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중완급(輕重緩急)의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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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86호 발행인 우인(최명현) 발간일 2023-09-01 신문면수 9면 카테고리 신행 서브카테고리 역삼한담페이지 정보
필자명 탁상달 필자법명 - 필자소속 - 필자호칭 시인 필자정보 - 리라이터 -페이지 정보
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3-09-09 15:25 조회 1,487회본문
‘경중완급(輕重緩急)’이란 말은 공자와 안회 사이의 일화에서 유래된 사자성어이다. 안회가 공자의 심부름으로 시장에 갔는데 포목점 가게 주인과 손님이 시비가 붙어 있었다.
안회가 정중히 인사를 하며, “3 x 8은 분명히 24인데 어째서 22입니까? 당신이 계산을 잘못한 것입니다.”고 말을 했다.
그러자 손님은 “네가 누군데 참견이냐? 도리를 평가하려거든 공자님을 불러와라!”
손님은 목을 내놓겠다고 하고, 안회도 지지 않고 관(冠)을 내놓겠다고 내기를 걸고는 공자를 찾아갔다. 사연을 들은 공자는 안회에게 웃으며 “네가 졌으니 이 사람에게 관을 벗어 내주거라.”고 말했다.
안회는 순순히 관을 벗어 포목을 사러 온 사람에게 내어주었다. 안회는 공자의 판정에 대해 스승의 처신을 이해할 수가 없었으며, 이제 너무 늙었고 우매해졌으므로 더 이상 배울 게 없다고 생각했다.
안회는 부모님을 찾아뵙겠다며 공자에게 고향에 다녀올 것을 요청하였다. 공자는 가능한 빨리 돌아올 것을 당부하면서 ‘두 마디’의 충고가 새겨진 ‘천년고수막존신(千年古樹莫存身), 살인부명물동수(殺人不明勿動手)’라고 써진 죽간(竹簡)을 건네주었다.
고향으로 향하던 안회는 갑자기 천둥소리와 함께 번개를 동반한 소나기를 만나자, 길옆 오래된 고목나무 밑으로 뛰어 들어갔다. 순간 스승의 충고인 ‘천년고수막존신 즉, 천년 묵은 고목나무에 몸을 숨기지 말라’는 말이 떠올라 뛰쳐나왔다. 바로 그때 번쩍하면서 그 고목나무가 번개에 맞아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고향집에 도착해 조용히 아내가 자고 있는 내실의 문고리를 풀었더니 컴컴한 침실 안에서 두 사람이 자고 있는 것이 아닌가? 순간 화가 치밀어 올라 검을 뽑아 내리치려는 순간 공자의 충고가 떠올랐다. ‘살인부명물동수 (殺人不明勿動手) 즉, 명확치 않고서는 함부로 살인 하지 말라’ 얼른 촛불을 켜보니 한쪽은 아내이고 또 한쪽은 자신의 누이동생이 자고 있었던 것이다.
안회는 날이 밝기 무섭게 공자에게 되돌아가 무릎 꿇고 “스승님이 충고한 두 마디 말씀 덕분에 제가 벼락을 피했고 제 아내와 누이동생을 살렸습니다. 어떻게 알고 계셨습니까?” 여쭈었다.
공자는 “안회야! 첫째는 어제 날씨가 건조하고 무더워서 다분히 천둥 번개가 내릴 수가 있을 것이므로 벼락을 끌어들이기 쉬운 고목나무를 피하라고 했던 것이고, 둘째는 네가 분개한 마음 풀지 못하였고, 또한 보검을 차고 떠났기에 너를 자극하는 어떤 조그만 일에도 분명 예민하게 반응할 것을 걱정했기 때문이란다.”
공자가 이어서 말하길 “안회야! 한번 잘 생각해보아라. 내가 손님의 말이 맞다고 하면 너는 그저 머리에 쓰는 관 하나 내준 것뿐이지만, 만약에 네 말이 맞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목숨 하나를 내놓아야 하지 않았겠느냐?” 안회가 비로소 이치를 깨닫게 되어 공자 앞에 다시 무릎을 꿇고 큰절을 올리고 공자 곁을 떠난 적이 없었다고 한다.
우리가 한평생을 살아가면서 가끔은 자신이 부리는 고집이나 자신이 옳다고 하는 판단, 옳고 그름의 사소한 언쟁 등으로 논쟁에서 이기고도 마음이 불편한 적이 많이 있었을 것이다. 이런 일로 인하여 우리는 가장 소중한 것을 잃게 될 수도 있다.
아무 의미 없는 체면이나 위신, 또는 자존심 때문에 후회막급한 일이나 기억하기 조차 싫은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차라리 논쟁하는 상대방에게 그 순간만은 양보하거나 져주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이렇게 했다고 자신의 지식이 퇴보하거나 인격이 깎이는 것이 아니라, 결국은 지식과 인격이 돋보이게 되어 물론 승자가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승자가 되어있는 것을 보게 되기 때문이다.
가을이 성큼 다가오는 계절의 변환기에 건강 잘 챙기시고 경중 완급의 자세로 살아가자는 다짐을 해보는 9월의 아침이다.
< 시인, 전 동해중 교장 탁상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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