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지종을 인생의 동반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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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86호 발행인 우인(최명현) 발간일 2023-09-01 신문면수 9면 카테고리 신행 서브카테고리 -페이지 정보
필자명 전혜선 필자법명 - 필자소속 벽룡사 필자호칭 보살 필자정보 - 리라이터 -페이지 정보
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3-09-09 15:24 조회 1,365회본문
총지종을 인생의 동반자로
저는 총지종을 인생의 동반자로 삼고 마음이 풍요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제가 총지종에 처음 입교하게 된 계기는 사소한 일 때문이었습니다. 스물아홉인가, 간단한 수선이 필요해서 한복집을 찾았습니다.
‘은혜는 평생을 잊지 말고, 수원(愁怨)은 잠시라도 가지지 말라.’
이 글귀가 벽에 딱 붙어 있었습니다. 작은 종이에 크지 않은 글씨로 써진 문구였는데 어떻게 눈에 들어오게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읽는 순간, 화살에 꽂힌 것 마냥 구절이 마음에 콕 박혔습니다. 그 아래에는 또 다른 구절이 있었습니다.
‘수원은 수원으로 풀리지 않고, 은혜를 생각할 때 풀리니라.’
이 구절 역시도 얼마나 좋던지 읽는 내내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습니다. 글이 너무 좋아서 정신이 번쩍 들고 두 손에서 땀이 날 정도였습니다. 당장에 저 글귀를 베껴 써서 저의 집 방마다 붙여놓고 싶었습니다.
“저 글이 그렇게 마음에 닿아?”
“네, 정말 귀중하고 좋은 글인 것 같아요.”
여전히 글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제게 언니는 언제 한번 시간을 내보는 게 어떠냐고 했습니다.
“시간이요? 왜요?”
“내가 더 좋은 법을 가르쳐줄게.”
그렇게 염주를 건네받게 되었습니다. 옴남, 옴치림, 옴마니반메훔이 쓰인 노트도 받았습니다. 합장을 하고 불공을 하는 걸 배우면서도 기분이 이상했습니다. 처음 발음해보는 생소한 진언과 손짓임에도 하나도 낯설지가 않고 마음에 속속 박혔기 때문입니다. 나무삿다남 하며 준제진언을 108번 해야 하는 불공과 매일하는 정송에 대해서 배우고 익혔습니다.
당시 저는 한 상에 60원 하는 밥장사를 하던 중이었습니다. 장사에 대한 의욕은 넘치지만 요령이 없어서인지 늘 피곤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점심 장사 때 손님 치르고 방에 앉아 염주를 돌리고 있노라면 그렇게 잠이 쏟아졌습니다. 식당 일에 집안일까지 병행하느라 더 그랬던 모양입니다. 그렇게 염주를 쥐고 앉으면 병든 닭처럼 졸면서도, 불공을 하는 게 좋고 또 든든했습니다.
그때는 새벽 4시가 되면 통행금지가 해제되는 사이렌이 울리던 시절이었습니다. 사이렌 소리를 듣고 일어나면 얼굴만 대충 닦고 절에 갔습니다. 새벽녘 다른 신도들의 집 창문을 서로서로 두들기며 새벽잠을 깨워서 함께 가서 마음을 닦았습니다. 새벽바람이 추우니 두꺼운 옷을 있는 대로 껴입고 불공을 마치고 나면 식당 장사에 필요한 장을 보러 가는 날이 이어졌습니다. 그야말로 바쁜 생활 속에 용맹정진의 시절이었습니다. 돌이켜보면, 그때 저와 함께 정진했던 보살님들이 지금의 총지종을 만든 게 아닌가 싶습니다.
스승님의 법문을 들었는데 눈과 귀와 마음이 탁 트이는 느낌이었습니다. 점심나절에 법문 시간이 있으면, 식당의 아주머니께 아무리 식당에 손님이 몰려도 부르지 말아 달라고 누누이 당부한 다음 법문 말씀을 경청하는데 몰두했습니다. 스승님의 말씀을 듣고 있으면 정신이 맑아지고 마음이 정화되는 기분이 들곤 했습니다. 지금도 기억에 남는 스승님의 가르침이 몇 개 있습니다.
‘남을 구렁텅이에 빠뜨리기 위해서는 나 역시도 가만히 서 있을 수는 없다. 함께 구렁텅이를 향해 몸을 움직여야 남을 빠뜨릴 수가 있는 법이고, 자칫하며 나 역시도 구렁텅이에 빠지기 십상이다.’
‘초와 향은 자신의 몸을 태우면서 남을 이롭게 한다. 향은 자신을 태우며 남에게 향기로운 향을 주고, 초는 자신을 태우며 빛을 내어 남을 밝게 해준다.’
이 말이 마음에 참 와 닿았습니다. 생전 그런 가르침을 어디에서도 듣도 보도 못하다가 배우니 소중한 지혜를 얻은 듯했습니다. 그렇게 총지종에 빠져들었습니다. 그 후로는 다른 종교는 물론 다른 절에도 발을 들이지 않았습니다.
살다가 만나는 고난에 있어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을 남의 탓으로 돌리는지 모르겠습니다. 자기 자신이 참회하고, 뉘우치고, 깨쳐야 한다는 것을 모르고 남의 탓으로만 돌리는 어리석은 중생이 바로 우리 인간인 듯합니다. 총지종을 만나서 마음을 닦은 후 저는 남의 탓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자식 원망, 부모 원망, 남편 원망도 일절 하지 않습니다. 원망을 품고 있어 봐야 하등 좋을 게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희사법도 총지종이 가지고 있는 정말 좋은 강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덕분에 보시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깨우칠 수 있었습니다. 대가를 바라고 뭔가를 한다면 그것은 결코 참된 보시가 될 수 없습니다. 식당 일을 할 때에도 제가 손님의 반찬을 더 챙겨줄라치면, ‘저 사람이 다음에도 오기를 바라서 그러는 건가?’ 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저의 대답은 단연 ‘아니요.’ 입니다. 보시란 이렇게 하면 이런 식으로 돌아오고 저렇게 하면 저런 식으로 되돌아오겠다고 계산을 하는 게 절대 아닙니다. 오히려 그런 계산을 하는 순간 모든 것은 도루묵이 되고 맙니다. 어쩌면 더 나빠질 수도 있습니다. 바라던 바가 오지 않아 서운함이라는 안 좋은 감정이 생기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아무쪼록 보시를 할 때에는 아무 생각 없이 고마운 마음 하나로 해야 합니다. 그래서 희사라 합니다. 이것은 제가 경험으로 터득한 깨달음이기도 합니다.
저는 총지종을 만난 후, 총지종을 제 인생의 동반자로 삼았습니다. 그러고 나니 한결 더 삶을 지혜롭게 살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저처럼 총지종 안에서 귀중한 법문을 만나고, 지혜를 얻어 보다 마음 편하게 삶을 살아가게 되길 서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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