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오신날, 생활불교 인간불교를 실천하는 계기가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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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198호 발행인 인선(강재훈) 발간일 2016-05-04 신문면수 6면 카테고리 특집 서브카테고리 -페이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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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18-06-13 12:22 조회 2,450회본문
부처님 오신날 특집
부처님 탄생불
연등회의 유래는 삼국시대부터
이번 달 5월 14일은 음력 4월 8일로 ‘부처님 오신날’ 이다. 과거에는 ‘불탄일(佛誕日)’이라고 하다가 불교 도들의 꾸준한 노력으로 법정 공휴일로 지정되어 지 금은 ‘부처님 오신날’ 로 부르면서 전 국민이 기념하 는 날이 되었다. 이 날이 음력 4월 8일이기 때문에 흔 히 ‘초파일’이라고도 한다. 불교계의 행사로서는 가장 성대하게 봉축되는 날이다. ‘부처님 오신날’의 유래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신라 때의 불교의식인 팔관회(八關會)와 고려 때의 민속놀 이였던 연등회(燃燈會)에서 시작된 것 같다.
《삼국 사기》와 《고려사》를 보면 신라 효공왕 3년(서기 899년) 가을에 팔관회를 처음으로 개최한 이래 고려 태조가 이를 이어 받아 성대하게 국가적인 행사로 발 전시켰는데 이때에 부처님 탄신도 함께 봉축했다고 한다. 그리고 고려 때에는 정월대보름에 14일, 15일 이틀간 등을 밝히던 연등행사를 했는데 이때에도 부 처님 탄신을 봉축했다고 한다. 이것이 나중에 불교행사였던 팔관회(八關會)와 합 쳐져 부처님의 탄신을 기리는 초파일 행사로 확대되 어 전해졌으며 나중에는 민족적, 호국적인 전국민의 행사로 전해진 것이다.
기록에 의하면 고려 말, 최이 (崔怡)라는 문신이 팔관회와 연등회를 음력 4월 8일 로 옮겨서 함께 행하게 했다고 한다. 그러한 전통이 이어져서 지금도 초파일이 가까워 오면 사찰에서는 절의 안팎에 연등을 밝히고 거리에도 등을 내다 걸며 연등행진을 하기도 하면서 탄신을 봉축한다. 이처럼 ‘부처님 오신날’은 신라의 팔관회, 고려의 연등회 등을 거치면서 불교 의식이 민간의 세시풍속 과 자연스럽게 동화되면서 전 국민의 축제로 오늘날 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오랜 역사를 가진 거족적인 행 사라고 할 수 있다. 이제는 ‘부처님 오신날’이 세계적인 축제가 되어 연 등 행사를 보려고 많은 외국인들이 이 시기에 맞추어 한국을 방문한다. 가까운 중국이나 일본, 혹은 대만 등과 같이 불교가 번성한 나라에서도 우리와 같은 대 규모의 연등행사는 하지 않는다.
부처님의 탄생일과 탄생연도
부처님께서 태어나신 날에 대해서는 정확한 기록 이 없어 남방 불교권과 북방권의 날짜가 다르다. 우리 나라나 중국 일본 등지에서는 부처님의 탄생일을 음 력 4월 8일로 알고 이 날을 봉축하고 있다. 그러나 스 리랑카나 미얀마, 태국 등의 남방권의 불교에서는 베 사카 달의 제8일 혹은 제15일을 부처님의 탄생일로 여기고 있다. 베사카 달은 대략 양력 5월에 해당되며, 그 달 가운 데의 8일이나 15일에 베사카 제를 지내고 석가모니 부처님의 탄생을 기념한다고 한다.
