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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짚어보는 역동의 불교언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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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192호 발행인 법등[구창회] 발간일 2015-11-04 신문면수 11면 카테고리 불교문화산책 서브카테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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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18-05-18 07:05 조회 2,99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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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짚어보는 역동의 불교언론사

1910년〈원종〉발행부터 해방까지 잡지 전성시대

1980년대까지 발전 쇠퇴 거듭

1990년대 비약적인 성장 

2000년대 다양한 매체로 변화 모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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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계 신문들

 


총지종보가 올해로 창간 20주년을 맞았다. 역동의 현대사를 함께 한 총지종보를 보며 한국불교언론의 역사를 되짚어본다.

불교계에 현대적인 의미의 언론이 출연한 것은 20세기 초반 이다. 전등사 주지 김지순이 -발행한 잡지〈원종〉은 1910년 12월 창간했다. 단 두 호만 발행하고 멈췄지만 억불숭유의 시대를 살았던 산속 불교가 처음으로 세속에 나와 종단을 창종하고 포교지까지 냈다는 것은 의미 깊은 시도이자 역사이다.

〈원종〉이 최초의 잡지라면〈동양교보〉는 국내 최초의 불교신문 이다.〈동양교보〉는〈원종〉보다 8년 앞서 창간된 신문이지만공교 롭게도 한국인이 만든 신문은 아니다. 일본불교 정토종이 1898년 12월 경성에 정토종가개교소를 설치한 후 개교원으로 전환하면서 발행했다.〈동양교보〉를 통해 1900년 초 당시 일본불교에 대한 한국인들의 의식을 가감 없이 담고 있기 때문에 중요성이 크다.,

1910년부터 1945년까지 일제강점기는 ‘월간 잡지’ 전성시대로 볼수 있다.

잡지 1호가〈원종〉이라면 호는〈조선불교월보〉다. 하12년 2월 25일 창간된〈조선불교월보〉는 권상로 동국대 초대총장이다. 이 잡지 역시 원종종무원이 발행했다.〈원종〉의 부족한 점을 극복해 만든 불교종합잡지여서 당시 불교계의 현실인식과 불교계의 제반 정황을 잘 전하고 있다. 특히 1911년 반포된 사찰령에 대한 불교인 의 의식이 투영되어 있다.

〈조선불교월보〉의 뒤를 이은 잡지는〈해동불보〉다. 1913년 11월 20일 창간한〈해동불보〉는〈조선불교월보〉의 내분으로 명칭을 변경하며 탄생한 잡지라〈조선불교월보〉의 성격과 유사한 면이 많다. 불교사상의 ‘중흥을 목적으로 박한영이 사장을 맡아 간행한 잡지이다.

〈불교진흥회월보〉는 1915년 3월 15일 창간했다. 같은 해 12월까지 9호를 발간했던 이 잡지는 이능화가 편집 겸 발행인이고 불교진흥회 본부가 발행했다 . 조선선교양종삼십본산주지 회의소에서〈해동불보〉의 이름을〈불교진흥회보〉로 변경하기로 함에 따라 이름이 바뀐 것이다.

9호까지 발간 한〈불교진흥회월보〉는 1916년 (조선불교계〉로 이름을 바꾸고 세 번 더 발간됐다.

,〈조선불교계〉의 뒤를 이어 나온 잡지는〈조선불교총보〉다.

1917년 3월 창간된〈조선불교총보〉역시 이능화가 발행인 겸 편집인을 맡았었다. 30본산연합사무소에서 펴낸 기관지의 성격이 강하다. 통권 22호까지 펴냈으니 그동안 나온 잡지들이 10호를 넘기지 못했던 것에 비하면 괄목할만한 성장이었다.

〈조선불교총보〉가 종간되고 나온 잡지가 바로 만해 한용운이 발행한〈유심〉이다. 1918년 9월 창간해 12월까지 단 3호만 발간하고 종간했다. 친일파들이 세운 원종과 일본 조동종에 맞서 만해가 벌인 임제종 운동의 일환이 바로〈유심〉창간이다. 자주적인 불교발전을 꾀하던 청년운동의 정신을 담고 있었다.

〈유심〉은이후 만해스님의 뜻을 기린 후예들의 노력으로 무려 83년이 지난 2001년 봄 백담사 오현스님에 의해 복간됐다. 계간 시전문지로 다시 돌아왔다. 격월간을 거쳐 지금은 월간으로 발행되는 시전문 잡지이다.

