하는 소리들이다. 구태여 향을 지피고 경을 읊지 않아도 누구나 맑아지는 정신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정신을 맑아지게 한다는 천은사의 감로수는 아마도 세속의 때가 묻지 않은 청정의 바람과 물일지도 모른다. 혹 천은사를 찾는다면 감로수가 사라진 이유를 따져 볼 일이다. 자연을 무시하고 마구 살생을 일삼은 인간의 무지가 감로수를 사라지게 한 것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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