정확한 달력이 없 던 시절이라 대략적으로 이때쯤이라 여기는데 북방 권의 음력 사월초파일도 대략 이때쯤이니 양쪽이 크 게 다르지는 않다. 어쨌든 부처님께서 화창한 봄날에 꽃이 만발할 때 에 태어나신 것만은 확실한 것 같다. 어떤 날에 태어 나셨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날이 우리에게 주 는 의미를 되새기면서 불심을 더욱 키울 수 있다면 그 것으로 만족해야 하리라. 석가모니 부처님이 언제 탄생하셨는가에 대한 기 록도 명확한 것이 남아 있지 않지만 남방 불교 쪽에서 는 스리랑카의 역사서인 《대사(大史)》나 아쇼카왕 석주(石柱)를 참고로 탄생연도를 추측한다. 대승불교 권인 북방불교 쪽에서는 ‘중성점기설(衆聖點記說)’이 라고 하여 부처님께서 돌아가시고부터 매년 점 하나 씩을 찍어 기록한 것이 있어 이것을 기준으로 계산한 다. 불교학자들은 이러한 기록들을 종합하여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탄생한 연도를 대략 기원전 566년, 560년, 그리고 466년과 463년의 여러 설을 주장하고 있다.
이 중 기원전 566년 설을 인정하는 학자들이 대부분인데 이 설에 따라 계산하면 석가모니 부처님이 80년의 생 애를 보냈으니까 입적하신 연도는 기원전 486년이 된 다. 그런데 불교에서는 연도를 계산할 때 ‘불멸(佛滅) 몇 년’ 하는 식으로 부처님의 돌아가신 연대를 기준으 로 계산한다.
서기를 예수 탄생의 연도로 기준하는 것 과는 대조된다. 지금 우리가 쓰는 불기(佛紀) 몇 년 하 는 것도 부처님의 탄생 연도가 아니라 부처님의 입멸 을 기준으로 정해진 것이다. 올해가 불기 2560년인데 이것은 1956년 세계불교도우의회[WFB]에서 입적하 신 연대를 통일해서 1956년을 불기 2500년으로 삼고 세계 공통의 불기로 쓰고 있는 것이다. 태어나신 해를 기준으로 삼지 않고 왜 돌아가신 해를 기준으로 했는 지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어쨌든 부처님 탄신 연 도로 따지면 올해는 불기 2560년이니까 부처님께서 태어나신 지는 2640년이 되는 셈이다.
부처님의 탄생설화와 탄생게
세계의 종교로 발돋움한 불교의 교조이신 석가모 니 부처님의 생애를 이해하는 것은 그 분의 가르침에 대한 더욱 철저한 이해를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과 정이다. 어느 종교나 비슷하지만 교조에 대한 이야기 들은 시대가 지남에 따라 신화적으로 윤색되는 경우 가 많다. 부처님의 생애도 후대로 갈수록 부처님의 위 대함을 표현하다 보니 사실적인 묘사보다도 신화적 인 색채를 많이 띠게 된다. 그렇지만 우리는 가능한 한 현재의 우리들이 믿기 어려운 신화적인 부분은 그 상징성을 새롭게 이해하는 차원에서 머무르고 석가 모니 부처님의 인간적인 면모에 초점을 맞추어 그 분 의 생애를 살펴봐야 한다.
그럼에도 부처님의 탄생과 관련하여 신화적인 부분이 있다고 해서 무조건 등한 시할 것이 아니라 신화에는 그 시대 사람들의 사고방 식이 상징적으로 나타나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새 로운 눈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필요하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원래의 이름은 고타마 싯다르 타(Gautama Siddhārtha)였다. 후에 출가하여 깨달음 을 얻고 ‘붓다’로 일컬어졌고 ‘석가족의 성자’라는 의 미에서 ‘석가모니(釋迦牟尼)’라고 일컬어졌다.
인도 말로는 ‘샤카무니(Śākyamuni)’라고 하는데 석가는 석가족을 가리키는 샤카의 음사이고 모니는 성자를 의미하는 무니의 음사다. 따라서 샤카무니는 샤카족 출신의 위대한 성인이라는 뜻이 된다. 석가모니 부처 님을 ‘석존(釋尊)’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석가족의 성 인으로서 세상에 으뜸가는 분이라는 뜻의 ‘석가모니 세존’을 줄인 말이다. 석가모니부처님의 원래의 성인 ‘고타마’는 ‘가장 훌 륭한 소를 가진 사람’이라는 뜻이다. 이는 소를 신성 시하던 당시의 일반적인 이름으로서 석가족의 별칭 으로 추측된다. 경전에 보면 ‘구담(瞿曇)이시여’ 하는 호칭이 자주 나오는데 이것은 고타마를 한자로 음사 한 것이다. ‘싯다르타’는 ‘모든 것을 성취한 사람’, 혹은 ‘일체의 목적을 달성한 사람’이라는 뜻으로 석가모니 부처님 에게 매우 잘 어울리는 이름이라고 할 수 있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부친은 석가(釋迦;Śākya) 족 출신으로 카필라바스투(Kapilavastu)라고 하 는 작은 나라의 왕이었다.
