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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언 염송의 인연을 맺어주신 부처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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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07호 발행인 인선(강재훈) 발간일 2017-02-01 신문면수 7면 카테고리 정각사 신행체험 서브카테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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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18-06-14 13:27 조회 2,69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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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언 염송의 인연을 맺어주신 부처님께 감사드립니다
정각사 황윤희 보살 신행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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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도 둘째 아이를 낳은 그 해, 정각사와의 인연이 시작되 었다. 그 당시의 나는 연년생으로 아이를 낳아 몸이 영 좋지 못했 으며, 너무도 낯선 엄마 노릇에 심적으로도 많이 지친 상태였다. 어딘가 마음 붙일 곳이 아주 간절한 상태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내가 처음 정각사를 보았을 땐, 건물을 모두 허물고 새로 지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마치 ‘나’라는 새로운 인연을 반기 기 위해 새 옷으로 갈아입으려는 것만 같았다. 지금 돌이켜보면 인연이 참 재미지다. 그 당시 고모가 정각사 의 처사보살(공양주)로 계셨는데, 하루는 나에게 심부름을 시키 셨다. 절에서 받아온 떡 접시를 내밀며 “초라도 하나 담아서 다 시 절에 돌려놓고 와라” 하셨다. 나는 고모가 시키는 대로 그릇에 초를 담아 동해중학교 아래 마룻바닥으로 갔다. 

그리고 그 곳에 얌전히 그릇을 올려놓고 집 으로 돌아왔다. 지금도 그때의 기분이 아주 생생하다. 떡이 담겨 있던 접시의 감촉이나 모양, 또 집으로 돌아오던 길의 풍경 따위 들이 신기할 정도로 선명하게 기억 속에 남아있다. 나는 그 떡 접시를 시작으로 종종 절에 나가기 시작했다. 하지 만 스물여덟 살의 나는 너무 어리고 현명하지 못했다. 큰 아이가 서원당에서 작은 실수를 했는데, 그게 무서워서 그 길로 1년 정도 거의 서원당에 나가지 않았다. 정각원 스승님은 그다지 성실하지도 못한 신도인 나를 남달리 신경써주셨다. 스승님과 마주칠 때 마다 밥은 먹었는지 같은 가 벼운 질문부터, 불공은 잘 하냐는 질문까지 하곤 하셨다. 그때는 내가 처사보살님의 조카인걸 알고 이것저것 물어보시 고 또 챙겨주시나 보다, 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금 반추해보면 내가 혈혈단신으로 그 절에 다녔어도 아마 스승님은 날 그만큼 챙겨주시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확 신이 강하게 든다. 아무튼 그때의 나는 숫기도 없고 부끄러움이 많은 계집애여서, 불공 많이 하나? 하는 스승님의 물음에 그저 거짓말로 몇 번을 네, 하고 돌아서곤 했었다. 그 많은 보살들 중에 나 하나쯤 안 가도 모르시겠지, 하는 가벼 운 마음과 그저 상황을 어서 모면하려는 어리석고 성의 없는 대 답의 연속이었다. 하루는 시장에 다녀오는 길에 우연히 스승님을 마주쳤다. 어느 때와 다름없이 “보살님, 불공 많이 하세요?” 하는 물음을 주셨 고, 나 역시 늘 했던 대답을 했다. “네”라고 말하며 집으로 돌아 가 저녁밥을 하는데 갑자기 몸에서 열이 나기 시작했다. 그때의 나는 절량(節糧)이 무엇인지도 몰랐었는데, 절량을 내 손으로 떠 넣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저절로 떠졌다는 표현이 더 옳겠다. 그리고 아이들를 업고, 안고 서원당으로 뛰어갔다. 그 랬더니 정말 거짓말처럼 나의 열이 내렸다. 

그 때의 일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근 40년을 부지런하게 다니 고 있다. 지금 돌이켜보면 어느 것 하나 인연이 아닌 것이 없었다. 처사보살로 계셨던 고모도, 유달리 날 챙겨주시던 정각원 스승님 도, 날 만나기 위해 새 옷으로 갈아입은 정각사도 모두에게 감사 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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