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생활이 수행의 대상이 되어야 “발 밑을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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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190호 발행인 법등[구창회] 발간일 2015-10-07 신문면수 4면 카테고리 불교의 선정 서브카테고리 -페이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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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18-05-18 09:14 조회 2,613회본문
일상생활이 수행의 대상이 되어야 “발 밑을보라”
어떤 일을 할 때는 바로 그 일에 마음을 쏟아야 하며 다른 것에주의를 돌려서는 안된다. ’ ‘지금 바로 이 순간에 산다’라는 의미이다
사념처 수행은 체계적인 수행방법으로서 불교 수행자라면 누구나 전심전력으로 수행해야 한다. 그러나 이 수행은 앉아서만 하는 것이 아니다. 물 론 하루 중에 일정한 시간을 정해놓고 꾸준히 하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지만 정념 수행은 앉아있다고만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보고 듣고 부딪치고 느끼는 모든 것이 수행의 대상이 되 어야 한다. 우리가 지금 발을 딛고 있는 이 현실을 떠나서는 수행이란 것이 있을 수 없다.
심산유곡에 들어가 있다고 하더라도 밥 먹고 잠 자고 용변 보는 등의 일상생활을 완전히 무시하기는 어렵다. 설사 외적 환경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우리의 마음은 시시각각 온갖 번뇌 망상을 일으킨 다. 더욱이 중요한 것은 정념의 수행은 외계의 사 물에 의해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어디까지나 우리 의 마음을 살펴봄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다.
우리의 몸이 어떠한 환경에 처해있든, 어떤 일 을 하고 있든 상관없이 우리는 그 모든 것을 수행 의 도구로 삼으 수 있다. 절을 하고 경을 읽고 진언 을 외우는 것도 수행의 방법이지만 그런 것을 하지 않을 때에도 행주좌와, 어묵동정 모든 것을 가부좌하여 앉아있을 때와 마찬 가지로 수행의 과정으로 삼아야 한다. 수행이라면 반드시 절복을 입고 목탁을 두드리며 앉아있어야 만 제대로 수행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 수행은 우리의 생활 모든 방면이 수행과 연결되어 있 다. 밥먹고 세수하고 용변 보고 차 마시고 대화하 는 그 모든 과정에서 자기가 하고 있는 행위에 대 하여 마음 줄을 놓치지 않고 있으면 그것이 정념 의훈련이 된다.
밥 먹을 때에는 밥 먹는 것을 알아차리고 길을 갈 때는 길 가는 것을 알아차리고 누워 있을 때에는 자 기가누워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당연한 말인 것 같지만 우리의 행위를 세밀하게 주시하면 밥 먹으면서도 다른 생각을 하거나 다른 사람과 대 화를 나누면서도 자기의 생각은 이리저리 달아나 는 것을 알게 된다. 밥 먹으면서 신문을 보거나 텔 레비전을 보면 두 가지를 동시에 하는 것 같지만 실 은 어느 하나도 집중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런 것은 사소한 것으로서 살아가는 데에 크게 중요시 될 것은 없지만 정념을 훈련하는 과정에서 는 엄중히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이다. 자꾸만 이 리저리 달아나는 생각을 잘 붙들어 매는 훈련이 정념 수행이기 때문에 무엇을 할 때에는 항상 그것을 잘살펴야 한다.
선종에서는 나무하고 물 긷는 모든 것이 수행이 아닌 것이 없다고 하는 것도 일상생활 모든 행위 와 동작, 언어가 수행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의 미이다.
즉 우리가 행위하고 접하는 모든 것에 마음을 쏟 아 부어 놓치지 않는 정념이 있어야 한다. 흔히 ‘마 음 챙김’으로 표현되는 정념이 항상 몸에 익어야만 바른 수행이 될 수 있다. 출가승 중에 가끔 몇 안거 를 지냈느니 어쩌니 하면서 오래 앉아 있었던 경험 을 자랑스레 말하며 자기의 수행이 깊다는 것을과 시하던 사람이 대접을 제대로 해주지 않는다고 벌 컥 화를 내거나 심사가 뒤틀어진 모습을 내비치는 것을 보면 수행이 일상생활 전반에 미치지 못하고 오직 앉아있는 것만을 수행으로 여기는 어리석음 을 보는 것 같아 씁쓰레한 경우가 있다.