부친의 이름은 슛도다나 [Śuddhodana;정반왕(淨飯王)]라고 했으며, 모친은 이웃 코리족 출신의 마야(摩耶;Māyā)라는 여인이었 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삼촌이 백반왕(白飯王)이니 감로반왕(甘露飯王)이니 하고 불렸던 것을 보면 석 가족은 유목민 계통이 아니라 쌀농사를 짓던 농경민 족이 틀림없었다고 생각된다. 불전에 의하면 정반왕은 오래도록 아이가 없다가 어느 날 꿈을 꾸었는데, 6개의 상아를 가진 흰 코끼리 가 오른쪽 옆구리로 해서 태안에 드는 꿈을 꾸고서 임 신했다고 한다.
마야부인은 출산을 위해 친정에 가던 중 룸비니 (Lumbinī) 동산에서 부처님을 출산했다고 경전에서 는 전하고 있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탄생지인 룸비니 는 현재의 네팔 카투만두 서쪽 200㎞ 지점에 있는 카 필라바스투 근교에 있다. 룸비니에 있는 아쇼카왕의 석주에는 룸비니가 부처님의 탄생지이고 그 마을에 혜택을 준다는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룸비니라는 이 름은 마야부인의 친정아버지가 어머니에게 동산을 만들어 주고 어머니의 이름을 따서 그렇게 불렀다고 한다. 옛날 인도에는 출산할 때에는 친정에 가는 풍습이 있었는데 마야부인도 출산일이 가까워 오자 시종들 을 데리고 친정으로 갔다. 도중에 마야부인은 갑자기 산기를 느껴서 룸비니 동산으로 들어갔다.
이곳은 동 산이라기 보다 꽃이 만발한 화원에 가까웠는데 그곳 에 있는 무우수(無憂樹)라는 나무에는 꽃이 가득피 어 있었다고 한다. 그 아래에 누워 잠시 휴식을 취하 던 마야부인이 아름답게 핀 무우수 나무에 오른손을 뻗는 순간 태자가 오른쪽 옆구리에서 탄생하셨다고 한다. 무우수는 아쇼카나무라고도 하는데 흰 색깔의 꽃이 핀다고 한다. 목련의 일종이었던 것 같은데 아마 무우수라는 이름은 뒷날에 붙여진 것 같다. 태자는 마야부인의 오른쪽 옆구리에서 탄생했다고 하는데 어떤 사람들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제왕절개 수술에 의해 태어나신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런 말 은 부처님의 전기를 쓴 사람들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 해서 그런 것이다. 마야 부인의 옆구리에서 태어났다는 것은 부처님 이 사성계급 중에서 왕족에 속하는 크샤트리아 계급 이었다는 것을 상징하고 있다. 인도의 신화에 의하면 바라문은 만유의 근원인 브라만(brahman)을 신격화 한 바라문교의 최고의 신인 범천(梵天)의 머리에서 태어나고, 크샤트리아는 겨드랑이나 옆구리에서 태 어나며, 평민은 무릎에서, 하층민인 수드라는 발바닥 에서 태어난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옆구리에서 탄 생했다는 것은 부처님이 왕족이었다는 것을 상징적 으로 나타내는 것이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모든 중생을 괴로움에서 건져내리라
부처님께서는 태어나자마자 사방으로 일곱 걸음을 걸으며 한 손으로는 하늘을, 또 한 손으로는 땅을 가 리키며 ‘천상천하 유아독존 삼계개고 오당안지(天上 天下 唯我獨尊 三界皆苦, 吾當安之:온 우주에 내가 가장 존귀하니 내가 마땅히 삼계의 모든 괴로움을 멸 하고 편안히 하리라)’라는 그 유명한 탄생게(誕生偈) 를 외쳤다고 한다.
