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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오방(五方), 오불(五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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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09호 발행인 인선(강재훈) 발간일 2017-04-03 신문면수 5면 카테고리 종합 서브카테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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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18-06-14 14:52 조회 2,69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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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오방(五方), 오불(五佛)
불/교/엿/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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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동천동 사방불 탑신석慶州 東川洞 四方佛 塔身石


총지종은 49일 불공 중에는 진호국 가불사를 한다. 이때 만다라관을 할 때 오방의 불보살님들의 명호를 부른다. 북쪽을 향하여 정좌하고 “중앙에 비로 자나불, 동방에 아축불, 남방에 보생불, 서방에 아미타불, 북방에 불공성취불 을 관하고(중략)” 



우리나라에서는 잡밀계통의 중국 밀교를 삼국시대부터 수용하게 되 었다. 신라에서는 7세기 초부터 잡 밀계통이 전래되었고, 8세기에 접어 들면서 순밀계통이 전해지면서 본 격적인 발전을 보게 되었다. 밀교는 고려나 조선시대까지 민중 신앙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였다. 신라에 최초로 밀교를 전한 승려 로 안홍(安弘,600년 진평왕 22년)은 중국승려 두 사람과 함께 귀국하여 황룡사(黃龍寺)에서 『전단향화성 광묘녀경(栴檀香火星光妙女經)』을 번역하고 640년(선덕여왕 9년) 만선 도량을 베풀었다. 

비슷한 시기의 명 랑(明朗)은 632년 당나라로 가서 3 년 동안 밀교를 공부하고 귀국하여 자신의 집을 금광사(金光寺)로 고쳐 이곳을 중심으로 밀교신앙운동을 전개하였다. 오방불의 명칭이 처음 등장하는 것은 8세기 초에 번역된 『다라니 집경(陀羅尼集經)』과 『불공견삭 신변진언경(不空羂索紳變眞言經)』, 『일자불정윤왕경(一字佛頂輪王 經)』 등을 들 수 있다. 중국에서 밀교경전을 가지고온 신라승려 명효(明曉.700년 당에서 귀국, 혜통계통의 밀교를 전성한 것 으로 추정)는 『개원석교록(開元釋 敎錄)』에 의하면 “천후(天后)시대 성력(聖曆) 3년(700) 경자(庚子) 3월 에 신라국 승려 명효가 멀리 당나라 법화(法化)를 관찰하고 돌아가려 할 때 그는 총지문(總持門)에 대해 오 래 전부터 마음을 두었던 터라 마침 내 저 변두리 나라 사람들도 다같이 이런 비밀한 교의를 듣게 하기 위하 여 이 진언을 번역하여 주기를 은근 히 청하자 이에 무첨(無諂)은 불수기 사(佛授記寺)의 번경원(飜經院)에서 『불공견삭다라니경』 1부를 번역 하였다.” 

이 기록에 따르면 명효가 8세기 초 신라로 귀국할 때 총지종 에 뜻을 두고 이무첨이 번역한 『불 공견삭다리니경』을 비롯한 진언을 가지고 왔다는 점에서 8세기 초에 오방불이 조성되었을 가능성을 두 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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