예를 들면 설거지를 할 때 연속극을 보고 싶어 서둘러 일을 끝내려다가 접시를 깨뜨리는 경우나 운전을 하면서 딴 생각에 몰두하거나 전화기를 만 지다가 사고를 내는 것도 마음챙김을 놓치기 때문 에 그렇다. 선가에서 정전백수자라 고 하는 것도 그런 의미이다.
이 말은 ‘뜰앞의 잣나무’라고 잘못 알려져서 무 슨 심오한 의미라도 있는 것처럼 선가에서 화두로 쓰여지고 있는데, 정확한 의미는뜰 앞의 잣나무가 아니라 ‘뜰에 떨어진 잣’을 의미한다. ‘백수자’라는 것이 바로 잣 열매이다. 마당을 쓸다가 제자가 도 에 대해 물으니 스승이 “다른 것 신경 쓰지 말고 너 발밑의 잣 열매나 밟지 않도록 주의하라’라는 의미 로 쓰여진 것이다. 정념은 바로 이러한 것을 의미 한다. 무엇을 할 때는 우선 그것에 주의를 기울여 야 실수 없이 잘하게 된다.
어떤 일을 할 때는 바로 그 일에 마음을 쏟아야 하며 다른 것에 주의를 돌려서는 안된다. ‘지금 바 로 이 순간에 산다’라는 의미이다. 정념 의 수행은 하루아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일 상생활을 통하여 항상 마음을 붙들어 매어 대상에 마음을 기울이고 지금 무엇을 하고 있다는 것을 확 실히 자각하면서 할 때에 그 일은 완전해지고 그 시간이 아름다운 한 단락의 생명으로 존재하게 되 는것이다.
초심을지니라
깨달음을 향한 순수한 마음의 유지 일상생활이 수행이 되어야
초심이라는 것은 원래 우리가 지닌 때 묻지 않 은 청정한 마음이다. 불교적으로 말하면 일체유정 이 본래부터 가지고 있는 여래청정식이다. 수행을 하는 목적은 우리의 마음을 바로 들여다보아 탐진 치로 가리어진 원래의 청정심을 회복하기 위한 것 이다. 그러기 위해서는초심을 지니는 것이 중요하 다. 초심을 지 닌다는 것은 수행자의 마음이 초지 일 관 깨달음을 향한 순수한 마음을 버리지 않는 것으 로서 사물을 신선하게 바라보는 능력 이 기도 하다.
정념은 바로 지금을 살아가는 것이며 생각을 바 로 지금 여기에 집중하는 것으로서 밥 먹을 때는 밥 먹고 차 마실 때는 차 마시는 것에 집중하는 것 이다. “그럼 밥 먹을 때 밥 먹고 차 마실 때 차 마시 지 뭘 하겠느냐?’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우리는 그 러한 행위를 하는 짧은 순간에도 오만가지 생각을 다 떠올리며 집중하지 못한다. “밥이 입으로 들어 가는 지 코로 들어가는 지 모르겠다.”고 흔히 하는 말이 이런 경우이다. 그렇게 되어서는 진정한 밥 맛도 모르게 되고 차의 깊은 맛도 음미를 하지 못 하게 된다.