어떤 기록에서는 단지 사방을 둘러 보다가 일곱 걸음을 걷고 탄생게를 외쳤다고도 한다. 탄생게의 내용은 기록에 따라 조금씩 다르기는 한데 대체로 천상 세계나 인간 세계를 통틀어 내가 가장 존 귀하며 삼계의 모든 괴로움을 내가 편안히 해주겠다 는 의미이다. 빨리어 경전에는 “나는 세상의 최상(最 上)인 자다. 나는 세상의 최존(最尊)인 자다.
나는 세 상의 최고(最高)인 자다. 이것이 마지막 삶이다. 더 이 상 다시 태어남은 없다”라고도 되어 있다. 탄생게를 외친 대목도 다분히 상징적인 신화적인 묘사이다. 방금 태어난 갓난동이가 일곱 걸음을 걸어 이러한 말을 외쳤다는 것은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부처님의 위대한 탄생을 묘 사하기 위하여 불전의 작가들이 가장 극적인 방법으 로, 또 상징적인 방법으로 그것을 나타내었다고 볼 수 있다. 우선, 사방으로 일곱 걸음을 걸었다는 것은 석 가모니 부처님이 육도 윤회, 즉, 여섯 종류의 윤회의 세계를 초월하리란 것을 암시하고 있다. 즉, 일곱 발 자국이라는 것은 육도윤회의 괴로움을 벗어나 해탈 의 세계, 열반의 세계에 들어가는 것을 상징한다.
부처님의 탄생게에 나오는 ‘천상천하 유아독존....’이 라는 말에는 이렇게 깊은 뜻이 있는데도 일반 사회에 는 유아독존이라는 말만 알려져서 무례하고 독선적 이며 자기만 잘난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을 지칭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유아독존’이라고 하니까 뒤의 중 생을 건진다는 말은 들어보지도 못하고 부처님이 너 무 자신을 내세우는 것이 아니냐고 하는 사람들도 있 다. 또 어떤 사람들은 유아독존을 이렇게 해석하기도 한다. 이 말은 부처님만이 이 세상에서 가장 높다는 뜻이 아니고 우리 인간이 모두 그렇게 존귀하다는 뜻 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말씀은 위대한 인간 선언이고 생명 선언이다 하면서 확대해석을 하는데 굳이 그럴 것까지는 없다고 본다.
이러한 장면은 그저 진리를 깨 쳐서 윤회의 속박을 해탈하고 무명에 가려 고통 받는 모든 중생을 불타인 내가 건져주리라는 부처님의 탄 생의 의의를 나타낸 것이라고 보면 된다. 어쨌든 ‘부처님 오신날’ 행사시에 보면, 관불(灌佛) 혹은 욕불의식(浴佛儀式)이라고 하여 오른 손은 하 늘을 가리키고 왼손은 땅을 가리키는 아기 부처님에 게 물을 끼얹는 의식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는 탄생게를 외치는 장면이다.
부처님 탄신지에 세워진 “마야데비사원
부처님의 탄생의의 인간에게 행복을 세계에 평화를
부처님께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외쳤다는 탄생게 안에는 부처님의 탄생 의의가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오로지 우리 중생들의 괴로 움을 덜어주시기 위해서 태어나신 것과 다름없다. 크 나큰 자비로써 우리 중생들에게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지혜의 길을 일러 주신 것이다.
우리의 괴로움은 모두 우리의 마음에서 비롯되었다는 엄청난 진리를 가르 쳐 주신 것이다. 보이지 않는 신이 우리의 운명을 조 작하거나 복을 주고 화를 주는 것이 아니라 인간 자신 이 스스로의 화복을 결정한다는 비밀을 알려주셨다. 물질문명이 아무리 발달하고 과학이 진보하더라도 우리의 마음이 지혜롭고 청정하지 못하다면 그러한 것들이 도리어 괴로움의 원인이 된다. 인간의 역사에서 수많은 종교가 태어났다 사라졌 지만 불교와 같이 평화적이고 합리적이며 과학적인 종교는 없다. 과거 역사를 통해서나 지금 세상에서 자 행되고 있는 테러들을 보면 불교가 얼마나 평화를 염 원하고 실천하는 종교인지 알 것이다. 불교의 그러한 특징들로 인해 이제 불교는 아시아 를 벗어나 전 세계 지성인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 다.
