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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 ‘고창 문수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등 9건 보물 지정 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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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02호 발행인 인선(강재훈) 발간일 2016-09-01 신문면수 11면 카테고리 종합 서브카테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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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18-06-14 09:56 조회 2,46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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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 ‘고창 문수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등 9건 보물 지정 예고

문화재청(청장 나선화)은 ‘고창 문수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등 9건을 국가지 정문화재 보물로 지정 예고하였다. ‘고창 문수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高 敞 文殊寺 木造釋迦如來三佛坐像)’은 중앙 에 인간 세계를 교화하는 석가여래를 중 앙에 두고 좌우에 동·서방의 정토(淨土)를 다스리는 약사여래와 아미타여래를 배치 한 삼불형식을 보여준다. 삼불형식은 임 진왜란·정유재란 이후 황폐해진 불교를 재건하는 과정에서 신앙적으로 크게 유 행하였다. 이 삼불상은 1654년에 벽암각성(碧巖 覺性, 1575~1660)의 문도들이 주축이 되 어 수조각승 해심을 비롯한 15인의 조각 승이 참여하여 만들었다는 사실이 밝혀 져, 이 시기 불교조각의 기준이 되는 작품 이다. 

통통한 양감이 강조된 인간적인 얼 굴에 단순하고 기백 넘치는 주름 표현을 통해 조선 후기 불교조각이 추구한 평담 (平淡)하고 대중적인 미의식을 잘 담아내 고 있다. ‘봉화 청량사 건칠약사여래좌상 및 복 장유물(奉化 淸凉寺 乾漆藥師如來坐像 및 腹藏遺物)’은 흙으로 형태를 만든 뒤 그 위 에 삼베를 입히고 칠을 바르고 말리는 과 정을 반복해서 일정한 두께를 얻은 후 조 각하여 만든 건칠불상이다. 이 불상에서 보이는 엄숙한 상호(相好), 당당하고 균형 잡힌 형태, 탄력과 절제된 선은 석굴암 본 존불 등 통일신라 전성기 불상의 양식 계 통을 따르고 있는데, 불상의 바탕층에 대 한 방사선탄소연대 측정 결과도 이와 유 사한 기원후 770~945년경으로 도출되었 다. 

따라서 이 불상은 이르면 8세기 후반, 늦어도 10세기 전반에는 제작되었을 것 으로 추정되며, 이는 ‘합천 해인사 건칠희 랑대사좌상(930년경, 보물 제999호)’과 함 께 우리나라 건칠불상의 시원적 작품으 로서 중요한 조각사적 의의를 지닌다. ‘고창 문수사 목조지장보살좌상 및 시 왕상 일괄(高敞 文殊寺 木造地藏菩薩坐像 및 十王像 一括)’은 삭발한 승형의 지장보 살상과 제왕형의 시왕(十大王)으로 구성 되어 있다. 제8 평등대왕상에서 발견된 ‘조성발원 문’을 통해 1654년 3월 당시 불교계를 대 표했던 벽암각성(碧巖覺性,1575~1660) 의 문도들이 주도한 불사임을 알 수 있고, 조 각승은 대웅전 석가여래삼불좌상을 만들 었던 해심 등 15인의 조각승들이 모두 참 여하였다. 

본존인 지장보살상은 통통한 얼굴과 아담한 형태미가 두드러지며, 시 왕상은 지옥중생을 심판하는 사실적인 연출과 함께 고색 ‘묘법연화경 권5~7(妙法蓮華經 卷五~ 七)’은 1470년(성종 1)에 세조비(世祖妃)인 정희왕후(貞熹王后)가 차남인 예종(睿宗) 이 돌아가자 이미 고인이 된 세조(世祖)와 장자인 의경왕(懿敬王;德宗) 그리고 예종 의 명복을 빌기 위해 간행한 왕실판본이 다. 조선전기 왕실판본의 사례로서 간행 시기와 동기가 분명하며, 보존상태 또한 양호하고, 전래되는 같은 초기 인본(印本) 이 극히 희소하기에 귀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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