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 정진은 행복의 문을 여는 지름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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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197호 발행인 인선(강재훈) 발간일 2016-04-04 신문면수 2면 카테고리 종합 서브카테고리 김기자가 가다페이지 정보
필자명 김종열 필자법명 - 필자소속 - 필자호칭 - 필자정보 실지사=김종열 기자 리라이터 -페이지 정보
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18-06-13 11:53 조회 2,402회본문
실지사 부림회 관득 손기성 회장
사진에 뒷줄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큰 딸 : 손정우, 큰 사위 : 김진영, 아들 : 손석현 (석원), 둘째 사위 : 이성우,
외손녀 : 이서아 둘째 딸 : 손현경, 외손녀 : 김서현, 본인 : 손기성 (관득), 처 : 박순임 (무량수), 외손녀 : 김나현
실지사는 각자님들의 사원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사원 환경 정리에서부터 법회 준비와 주차까지 각자님들의 손길이 안가는 곳이 없다. 총지종 신행단체 중 가장 활동적인 실지사 부림회를 이끄는 주인공이 바로 관득 손기성 각자(신묘생, 66세)다. 항상 웃음 뛴 얼굴의 관득 손기성 각자는 어린 시절 어머니의 손을 잡고 시작한 진언 수행이 평생 내 가정을 지키는 든든한 버팀목이자, 생활 자체였다. 전쟁이 끝나고 모두가 어려운 시기를 묵묵히 걸어온 손기성 각자의 삶과 수행을 소개한다. 밀교의 진언 염송 수행을 먼저 시작하신 분은 관득 각자님의 모친 행원심 조태순 보살이다. 올해로 88세를 맞은 노 보살님은 길고 어두웠던 일제 강점기를 지나고, 각자님의 부친을 만나 단란한 가정을 이루었다.
교편을 잡고 학생들을 가르치던 부친은 민족의 큰 아픔인 6.25를 만나 몸과 마음에 상처를 입어 병상에 눕는다. 그 어려운 시기를 비로자나 부처님의 가지력으로 이겨내려 각자님의 모친은 당시 진각종에 귀의하고 성심으로 진언수행에 매진했다. 물론 어머님이 사원에 나갈 때면 손기성 각자는 항상 같이 다녔다. 그러나 부친의 병환은 날로 깊어갔고, 가정 형편은 더 어려워 갔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당시 충청 제일의 명문인 대전중학교를 당당히 합격한 각자님은 가정 형편을 생각해 진학을 포기한다. 각자님은 당시 대전에서 최고의 양복 기술을 가진 외삼촌을 찾아간다. 일본에서 양복 기술을 배운 외삼촌은 어린 조카의 청을 받아들여 조수로 일을 시킨다. 하지만 어린나이에 양복 기술은 벅찬 일이었다. 하지만 이를 악 물었다.
가족들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겠다는 자신의 바램을 지키기 위해서 하루하루 고된 노동을 견디었다. 18살이 되는 해 아버지가 오랜 병환 끝에 돌아가신다. 상을 치르고 출근 하니 외삼촌은 재봉틀 한 대를 가리키며 “이제부터 네가 쓸 미싱이다.”말했다. 5년 만에 정식 기술자가 된 것이다. 그동안 매를 맞으며 배웠던 기술을 최고의 양복 기술자인 외삼촌으로부터 인정을 받은 것이다. 관득 각자는 모두를 다 얻은 듯 했다. 조금씩 내일을 위해 저축하고 가족을 부양하면서 바쁜 일상을 보낸다. 그러나 마음 한 구석에는 배움에 대한 목마름이 자리하고 있었다.
지금 당장은 학교에 진학하지 않더라도 준비는 해두어야 한다는 생각에 ‘서울통신강의록’을 구해 독학을 시작한다. 그러면서 꾸준히 진언염송을 하고, 가슴속에 차오르는 부처님의 가지력을 느낀다. 양복기술자로 바쁜 일상을 보내다 보니 어느덧 노총각 소리를 듣는 나이가 됐다. 29살 되던 해 주위 사람의 소개로 평생 수행과 생활의 동반자인 박순임 무량수 보살님(계사생, 64세)을 만나 결혼한다. 경상도 상주 출신의 보살님은 대전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경주로 신혼여행을 갔다. 첫 날밤, 각자님은 새색시에게 「옴마니반메훔」 육자진언과 비로자나불 수인을 가르친다. 평생 수행을 같이 하자는 뜻이다. 무량수 보살님은 어리둥절해 하며 따라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 날이 진언행자로서 새로 태어나는 날이었다.
몇 개월의 신혼생활을 대전에서 보내고, 관득 각자는 서울로 갈 것을 결심했다. 좀 더 큰 곳에서 새로운 터전을 닦아보고 싶었다. 새 색시를 데리고 서울로 온 젊은 진언행자 부부는 쌍문동에 사글세를 얻어 새 인생을 시작한다. 부부는 정말 열심히 일했다. 직장 생활부터 시작해 작은 공장도 운영해보고, 모든 일을 같이 했다. 어느덧 자식들도 하나 둘 태어나 1남 2녀가 태어났다. 비록 12번의 이사를 다녔지만 내집도 장만하고 아이들 대학 공부도 마쳤다. 장녀와 차녀는 배필을 만나 혼사를 치르고, 이젠 엄마가 되었다. 딸 들은 시집을 갔지만 가까운 곳에 있어 자주 모인다. 주말에 오는 날에는 온 가족이 실지사 자성일 법회에 참석한다. 자녀들은 자라면서 부모님이 목소리를 높인 적이 없다고 한다. 부처님 같은 자애로운 마음으로 자식들을 키웠다.
큰 병 없이 잘 자라 사회의 일원이 되고, 결혼하여 부모가 된 자녀들이 관득 각자님은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불 자 들 의 수 행 방 법 중 가 장 기 본 이 되 는 것 이 팔정도(八正道) 다. 관득 각자의 인생사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생활이 바로 팔정도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것 같다. 정견, 정사유, 정어, 정업, 정명, 정정진, 정명, 정정 어느 하나 행하지 않은 것이 없다.
팔정도의 수행을 바탕으로 매일 진언염송으로 하루하루를 살아왔다. 비로자나 부처님의 가지력으로 이룬 삶이라고 겸손히 말하는 관득 각자는 “진언염송은 매일 매일 변하는 모습은 보기 어렵지만, 수행이 쌓이고 쌓이면 처음의 나와는 완전히 다른 변화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며 작은 공덕이 모여 큰 복으로 돌아온다고 했다. 기자는 관득 각자의 인터뷰를 마치며 초등학교 바른생활부터 대학과정의 윤리학 교과서에 나오는 모범적 인간상이 바로 저분이 아닐까 생각했다. 모든 불자들이 저리 된다면 얼마나 좋은 세상이 될까.
팔정도의 삶과 꾸준한 수행은 우리의 삶을 편안하고 윤택하게 해준다. 욕심 부리지 않고 작은 것에 만족하면서 사는 것이 바로 내 불성을 일깨우는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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