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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독심·탐진치 없는 사무량심, 진정한 수행의 ‘영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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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97호 발행인 우인(최명현) 발간일 2024-08-01 신문면수 5면 카테고리 설법 서브카테고리 이달의 설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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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4-08-06 14:56 조회 47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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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독심·탐진치 없는 사무량심, 진정한 수행의 ‘영험’


성도합시다. 무더위에 건강하신지요? 무더위에도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다스릴 수 있다면 좋습니다. 


쌍윳따니까야의 소라고둥(법라) 소리 경[S42:8 Saṅkhadhama-sutta]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부처님께서 날란다에 계실 때 니간타 나타뿟따의 제자인 촌장 아씨반다까뿟따에게 그들의 스승이 제자들에게 어떻게 가르치는지 묻습니다.


촌장은 자기의 스승인 니간타 나타뿟따는 제자들에게 “누구라도 살아있는 생명을 죽인다면 모두 악처, 지옥에 떨어진다. 누구라도 주지 않은 것을 빼앗는다면 모두 악처, 지옥에 떨어진다. 누구라도 삿된 음행을 한다면 모두 악처, 지옥에 떨어진다. 누구라도 거짓말을 하면 모두 악처, 지옥에 떨어진다. 누구라도 이와 같은 것들을 반복해서 많이 하면 할수록 그만큼 운명이 이끌려진다.”라고 가르친다고 대답했습니다. 


부처님은 만약 이 말이 사실이라면 아무도 지옥에 갈 사람은 없다고 하시면서 ‘반복해서 많이하면 할수록 그만큼 운명이 이끌려 진다’는 논리라면 아무리 악인이라도 악행을 저지르는 시간보다 그렇지않은 시간이 휠씬 많기 때문에 지옥에 갈 사람은 없다고 하셨습니다. 또한 이 같은 가르침은 그 스승의 말씀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에게 과거 잘못 때문에 나는 지옥이나 악처에 태어날 것이라는 두려움을 품게 만들고 그 마음을 버리지 못해 결국 지옥에 떨어진다고 했습니다.


[세존] “촌장이여, 그와 같은 스승에 대해 그 제자는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그는 이와 같이 생각합니다. 나의 스승은 ‘누구라도 살아있는 생명을 죽이면 모두 악처, 지옥에 떨어진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나는 살아있는 생명을 죽인 적이 있다. 그러므로 나는 악처, 지옥으로 떨어질 것이다.라는 생각을 품습니다. 촌장이여 그는 그 말을 버리지 못하고, 그 마음을 버리지 못하고, 그대로 지옥에 떨어집니다. ···”


과거는 이미 지나간 일입니다. 우리가 과거에 잘못이 있다고 해서 이미 지나간 것을 되돌릴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중생이라 살면서 잘못을 저지릅니다. 마음은 조건 지어져 있어 비슷한 상황을 만나면 다시 욕심내고 화내며 잘못을 되풀이합니다. 그래서 마치 쳇바퀴 돌 듯 윤회의 사슬을 못 벗어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저는 우리의 수행이 과거의 악행이 아니라 지금 현재를 바르게 살아가는 데 초점을 두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지금 현재를 좋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흔히 ‘흙탕물이 가득 든 물병에 맑은 물을 붓는 것’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흙탕물에 맑은 물을 많이 부으면 점점 맑아지는 원리와 같습니다. 부처님의 제자들 가운데 앙굴리말라 같은 살인자도 부처님께 제도되어 아라한이 되었습니다. 물론 과거 살인의 업보는 피해갈 수 없었지만 부처님의 가르침을 열심히 수행하여 괴로움 없는 저 언덕으로 가셨습니다. 


그럼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어떻게 가르쳤을까요?

[세존]: “촌장이여, 여래는 여러 방편으로 살아있는 생명을 죽이는 것을 책망하고, 비난하며, ‘생명을 죽이는 것을 그만두라.’고 말합니다. 여러 방편으로 주지 않은 것을 빼앗는 것을, 삿된 음행을 하는 것을, 거짓말을 하는 것을 책망하고, 비난하며, ‘거짓말하는 것을 그만두라.’고 말합니다.” 


부처님 또한 남을 괴롭히고 자신에게 아무런 이익이 없는 이러한 악행을 여러 가지 방편으로 그만두게 한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더 이상 잘못을 되풀이해서 악업을 키우지 말고 악업 짓는 윤회의 사슬로부터 해탈하라는 말씀입니다. 세존으로부터 책망과 비난을 받은 제자들은 이러한 악행을 버리고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 없이 지낸다고 했습니다. 


