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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교의 의례와 선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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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86호 발행인 우인(최명현) 발간일 2023-09-01 신문면수 8면 카테고리 밀교 서브카테고리 밀교법장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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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명 정성준 필자법명 - 필자소속 - 필자호칭 교수 필자정보 - 리라이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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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3-09-09 15:20 조회 1,36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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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교의 의례와 선의 길

불가사의 저술의 「공양차제법소」 구성은 서분에 해당하는 「진언행학처품」과 정종분에 해당하는 「증익수호청정행품」·「공양의식품」·「지송법칙품」, 그리고 유통분에 해당하는 「진언사업품」으로 이루어져 있다. 「진언행학처품」이 수행처를 다루는 것이라면 「증익수호청정행품」과 「공양의식품」은 각각 수행처의 정화와 공양을 설한 것이고, 본수행은 「지송법칙품」에서 다루고 있다. 마지막으로 「진언사업품」은 유통분에 해당한다. 그러나 도안의 경전 구성분류와 「공양차제법소」 의 분류가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고, 불가사의가 아사리가 설한 대로 대의·유래·경명·문장해석이 「대일경」 제7권의 주석에 입각한 바른 입장을 보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대일경」의 출현 이후 진언문의 수행을 유가행의 입장에서 전개한 것은 「금강정경」이다. 「대일경」은 세간과 출세간의 문제를 고루 다루고 있기 때문에 행딴뜨라로 분류하지만 「금강정경」은 출세간 중심의 유가행을 다룬다. 경전의 성립사로 볼 때 「금강정경」의 진언유가가 세밀한 출세간수행을 언급하지만 「대일경」은 세간실지와 출세간실지를 고루 중요시한다. 중생을 구호하는 세간의 진언사업과 출세간의 유가행을 고루 안배한다는 뜻이 된다. 불가사의가 「공양차제법소」에 대해 진언행이라 명명한 것도 이를 배려한 것이다. 

불가사의는 「진언행학처품」에서, “자타의 이익을 성취하는 것은 위없는 지혜와 원(보리심)의 방편에 의한다.”라고 하였다. 진언행을 닦는 장소가운데 공한처를 예시하고, 행주좌와와 의복, 음식의 위의를 설한 것은 「공양차제법소」 저술목적이 출세간의 수행에 있음을 예시하는 것이다. 이어지는 「증익수호청정행품」은 수행을 위한 지계와 주처, 신체의 수호를 위한 것으로 작례방편으로부터 무감인대호까지 이르는 의식과 다음에 이어지는 「공양의식품」은 소작으로부터 무상유가에 이르는 진언문 전행의 전형적 모습이며 그 기조는 지금도 변함없이 계승되고 있다. 


본 수행에 해당하는 「지송법칙품」에 대해 불가사의는 종취를 일컬어, “설하는 것에 차별이 없음을 바로 종으로 삼는다. 이익을 얻어 다른 이들에게 베푸는 것을 취로 삼는다.”라고 하였다. 문장의 해석은 모두 십문을 벌여 해석하고 있다. 십문의 내용을 살펴보면 크게 자리의 수행과 이타행을 위한 밀교의 의식적 신변을 설하는 것으로 나누어진다. 특히 십문의 최후를 구성하는 대일삼밀속득문·석가진언성취문·비밀사업가해문은 대일여래의 실지를 성취하고, 석가모니불처럼 인간계에 출현해 중생을 구제하고, 구체적으로 세간실지를 통한 중생구호의 사업을 실현하는 것이다. 

불가사의의 「공양차제법소」를 보면 아사리에게 선사의 풍모가 다분히 보이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진언행학처품」의 대의에서 “참된 성품의 지극한 이치는 언어와 형상을 여의었을지라도 근기에 따라 시현하여 상으로써 나타내지 않는 것이 없다.”라고 한 것처럼 확실히 아사리는 언어도단의 경지를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밀교와 선의 목적은 모두 이상적 인간이 되는 것이다. 

「대일경」의 태장계만다라는 7세기 초 인도 불교의 모든 이론과 실천 체계를 만다라라는 공간에 입약해 탄생한 것이다. 대승교학과 보살의 원력, 수행지를 모두 거둔 것이다. 「공양차제법소」는 「대일경」 6권 전체를 요약해 수행의궤로서 가장 간략한 진언행을 다룬 것이다. 역시 대일여래의 정각과 석존의 불사가 어우러져 있다. 

불가사의는 선무외삼장(637-735)의 활동기에 활약했다. 백여 년 후 태어난 임제선사(?-867)가 있다. 「임제록」에서 임제선사는, “붉은 살덩어리 위에 하나의 무위진인(無位真人)이 있어 항상 모든 사람의 면문으로 출입한다. 아직 증험하지 못한 자는 살펴보고 살펴보라.”라고 하였다. 이때 한 스님이 나와 “무엇이 무위진인(無位真人)입니까?”라고 묻자 임제선사가 선상에서 내려와 멱살을 붙들고, “말해라. 말해라.”라고 재촉했을 때 스님은 의논하고자 머뭇거렸다. 

임제선사가 탁 밀치고는, “무위진인이 무슨 마른 똥막대기인가?”라고 말하였다. 그리고 방장실로 돌아갔다. 

「공양차제법소」는 철저하게 인도대 승불교의 계승자이다. 석존으로부터 시작된 교단과 역사를 모두 헤아리고 있다. 선은 철저하게 실용적이다. 거추장스러운 언어, 문자를 거부한다. 적어도 선이 지나온 한 시절이 그랬다. 인간은 문자와 의식에 빠져 헤메기 쉽다. 임제선사와 거량했던 선사의 머뭇거림에 임제선사는 분별을 부수지 않을 수 없다. 무위는 분별의 경계를 용납지 않는다. 적어도 선의 기초는 그런 것이라 생각한다. 선의 소의경전인 「능가경」과 「금강경」은 반야와 보살의 원력으로 점철되어 있다. 반야공과 보살 원력의 양 바퀴는 선과 밀교를 움직이며 항상 공존해왔다. 그것은 세간과 출세간실지이고, 무위의 경계이고 진인이기도 하다. 전통 승가의 전통을 지키는 것은 문자와 전승, 의례이다. 연기와 공사상과 관련해 인도불교는 논리의 끝을 보려하고 의식적으로 표현하였다. 선은 인간의 현실에서 언어도단 궁극의 현실을 보이려 한 것이 아닐까생각해본다. 전 동국대학교 티벳대장경역경원 정성준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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