〈유심〉종간 후에 통도사에 있던 취산보림사가〈취산보림〉을 창간했다.1920년 1월의 일이다. 모두 6호를 냈는데 지식과 학문이 경쟁하는’사회에 바른 정신을 고취시켜 사회를 혁신하려는 목적 으로 간행된 잡지이다. 같은 해 조선불교청년회 통도사 지회는 〈조음〉을 창간했다. 창간호만 전해지는데〈취산보림〉과 마찬 가지로 발행 편집인은 이종천이다.

1924년 5월에는 재일불교청회 기관지로 계간〈금강저〉가 창간됐다. 1943년 1월까지 금강저사, 조선불교청년동맹 우 동경 동맹, 조선불교동경유학생회로 발행처를 바꿔가며 모두 26호를 발간했다. 당시 한국불교계의 실상에 대한 분석 및 비판에 대한 글이 다수 실려있어 불교개혁에의 열망을느낄 수 있다.

〈금강저〉가 창간되고 그해 7월, 조선호교회가〈불일〉을 펴냈 는데 동인지의 성격이 강했고 단 2호만 냈다.

일제 강점기 최대의 불교종합잡지는 1924년 7월 창간한〈불교〉 로 (재)조선불교중앙교무원에서 경영한 불교사에 펴낸 월간잡지 다. 1933년까지 총 108호를 발행하는 등 끈질긴 생명력과 방대한 정보를 자랑했다.〈불교〉는 1933년 휴간됐다가 1937년〈신불교〉 로 속간됐다. 1944년 12월까지 총 67권이 나오며 당시 불교계의 동향을 보여줬다.

일본이 발행한〈조선불교〉는 1924~1936년 발행되는 동안 일제 침략의 선발대 역할을 했던 일본불교계의 조선불교단이 간행한 기관지다. 13호부터는 일본어 전용으로 나왔는데 일제의 불교정책을 파악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한국 전통선을 수호하기 위해 설립된 선학원은 1931년 10월 〈선원〉을 창간했다. 1년에 한권씩 총 4권이 나온〈선원〉은 선의 내용, 선화, 선종의 역사, 선사 소개 등을 다뤘다. 지금은 월간 〈선원〉이 그 맥을 이어받아 월간지로 다양한 불교문화를 전하고 있다.

〈선원〉과 비슷한 시기에 조선불교청년동맹운동본부가 월간 〈불청운동〉과〈회광〉을, (재)조선불교중앙교육원이 월간〈종보〉 를, 조명기 박봉석이 월간〈녹원〉을, 중앙불교전문학교 교우회가 〈일광〉을 각각 창간 발행했다.

〈불교〉다음으로 많이 발행된〈불교시보〉는 1935년 창간돼 1944년까지 105호를 찍어냈다. 교계 소식을 전달하고, 종교부활, 신앙고취를 내세운 잡지다. 하지만 1937년 이후 친일성향을 공개적으로 표방해 친일불교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명백한 자료이기도하다.

1935년 창간된〈금강산〉도 1930년대 불교 상황을 알려주는 귀중한 잡지다. 10개월 동안 10호를 발행한〈금강산〉은 금강산 불교회가 발행의 주체로 알려져 있다. 30년대 중반에는 지방 에서도 잡지가 나오기 시작했다. 1935년 전주에서〈적광시보〉, 1936년 경북에서 월간 신문〈경북불교〉가 각각 창간됐다.

1929년은 불교언론사에서 기억할 만한 일이 일어난다. 경성방송국에서 김대은 스님이 불교사상 강연을 한 것으로 방송을 통한 한국불교 최초의 포교활동이었다.

일제강점기를 지나 해방 이후의 불교언론은 친일잔재 청산에 나선다. 1946년 창간된〈신생〉은 그해 11월 중앙총무원이 〈불교〉로 개명하면서 종간됐다. 1947년 1월 창간된〈불교〉는 중앙총무원이 기관지로 펴낸 잡지로 시사 평론 수필 교계소식 통신강좌 등으로 구성 됐다.

1946년 월간〈불교신보〉가 창간됐다. 혁신단체가 만든 불교 신문이다. 뒤이어.〈대중불교〉도 1947년 창간됐다/2호 이후로는 존재를 찾아보기 어렵다. 1949년 창간된 월간신문〈불교공보〉는 불교중앙교무원이 간행했다. 교단. 집행부의 동향을 살펴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당시 일반사회의 분위기도 담고 있다.

