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마경에 나타난 생태사상
페이지 정보
호수 295호 발행인 우인(최명현) 발간일 2024-06-01 신문면수 10면 카테고리 밀교 서브카테고리 -페이지 정보
필자명 한주영 필자법명 - 필자소속 불교환경연대 필자호칭 사무총장 필자정보 - 리라이터 -페이지 정보
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4-06-20 16:41 조회 684회본문
유마경에 나타난 생태사상
청정한 불국토를 얻기를 바라거든
마땅히 그 마음을 청정하게 하라
그 마음이 맑고 청정해짐에 따라
불국토가 맑고 청정해지느니라.
《유마경》 제1<불국품>에 나오는 게송으로 불교환경운동가들이 늘 가슴에 새기는 문구이다. 환경운동은 산업혁명이후 농업에서 공업으로 무게 줌심이 옮겨가면서 환경오염이라는 문제가 발생함에 따라 일어났다. 우리나라에서 환경운동의 출발이 1981년 “한국공해문제연구소”였으며, 1991년 낙동강 페놀 방류 사건을 계기로 본격적인 환경운동이 시작되었음을 보면 당시 환경운동의 기반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알 수 있다.
그러나 불교계에서 환경운동의 시작은 좀 달랐다. 1988년 정토회에서 에코붓다의 전신인 불교환경교육원을 설립하고 환경문제의 근본 원인이 과도한 개발과 소비에 있으며 불교 전통 안에 있는 청빈한 삶에서 환경문제의 해법을 찾고자 하였다. 유마경에서 말씀하신 청정한 불국토를 얻기를 바라거든 마땅히 그 마음을 청정하게 하라는 가르침처럼, 사람들의 의식과 생활양식의 변화를 이끌어 내고자 했던 것이다. 1999년 창립된 인드라망생명공동체는 '모든 실상이 연결된 유기적 생명공동체임을 깨닫고 우주의 생명 질서인 공존·협동·균형의 길을 간다'는 기치로 생명평화운동을 비롯해 귀농학교, 지역공동체, 대안 교육, 생명 환경, 생활협동조합 등 대안적 살림 운동을 통해 부처님의 연기의 가르침을 깨닫고 실천하고자 하는 불교환경운동의 흐름을 만들었다.
1997년 지리산댐이 추진되면서 생태계보존이라는 당면한 문제에 저항하고 해결하는 데 앞장서게 되었다. 실상사를 중심으로 스님과 불자들이 한마음으로 저항했고 지금까지 지리산을 지키는 일은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경험 속에서 2001년 불교환경연대가 창립되었다. 당시 상임대표 수경스님은 불교의 수행법인 절을 환경운동의 장으로 가져왔다. 아직까지도 매립만 하고 별 쓸모가 없는 불모지를 만들고 있는 새만금 간척사업_생태적 가치, 경제적 가치, 지역주민의 생존권과 삶, 공동체를 짓밟은_을 막기 위해 새만금에서 광화문까지 65일동안 삼보일배오체투지를 하며 온 몬을 던져 저항했다. 수경스님은 삼보일배 오체투지를 하며 하심하고 참회하는 불교 수행을 그대로 환경운동의 장에서 실천하신 것이다. 불교환경연대는 “심청정 국토청정”이라는 모토를 걸로 기도하는 마음으로 우리 스스로를 성찰하고 자연과 공존하는 사회를 만들자고 호소하며 말못하는 생태계를 지키고 보존하는 데 앞장 서 왔으며, 에코붓다와 함께 스님들의 발우공양을 본받아 “빈그릇운동”을 대중화하는데 성공했다.
지금도 불교환경연대, 인드라망생명공동체, 에코붓다는 “심청정 국토청정”이라는 유마경의 가르침에 따라 모든 존재가 서로 연결되어있다는 연기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소욕지족하고 청빈하게 살아가는 불교수행공동체를 사회적으로 확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유마경》 제2<방편품>에서 유마거사는 “이 몸의 주인 없음은 저 땅과 같다”고 하는데 이 말을 곱씹어 보면 땅이라는 것이 원래 주인이 없다는 전제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땅을 갈라 소유하고 사고 파는 것이 상식인 사회에서 땅에 주인이 없다는 전제는 매우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이것은 아메리카 대륙에서 침략자들에게 땅을 팔라는 제안을 받았을 때 어떻게 땅을 소유할 수 있으며, 어떻게 사고 팔수 있는 것인지 당혹해하는 인디언추장의 편지가 떠오른다.
"자연이 사람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사람이 자연에 속한다. 이 세상 모든 사물은 연결돼 있다. 어떻게 하늘과 땅의 온기를 사고팔 수 있는가? 사람은 생명 그물의 한 가닥일 뿐 인간이 생명 그물을 짤 수 없다." 고 한 시애틀추장의 편지는 우리가 회복해야할 자연에 대한 우리의 인식인 것이다.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으시고 우리에게 가르치신 가르침이 8정도이며 8정도의 첫 번째가 정견이고 두 번째가 정사유다. 우리는 자연을 어떻게 보고 있으며,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 깊이 사유하고 바른 견해를 세워야 할 것이다.
유마거사는 몸에 대한 바른견해로 24가지를 설하는데 그 중에 17번째에 이렇게 말씀하신다.
“초목, 기와, 돌맹이 같은 이 몸은 앎이 없다.”
우리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매우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인간우월주의에 빠져있다. 그러나 인간의 몸이 초목이나 기와나 돌맹이와 같다고 보는 것이 바른 견해라고 말씀하신다. 이것은 과학적 사실과도 일치한다. 인간의 몸도 분자나 원자의 관점에서 보면 초목이가 기와나 돌맹이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서구인들의 종교 전통에서는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을 본떠 만들었다고 하여 아주 특별한 존재로 본다. 또한 다른 피조물들을 지배하고 다스릴 권한이 주어졌다고 본다. 그런 관점에서는 자연스럽게 인간우월주의가 들어서게 되고 자연을 소유물로 생각하고 돈벌이 수단으로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진다.
그런데 우리 동양도 어느덧 서구 문물이 들어오고 산업화와 자본주의 경제체제가 지배하는 사회가 되어버려 우리의 세계관도 서구인들과 다를 바가 없게 되었다. 이런 결과로 이제 지구는 하늘과 땅과 강과 바다가 오염되었을 뿐만아니라. 생태계가 파괴되고 기후시스템에 문제가 생겨서 대멸종이라는 파국을 맞이할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이다. 다행이 아직은 회복할 시간이 있다고 한다. 혹자는 이미 늦었다고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희망을 가지고 “심청정, 국토청정”의 염원을 세우고 정토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보살이 깨끗한 불국토를 취하는 것은 모두 중생들을 이롭게 하고자 함 때문이니,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빈 땅에 궁전을 지으려 하면 뜻대로 하무런 장애 없이 지을 수 있지만, 허공에 지으려고 하면 끝내 성공하지 못하는 것과 같으니라. 《유마경》 제1<불국품>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