초심을 지니라는 것은 처음에 하려고 마음먹었 던 그 순수한 마음을 지니고 사물을 바라보면 항상 새로운 느낌 이 오며 사물을 신선하게 바라 볼 수 있 게 되어 쓸데없는 번뇌와 망집에 끄달리지 않게 된 다. 수행을 하다 보면 지루하기도 하고 끝이 안보 이는 것 같아 싫증을 내기도 하며 온갖 번뇌 망상 이 들어 ‘이 짓을 왜 하고 있지?라며 스스로에게 반 문해 보기도 한다. 그러다가 퇴전을하고 치워버린 다.《쌍윳다 니까야》첫 머리에 보면천신이내 려와 부처 님에게 어떻게 해서 저 강을 건넜느냐고 질문하는 장면이 있다. 부처님께서는“서두르지도 않고 멈추지도 않으면서 유유자적하게 건넜다.”라 고 말씀하시는데 강을 건넌다는 것은 보리를 증득 하신 것을 상징적으로 말씀하신 것이다. 멈추면 가 라앉고 서두르면 물결에 휩쓸리게 된다는 의미로 서 수행자의 수행에 임하는 태도가 어떠해야 하는 지를 잘 보여주신 대목이다. 수행을 한다고 야단스 럽게 할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모두가수행이라고 여기고 수행을 시작하려고 했던 초기의 초심을 잃 지 않고 부지런히, 그러면서도 쉬지 않고 꾸준히 나아가다 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수행이 깊어 져 있을 것이다. 큰 깨달음을 언젠가는 얻고야 말 리라는 굳은 결심을 지녔으면 그 초심을 잃지 말고 꾸준히 느긋하게 일상생활 모든 것을 수행의 대상 으로 삼아 정념을 추구하다 보면 깨달음은 저절로 가까이 있게 된다. ‘초발심시변정각’이라는 말도 이 런 맥락에서 음미해 볼 수 있다.
호흡으로 자기의 심신을 분명히 알기
가장 쉬운 수행은 호흡관찰
호흡관찰 만으로도 여유와 우아함이
참다운 수행을 하려면 앉아서만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일을 하고 있든지 자기의 신체 를 관찰하는 것을 통하여 수행을 지속해야 한다. 앉아서 수행할 때는 말할 것도 없지만 일을 하거 나 길을 가거나 밥을 먹거나 운동을 하거나 놀거나 상관없이 자기의 신체를 관찰하여 분명하게 아는 연습은 정념을 유지하도록 하며 안정된 마음 상태 를 유지하게 한다. 신체를 관찰함에 있어가장 기 초적인 것은 호흡 관찰이다. 우리가 어떤 상황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던지 호흡관찰, 즉 아나빠나 사 띠를 통하여 마음을 고요하고 안정되게 유지할 수 있다. 먼저 주의력을 호흡에 놓고정념 가운데에 자신을 놓으면 우리의 심신이 안정되면서 신체의 다른 부위의 관찰도 용이하게 된다.
밥을 먹든 이를 닦던 차를 마시던 운전을 하던 어떤 일을 하던지 어떤 장소에 있던지 항상 호흡 에 주의를 돌리고 집중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신 체의 변화도늘 알아차리게 되어 밥을 먹으면 밥을 먹는다고 분명히 알아차리고 길을 가면 간다고 분 명히 알아차리고 운전을 하면 운전을 하고 있는 상 태를 분명히 알아차리게 된다. 신체가 어떤 상태 에 있는가를 분명히 알아차리는그것이 곧몸에 대 한정념이다.
우리의 동작은 항상 긴장되거나 분주하여 그저 무의식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대부분이다. 일상의 모든 행위 가운데에서 항상 호흡에 주의를 기울이 고 신체의 변화를 알아차리며 자신의 의도를 분명 히 알아차릴 때에 우리는 자신을 장악하게 된다. 현대인들은 특히 이러한 일상에서의 정념의 훈련 이 절실히 필요하다. 만성 스트레스와 피곤에 찌들 어 자신을 잃어버리고 그저 습관적으로 행위들을 반복할 따름이다.
호흡관찰과 자신의 신체에 대한 분명한 알아차 림이 있게 되면 마음이 여유로워지고 행동거지도 우아하게 변할 분 아니라 품위를 갖추게 되몃 터무 니없는 실수도 하지 않게 된다. 호흡을 관하하고 심신의 변화를 분명하게 알아차림에 의하여 오감 의 욕망에 끄달리거나 망상과 집착으로 흐트러진 생활을 하지 않게 된다. 그런 것이 일상생활에서 의 수행이며 생활불교이고 불교를 생활화하는 길 이다. 수행은 앉아서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가장 쉽고 간단한 호흡관찰에서 시작 하여 정념을 몸에 붙이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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