1947년 9월에〈녹원〉이, 1950년 4월에〈동대신문〉이, 1951년 주간〈불교신문〉이 각각 창간됐다. 1957년 2월 격월간 종합잡지 〈녹원〉이, 4월엔 월간〈불교세계〉가, 1958년 6월엔 월간〈정토 문화〉가, 1959년 4월에는〈현대불교〉가 각각 새롭게 발간됐다. 〈녹원〉은 정태혁 동국대 명예교수가 발행했던 잡지로 비구 대처 분쟁을 극복하려는 의도가 엿보이던 잡지다.

1960년 1월 ‘한 장의 불교신문 한 사람의 포교사’를 슬로건으로 〈대한불교〉가창간된다. 지금의〈불교신문〉전신이다.

청담스님을 편집인으로 발간된〈대한불교〉는 순간으로 창간해 6월부터 주간으로 전환된다. 1977년 3월부터 격주 8면을 내는 것으로 변화를 줬다. 1980년 정부의 언론통폐합 사태와 10.27법난의 여파로 1980년 11월 30일 정기간행물 등록이 취소됐다가, 12월 21일 주간지〈불교신문〉으로 새롭게 태어난다.

1980년대까지 불교언론의 중심은 잡지였다. 1962년〈불교 사상〉, 1964년〈불교생활〉, 1966년〈백련〉, 1967년〈법륜〉이, 1969년〈불교문화〉가, 1970년 태고종의 월간〈불교〉가, 1974년 광덕스님의 월간〈불광〉이, 1979년 도선사의〈여성불교〉가 각각 창간되며 불교잡지 전성 시대를 연다.

1980년대는 신문과 사보가 화려한 꽃을 피웠다. 1982년 해인사의 월간〈해인〉, 1983년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의 월간 〈불교사상〉, 1985년 대한불교천태종의〈금강〉과 대원회의 〈대원〉, 1984년 ‘포교사 전문지’를 표방한〈월간 법회〉와 중앙승가대의〈승가〉, 1985년 대한불교불입종의〈불입〉, 격월지 〈선사상〉, 1986년 해인강원의〈수다라〉등이 발행됐다.

1973년 진각종의〈진각종보〉, 1975년 천태종의〈천태종보〉, 1988년 태고종의〈한국불교〉등 종단 기관지도 속속 선보였다. 1982년 격주간 (불교회보(주간불교의 전신)〉를 시작으로, 1988년 〈법보신문〉, 1989년〈해동불교신문〉과〈법무교화신문〉, 1989년 〈제주법〉와〈제주불교〉등이 속속 창간했다. 1989년 월간〈현대 불교〉와 1988년 월간〈정토〉가 새롭게 창간해 교계에 새바람을 불러일으켰다.

1990년대는 방송과 인터넷의 시대다. 1990년 5월 1일 세계 최초의 불교방송 개국이라는 뜻 깊은 역사를 만든다. 1995년 부산 광주를 시작으로 1996년 대구, 97년 청주방송을 개국하며 전국방송으로 발전했다.

신문 창간도 이어졌다. 1990년〈대한불교〉를 시작으로〈동국 불교〉〈경기불교〉〈강원불교〉〈대구불교〉〈정토불교〉등이 속속 창간됐다.

1994년〈현대불교신문.〉, 1995년〈총지종보〉, 1996년 〈경인불교〉, 1994년〈근본불교신문7, 1997년〈호남불교신문, 1992년〈해동불교신문〉등 수많은 신문이 창간되었다가 몇몇 매체를 제외하고는 경영난으로 사라져가기도 했다.

1995년은 방송포교에 또 하나의 획을 긋는다. 바로 세계 최초의 불교영상포교매체인 불교텔레비전⑴⑴)의 개국이다. 1999년에는 계간〈불교평론〉이 등장해 불교언론사에 한 획을 그었다.

2000년대 들어〈불교포커스〉〈불교닷컴〉〈미디어붓다〉〈불교 저널〉〈불교플러스〉등 인터넷 언론과〈우리불교신문〉이 등장하며 불교언론계는 다양한 변화를 모색했다. 이후 불교언론은 안정기를 거쳐 소수정예만이 살아남았다.

불교언론은 포교와 사회정화를 목적으로 존재한다. 불교적 방법으로 사회정의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불교 언론의 성장과 발전에 불자들의 도움이 꾸준히 필요하다.

-〈불기협 10년사〉‘한국 근현대 불교언론 변천사’에서 발췌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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