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총지종

총지신문 아카이브

불교총지종은 ‘불교의 생활화, 생활의 불교화’를 표방하고 자리이타의 대승불교 정신을 일상에서 실천하는 생활불교 종단입니다.

무소유와 부처의 모습

페이지 정보

호수 208호 발행인 인선(강재훈) 발간일 2017-03-02 신문면수 4면 카테고리 설법/칼럼 서브카테고리 지상 설법

페이지 정보

필자명 - 필자법명 유가해 필자소속 수인사 필자호칭 전수 필자정보 수인사 유가해 전수 리라이터 -

페이지 정보

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18-06-14 13:47 조회 1,861회

본문

무소유와 부처의 모습
모든 부처의 몸은 하나의 법신, 즉 하나의 진리인 것

02772180a6d25ec8d69d29e244790bc4_1528951619_0658.jpg
수인사 유가해 전수


"나라는 생각, 나의 것 이라는 집착에서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그렇게 애착, 소유욕을 비울 때, 우리들 존재의 그릇에는 새로운 것을 담을 수 있습니다. 비워야 무엇이든 채울 수 있습니다."




무소유 


교도여러분! 오늘은 무소유와 불의 존재에 대해 말 씀드릴까 합니다. 먼저 열반하신 조계종 법정스님의 수필 제목으로도 유명한 무 소유에 대해서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떻 습니까. 내가 있다는 생각이 단단하고 굳을수 록 내가 없어지는 것에 대한 불안과 공포 도 커져 갑니다. 내 것에 대한 집착이 강 할수록 내 것이 없어지는 것에 대한 불안 과 공포도 커져갑니다. 그로 인해 사람들 은 어떻게든 돈과 권력을 쥐려고 합니다. 그럼에도 ‘나’와 ‘내 것’으로부터 벗어 난, 이른바 무소유를 실천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런 삶들은 매사에 걸림 없이 자유롭게 살아갑니다. 집착은 구속입니다. 애착은 쇠사슬입 니다. ‘나’와 ‘내 것’을 애지중지하는 마음 이 마음속에 있는 한 우리는 결코 자유로 울 수 없습니다. 소유의 이름으로 존재를 감옥에 가두어 놓는 꼴입니다. 우리 모두가 지금 이순간 자기 자신에 게 한번 물어봅시다. 내 모습, 내 권위, 내 재산을 사들이려고 자신의 존재 가치와 자유를 저작거리에 내다 팔지 않았는가? 하고 말입니다. 나 라고 내세울 만한 것은 본래부터 존 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바로 지혜의 근본입니다. 어리석음은 물질과 육신은 반드시 사라지고 만다는 사실을 망각하는데서 옵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제법무아(諸 法無我)라 설하셨습니다. 이는 일체의 만 물과 생각은 고정되게 내세울 존재가 없 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나 라고 일컬을 만 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하신 것입니다. 나 라는 데에 집착하지만 않는다면, 누구 라도 걸림 없는 자유를 만끽할 수 있게 됩 니다. 살을 꼬집으면 아파하는 이 몸의 존재 는 분명이 있는 것 아닌가? 오감으로 느 끼고 감정으로 느끼는 이 존재는 분명이 있는데 왜 없다고 하는가? 라고 반문 할 지 모릅니다. 엄연히 존재하는 것을 없다 고 하는 것은 모순이라 할 것입니다. 사 랑하는 이가 떠나면 슬프고, 괴로움에 몸 서리를 칩니다. 그러나 그것은 중생의 생 각일 뿐 부처님이 말씀하신 ‘공’의 진리를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부처님께서는 그 모든 것이 허상이요, 꿈이요, 물거품이라 고 하셨습니다. 이 물질계 전체가 사실은 거푸집처럼 임시 거처일 뿐이라는 사실을 사실로서 속속들이 믿고 받아들인다면, 나 라는 생 각, 나의 것 이라는 집착에서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그렇게 애착, 소유욕을 비울 때, 우리들 존재의 그릇에는 새로운 것을 담을 수 있습니다. 비워야 무엇이든 채울 수 있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 




부처의 모습 


다음으로 우리가 매일 서원당에서 불 공을 드리는 부처님의 모습은 과연 어떻 게 생겼을까요? 서원당에는 현교와 달리 옴니반메훔 육자대명왕진언을 본존으 로 하고 태장, 금강 양계만다라를 좌우에 모시고 있습니다. 본존 우측에 있는 만다 라관 도표를 한번 보실까요. 중앙의 원을 중심으로 동방에 아축불, 남방에 보생불, 서방에 아미타불, 북방에 불공성취불이 계시고 중앙에는 비로자 나불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부처님과 함 께 보살과 명왕, 천왕이 나란히 자리를 잡 고 계십니다. 그런데 총지종은 부처님의 모습을 형상으로 만들지 않습니다. 부처님은 형상으로 계시지 않고, 진리 그 자체이시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깨달 으면 이 사람도 부처, 저 사람도 부처, 수 많은 사람들이 부처인 것입니다. 또 그 모 습은 서로 달라도 깨달음의 마음은 하나 요, 궁극에는 그 하나조차도 없다 합니다. 그래서 부처님의 모습을 이렇다 저렇다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부처는 하나의 형 상이 아니라 영원불변의 진리인 법신이 신 것입니다. 부처에게는 과거, 현재, 미래가 따로 존 재하지 않습니다. 과거불, 현재불, 미래불 이름만 다르지 하나입니다. 그러므로 모 든 부처의 몸은 하나의 법신, 즉 하나의 진리인 것입니다. 이렇듯 부처는 형상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자재 그 자체인 것입 니다. 그래서 밀교는 진리 자체인 법신비 로자나불을 주불로 한 것입니다. 또한 부처님의 자비는 모든 생명에 대 한 크고도 넓은 자비입니다. 그래서 대자 대비라 합니다. 대자대비는 중생과 근본 으로부터 한 몸이 되신 것이기에 동체대 비라 합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 로 하여금 바르고 고통 없는 곳으로 인도 합니다. 부처님은 영원한 생명이며 한량 없는 빛이며 모든 것의 본질이기도 합니 다. 그러므로 진리 그 자체이신 부처님의 광명은 영원이 끝나지 않는 등불 인 것입 니다. 우리가 지성으로 불공에 정진하는 것 은 지금 생에 윤회의 사슬과 업보의 벽을 허물고, 즉신성불의 대도를 이루고자 함 입니다. 나의 용맹정진은 법계의 진리이 신 부처님께 전해져 당당히 이생에 성불 을 이룰 것입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첨부파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