어떤 역사학자는 불교가 미래의 인류를 파멸로부 터 구해낼 유일한 종교라고까지 말했다. 불교의 긴 역 사를 통하여 볼 때 불교만큼 평화적인 종교는 없었다. 과거의 십자군 전쟁이나 기독교의 신교와 구교의 갈 등에서 빚어진 살육, 이슬람의 아시아 정복 과정에서 일어난 엄청난 파괴 등은 차라리 종교가 없었더라면 인간들이 더 평화롭게 살 수 있었으리란 생각이 들게 한다.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테러라든가 중동의 종족 간 싸움은 모두 종교적 견해 차이로 인한 것이다. 다 른 종교가 신의 이름으로 자행하는 이와 같은 잔인무 도한 행태들을 볼 때 모든 생명의 조화와 평화를 기원 하는 불교의 우수성이 더욱 두드러진다. 더구나 불교의 기본 교리는 모든 문제가 자기 자신 에서부터 비롯되었다고 가르치기 때문에 남 탓을 하 지 않는다.
우리의 탐진치가 우리를 괴롭게 한다는 것 을 알기 때문에 불교도들은 먼저 자기를 성찰하고 반 성하지 결코 외부의 적을 찾아 한풀이를 하는 일은 없 다. 모든 것을 합리적이고 과학적으로 탐구하고 평화 의 길을 모색하는 불교도들에게 적이란 있을 수 없다. 불기 2560년 ‘부처님 오신날’을 계기로 우리 불자들 도 이렇게 평화적이고 행복으로 이끌어주는 불교를 이웃에 조금이라도 더 많이 알려 모든 사람들이 괴로 움을 벗어나 마음의 평화를 누리도록 도와주어야 한 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탄생게를 통하여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도 이웃과 사회, 나아가서 전 세계인들, 그 리고 이 지구상의 모든 생물들이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도록 불교를 더욱 알리고 실천해야 한다.
신수봉행하는 불자로 거듭나자 생활불교 인간불교의 실천자가 되어야
우리나라 불교인들은 여시아문(如是我聞)만 알았 지 신수봉행(信受奉行)은 모르고 있는 사람들이 많 다. ‘신수봉행’은 부처님의 말씀을 믿고 잘 받들어 실 천한다는 의미이다. 신수봉행을 모른다는 것은 부처 님의 말씀을 듣기만 하였지 믿고 받들어 행할 줄은 모 른다는 말씀이다. 경전 문구를 달달 외우면서도 ‘신수 봉행’이라는 마지막 구절은 실천할 줄 모르는 불자들 이 많다. 불교를 가르치고 지도하는 분들도 어려운 교 리만 떠들면서 자기의 유식을 뽐낼 것이 아니라 부처 님의 말씀 한 구절이라도 새겨듣고 신수봉행 하는 것 이 더욱 절실하다.
입으로는 돈오(頓悟)니 돈수(頓修) 니 하면서 단박에 성불할 것처럼 큰 소리 치고 간화선 (看話禪)이 좋으니 묵조선(照禪)이 좋으니 떠들어 봐야 기본 생활 태도가 부실하면 다 공염불에 불과하 다. 불교가 일반 대중들과 소통하고 그들에게 행복의 길을 열어주기 위해서는 관념적인 불교가 아니라 일 상생활에서의 실천이 무엇보다도 절실히 요구된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도 그러한 것이다. 일상생 활에서의 행위 하나하나가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 한 징검다리가 되어야 하고 사다리가 되어야 한다. 일 상에서의 오계 준수와 육바라밀의 실천 없이는 진정 한 불자라고 할 수 없다. 2560년 ‘부처님 오신날’을 맞이하여 우리 불자들은 석가모니부처님의 탄생 의의를 다시금 되새기고 부 처님의 가르침대로 생활불교, 인간불교를 실천하여 개인적으로는 마음의 평화를 누리고 사회적으로는 모든 구성원이 더불어 행복해질 수 있는 등불이 되도 록 거듭 태어나자. 정성을 모아 등불을 밝히면서 부처 님의 탄신을 봉축하고 우리의 마음도 환하게 밝혀보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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