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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지우손(損之又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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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307호 발행인 록경(황보상민) 발간일 2025-06-01 신문면수 3면 카테고리 종단 서브카테고리 지혜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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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명 김태원 필자법명 - 필자소속 - 필자호칭 칼럼니스트 필자정보 - 리라이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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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5-07-07 15:19 조회 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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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지우손(損之又損)

덜어내야 할 것은 아집(我執) 

21세기 문맹은 수행의 결여


21세기는 인류의 역사에서 어떤 변곡점에 해당한다고 많은 사람들이 나름의 논리를 근거로 말하고 있다. 그중 문맹(文盲)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은 주장이 있다. 앨빈 토플러는 “문맹자란 읽고 쓰기를 할 줄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배우고, 배운 것을 버리고, 다시 배울 줄 모르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 될 것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배웠는데 그 배운 것을 버린다(unlearning)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그리고 다시 배운다(relearning)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버린다’라는 말을 접하게 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도덕경> 48장의 내용이다.


“위학일익(爲學日益) 위도일손(爲道日損) 손지우손(損之又損) 이지어무위(以至於無爲) 무위이무불위(無爲而無不爲)

배움은 하루하루 쌓아 가는 것이고 도(道)를 실천하는 것은 하루하루 덜어내는 것이다. 덜어내고 덜어내면 함이 없는 무위의 지경에 이르려 함이 없는 지경에 이르면 되지 않는 일이 없다.”


이때 무위는 인위와 대립되는 말로 어떤 절대적 기준을 세우지 않는다는 의미로 ‘이해’된다. 이 구절에서 핵심어는 손지우손(損之又損)이 아닐까 싶다. 무위이무불위는 손지우손이란 실천과정을 통해 도달하는 경지일 뿐이다. 손지우손이란 말은 불교의 방하착(放下着)을 떠올리게 한다. 덜어내야 할 것은 아집(我執)이고 그 밑바닥에는 탐욕(貪慾)이 또아리를 틀고 있다.


사람은 학습을 통해서 지식을 축적하면 나름의 세계관이 형성되고 개성을 지니게 된다. 하지만 사람마다 이해관계가 다르기에 다른 사람과 대립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갈등은 작게는 인간관계를 어렵게 만들지만, 국가 단위로 확장되면 전쟁으로 치닫는다. 이 경우 갈등을 치유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먼저 하나의 원리를 중심으로 나머지를 강압적으로 통합시키는 것이고, 다른 방법은 각각의 주장을 인정하고 서로 조화를 꾀하여 공존 공생을 추구하는 것이다. 현실에서는 두 원리 사이에 수많은 타협점이 존재하고 여기에서 불교는 당연히 후자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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