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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사의 아사리와 조선조 총지사 풍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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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85호 발행인 우인(최명현) 발간일 2023-08-01 신문면수 8면 카테고리 밀교 서브카테고리 밀교법장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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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명 정성준 필자법명 - 필자소속 전 동국대학교 티벳대장경역경원 필자호칭 연구원 필자정보 - 리라이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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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3-08-01 15:48 조회 1,43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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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사의 아사리와 조선조 총지사 풍운

밀교의 의궤나 도량의 설행을 살펴보면 차제 가운데 조사의 명호를 염송하는 예참이 있어 준엄한 사자상승의 법맥을 공유하고 부촉과 다짐을 새로이 하는 의식을 볼 수 있다. 티벳과 일본의 경우 공히 비로자나불과 금강살타, 석가모니불, 용수보살을 포함하고 다음 종파의 종조로부터 현재까지 전승된 조사들의 명호를 빠짐없이 염송한다. 한국불교의 경우 신라의 불가사의를 위시해 선무외와 불공으로부터 양부 수법을 전승받은 아사리가 적지 않다. 고려시대 밀교도량을 설행했던 총지종과 신인종의 의궤 시작 부분에는 당연 한국 밀교의 법맥을 전한 아사리들의 명호가 존재했을 것이다. 

한때 조선시대 밀교를 연구하면서 조선조 제작된 향완이나 ????진언집????의 실담이 꽤 정확하게 쓰인 것, 용성선사가 전한 육자진언을 비롯해 조선조 밀교 법본이 적지 않게 남겨진 이유에 대해 많은 의문을 품었다. 조선조 밀교를 지켰던 주체를 선사에 국한하기에는 무리가 많았지만 한국 밀교의 마지막 흔적인 전남 무안의 총지사 기록을 보고 의문이 풀렸다.  

현재 무안문 몽탄면 대치3리에는 총지마을이 있는데 그 유래는 725년 건립된 백운산 기슭에 세운 총지사에 기인한다. 총지사는 승달산 법천사와 함께 당에서 온 정명스님에 의해 건립되었고, 조선 현종 7년(1666) 중창되어 조선말까지 존재했다. ????동사열전????에 의성(義誠)스님은 1758년(영조 34)생으로 성은 김 씨였으며 호는 설암(雪巖) 또는 영주(靈珠)라 하였다. 16세 때 무안 총지사에서 해암(海庵)을 은사로 득도하여 윤우(倫佑)로부터 선을 전수 받고,  총지사 총섭과 담양 용흥사(龍興寺) 총섭을 역임하였다. 총지사의 법맥을 살펴보면 유일(有一)로부터 도연(禱演)을 거쳐 윤우에게 이어졌으며, 의성은 석호(石虎)·녹일(祿一) 양 제자가 있었다. 의성은 선운사(禪雲寺) 한산전(寒山殿)에서 1839년(헌종 5년)에 입적하였으니, 나이 81세, 법랍 67세였다. 

의성의 활동은 조선불교의 선종은 명실상부하게 선밀겸수(禪密兼修)의 면모를 보여주는 것이며, 현재 한국불교의 선찰에서 천수다라니 염송과 참선이 함께 이루어지는 이유를 알 수 있으나, 후손들이 어리석어 선학들의 현밀겸수의 자취를 알지 못하는 것이다. 이능화는 ????조선불교통사????에서 조선불교 이판의 수행을 간경, 참선, 염불이라 하였으나, 필자는 여기에 더해서 밀교를 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총지사는 1810년 당시 토호였던 나주 임씨 문중에서 자리를 빼앗아 묘를 썼고 이에 분노한 젊은 승려들이 무덤에 못을 치자 세도가는 총지사를 불태웠고 아사리들은 법당과 함께 소신하여 한국불교 밀교의 마지막 터전이 사라지게 된 것이다. 현재 총지사 터 주변은 무안군에 의해 문화단지로서 복원노력이 시도되었으나 절터는 개인소유로 넘어가 사업은 난항을 겪고 있으며, 현재는 총지사 인근의 두 석장승 보존대책으로 절하되어 총지사의 흔적이 절멸될 지경에 이르렀다. 

무안군 시도하고 있는 총지사 터 복원과 문화단지 조성의 한계는 밀교라는 최고의 문화적 소재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총지사의 복원과 관련해 밀교종단과 각계의 주도로 밀교지식을 무안군의 지자체와 공유하면, 밀교박물관이나 연구소가 무안에 서는 것도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소재가 부족할 경우 동아시아와 중앙아시아의 밀교 단체와 유물을 공유하여 다국적의 도량을 열어 밀교의 세계화를 지향하는 것도 상상해볼 수 있다. 

육자진언은 인도와 중앙아시아, 동아시아를 관통하는 불교문화 소통과 융합의 이정표였고 특히 고려불교의 육자진언과 준제진언의 상승은 인도와 동아시아 밀교가 한때 공유했던 세계화와 소통의 흔적이다.  과거 총지종의 존재는 무안 총지사와 무관하지 않다. 위로는 신라시대 불가사의 아사리에 닿아있으며, 조선시대 유행한 선밀겸수의 풍조를 이어 현대 한국불교 총지종에 계승된 역사의 인과가 존재한다. 사자상승의 법맥을 정리하고 역사와 흔적을 찾아내 후손에게 새로이 창출된 지식과 가치를 전하는 것은 종조께서 육자진언과 준제진언의 겸업을 주창한 뜻과 일치하지 않을까 생각한다.(무안 총지사는 예전 언급한 적이 있으나 ????공양차제법소????를 살펴보다가 눌변을 더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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