불교의 목표는 탐진치 삼독심을 없애는 것입니다. 삼독심이 없는 상태를 해탈 열반이라고 합니다. 탐진치 삼독심이 없는 마음이 바로 자비희사의 ‘사무량심(四無量心)’입니다. 삼독심과 사무량심은 한마음에 같이 있을 수는 없습니다. 마음은 가꾸지 않으면 금방 탐진치 삼독심이 됩니다. 그래서 올바로 수행하지 않으면 삼독심은 더 강해집니다. 나이가 들수록 더 삼독심이 강해지는 것도 그래서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그러한 조건이라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부처님은 항상 자신의 몸과 마음에 대해 ‘알아차림’할 것을 강조했습니다. 우리 마음을 삼독심 없는 좋은 마음으로 바꿀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알아차림’ 하는 것입니다. 욕심 화 어리석음을 알아차리고 바른 견해로 다스려야 ‘욕심내고 화낼만한 것이 아니구나.’라고 깨달을 수 있습니다. 


[세존]: “촌장이여, 그 고귀한 제자는, 탐욕을 떠나고, 성냄을 떠나고, 어리석음을 떠나 알아차림(sati)을 확립하고 올바르게 알아차려서, 자비희사의 사무량심으로 동쪽을 가득 채우며, 남쪽을 가득 채우며, 서쪽을 가득 채우며, 북쪽을 가득 채우며, 위와 아래와 옆과 모든 곳을 가득 채워서, 광대하고, 무량하고, 원한 없고, 악의 없는 자비희사가 함께 한 마음으로 모든 세상을 가득 채웁니다. 촌장이여, 예를 들어 강력한 소라고둥(법라)이 적은 노력으로도 사방에서 들리는 것과 같습니다. 촌장이여, 자비희사의 사무량심에 의한 해탈이 이와 같이 수련되고, 이와 같이 성장하면, 유한한 업의 세계(욕계)는 거기에 남아 있지 않고,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됩니다.”


잘 수행된 마음은 탐진치가 적고 자비희사의 무량한 마음은 많습니다. 올바른 알아차림으로 탐진치를 줄이면 ‘소라고둥이 적은 노력으로 사방에 들리는 것처럼’ 네 가지 무량한 마음으로 세상을 가득 채울 수 있을 겁니다.


지난 6월 정각사에서 열린 한국밀교학회 춘계학술대회에서 원정대성사님에 대한 주제발표가 있었고, 그 자리에서 ‘원정대성사께서 준제진언을 통해 체득한 영험의 구체적 사례가 있었는가?’라는 질문이 있었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수행을 통해 체득한 영험이 무엇입니까? 수행을 하면 무엇이 달라지는 걸까요? 우리의 마음이 달라집니다. 탐진치 삼독심이 줄어들고 자비희사의 무량한 마음은 많아집니다. 우리 종단의 의궤만 보더라도 원정대성사님의 사무량심을 느낄 수 있습니다. 색심불이(色心不二) 원리에 입각하여 세간적 이익에 목말라하는 중생이 퇴전하지 않고, 복지쌍수(福智雙修)할 수 있도록 세간적 이익의 성취를 위한 ‘준제관음법의 사종수법’을 전반부에 배치하고 앞뒤로 참회와 오대서원, 관세음보살 육자대명왕진언으로 실지정진하게 하여 전체적으로는 출세간적 해탈이 이뤄지도록 의궤를 만드셨습니다. 그 시대와 상황에 맞는 재생의세(濟生醫世)하는 법이였던 것입니다. 


어떻게 이러한 의궤가 중생을 자애하고 연민하는 마음없이 어떻게 탄생할 수 있겠습니까? 이외에도 총지종을 창종하시고 종단의 기틀을 다지는 10년 남짓의 시간 동안 수많은 어려움을 해결하시면서 언제나 탐욕과 성냄없이 자비와 평정심으로 살아가신 모습이 영험이 아니면 무엇입니까? 이러한 탐진치 없는 사무량심이 진정한 수행의 영험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부처님께서도 전쟁에서 단신으로 수천의 적과 싸워 이기기보다 자신의 삼독심을 극복하는 것이 제일 으뜸이라고 하셨습니다.


수행 열심히 하셔서 욕심 화 어리석음을 줄이고 자비희사의 무량한 마음으로 행복하게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옴마니반메훔.96db87fc32e3fee2cdbc737cc241b2f9_1722923778_0915.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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