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나의 관음보살, 아이들이 오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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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119호 발행인 원송[서진업] 발간일 2009-10-18 신문면수 11면 카테고리 신행 서브카테고리 -페이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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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미디어커넷 입력일시 18-06-22 05:07 조회 2,857회본문
불교! 그 속의 밀교, 그 중에서 정통 밀교 종단의 하나인 우리 총지종!
나와 총지종과의 인연은 어머니 태중 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어린 시절 밀양 밀행사 길, 그 곳의 가장 큰 기억으론 새벽녘 어머니의 성화에 졸리는 눈을 비 벼 일어나 함께 새해불공 가던 것이 있 다. 고요하고 짙은 새벽 하늘에 별 총총, 둥둥 조각달 하나와.함께 간 길은 지금 도 잔잔한 그리움으로 남는다.
그리고 상경 후 서울살이의 외로움과 촘촘하지 못한 마음 밭에 바람이 일 때, 아주 가끔 동대문 밀인사를 찾아 가던 길에선 지금은 통리원장님이 되신 .원송 정사님의 인자하신 미소가 선하다. 몇 년이 지나 결혼 후 지금까지 이웃한 벽 룡사를 반가운 마음으로 찾고 있다.
어느덧 벽룡사에도 어김없이 가을이 왔 다. 스승님 내외분 그리고 8분의 보살님 들, 5분의 각자님들 모두는 한 마음이 되 어 이른 새벽부터 그 동안 기다려왔던 1 박 2일 일정의 삼사 순례의 길을 나섰다.
길을 시원하게 달려 어느덧 내설악의 입구인 용대리 백담 주차장에 도착하여 준비한 점심을 먹고 버스에 몸을 싣기 위해 서둘렀다.
차창에 비친 백담 계곡의 맑은 물과 하얀 바윗돌에 도시 생활에 찌든 때가 모두 씻겨 가는 기분이다. 백담 계곡의 좁고 굽은 길을 버스를 타고 백담사로 향하는 마음 한 켠엔 그 옛날 우리네 할 머니, 어머니 보살님들은 무슨 원을 머 리에 이고 이 멀고 힘든 길을 걸어 가셨 을까 하는 생각이 일었다. 잠시 생각에 잠기자 어느덧 버스는 이번 첫 순례지인 봉정암의 출발점 백담사 주차장에 도착 하였다.
백담사는 삼국시대 신라의 자장율사가 지은 고찰로 처음엔 한계령 부근 한계리 에 절을 세우고 한계사라 불리다 조선 영조 때부터 백담사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전설에 의하면 설악산 대청봉에서 절이 있는 곳이 담(쀼)이 백 개 있는 지 점의 사찰이라 백담사라고 한다. 백담사, 는 만해 한용운 스님이 입산 수도한 유 명한 곳이기도 하지만 현대사에 영욕으 로 얼룩진 큰 상처를 남긴 전두환 대통 령이 2년간 은둔 생활을 한 곳이기도 하 다.
묘하게도 백담사에서 선자와 불선자 라는 인간의 양면을 접하니 법문을 듣는 듯하다. 백담사 옆을 지나 평탄한 숲길 을 따라 걷다 보니 자꾸만 계곡이 깊어 지기 시작한다. 쉼 없이 흐르는 맑은 물 을 보니 본래가 청청함은 이를 두고 이 름인가. 내 속까지 훤히 들려다 보이는 것 같기도 하여 조금은 움츠려 든다.
어느덧 중간 지점인 영시암에 이르렀 다. 이곳 절에 스님들이 가꾼 듯한 가을 배추가 햇살을 받아 더욱 싱그럽다. 영 시암 터는 조선 숙종 때 노론이 세력을 잃고 남인이 득세하자 노론에 속하여 처 형 당한 양반의 아들이 속세와 인연을 끊고 수도할 뜻으로 암자를 지었다고 하 며, 함께 있던 여자 종이 호랑 이게 물려 죽자 절을 떠나 버렸 다고 한다. 영시 암을 뒤로 하고 우리는 서서히 입산하는 느낌을 받으며 수렴동 계곡을 따라 부 지런히 걸었다. 예상보다 빠른 산행에 담소도 나누고 차가운 계곡물에 발도 담구어보고 잠시 동안 피로를 풀 며 설악산의 절 경에 그대로 하나가 되어갔다. 얼마나 까마득히 올라 왔을까? 쌍룡폭포가 두 갈래로 물을 뿜으며 승천을 준비하는 듯 하다.
이제 마치막으로 우리를 노러 보며 떡 하니 버티과,서—. 놈이 있으니 바로 깔딱 고개다!
그러나 여기서 포기할 우리 보살님 각 자님들이 아니었다. .옴마니반메훔으로 단련된 그분들이 아닌가!
고갯마루에 오른 후 사자 바위에 올라 서니 설악의 힘찬 위용이 스스로를 뽐내 는 듯 하다.
저기 눈앞에 첫 순례지인 봉정암이 보 인다. 봉정암은 우리나라 암자 중에 가 장 높은 해발 에 위치하고 있다. 양산 영취산 통도사, 강원도 평창 오대 산 상원사, 영월 사자산 법흥사, 정선 태 백산 정암사와 함께 석가모니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는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 중의 하나이다.
전국 각 사찰에서 스님들의 인솔하에 순례를. 온 불자들로 봉정암은 그야말로 문전성시였다.
먼저 우리는 사리탑을 친견하고 잠시 정좌하여 염송하며 부처님의 광명이 널 리 퍼지기를 발원했다. 어느덧 초가을 노을이 붉게 서쪽을 물들이며 먼저 하산 하고 있었다. “줄을 서시오” 라는 스님 의 고함소리와 함께 후루룩 대중공양을 마치자, ‘둥둥딱닥’ 법고소리와 ‘봉저 엉’ 하며 울리는 범종소리를 뒤로 하고 저녁 예불에 참석하였다.
법회는 사부대중들로 가득하여 본래의 야단법석을 실감하는 자리였다. 주지스 님의 설법에 따르면 적멸보궁 은 번뇌가 사라진 보배로운 집이며, 석 가모니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곳 이기 때문에 불상을 모시지 않는다고 한 다. 스님은 또 육신을 살찌우 기 위해 매일 밥을 먹듯이 마 음도 매일 닦아 야 하며, 봉정 암에 와서 좁은 잠자리 가지고 싸우지 말고 제 발 기도 열심히 해서 내려 가는 길엔 양손에 소 원 보따리 들고 내려가라고 한 다.
부처님 사리 카 모셔진 도량 이라 그런지 숙소가 좁아서인지 잠을 이룰 수 없어서 법당에 들어가 ' ‘우리 장모님 건강 돌아 와 남은 여생 행복하게 보낼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라고 빌었다.
그렇게 백팔배를 한 후 염송을 하고 보니 어느덧 밤이 깊어 갔다. 내일의 순 례를 위해 웅크려 잠을 청해보지만 쉽지 가 않다. 그렇게 뒤척이다 새벽 소나기 소리에 귀를 쫑긋거리다 일어나니 모처 럼 보는 샛별이 정답기만 하다. 부지런 한 아침을 맞이한 후 사리탑 뒤에서 남 은 순례 길을 향한 결의를 다지고 우리 는 봉정암을 내려왔다. 간밤에 우리 보 살님들도 편히 쉬지 못한 탓일까. 하산 길이 쉽지만은 않아 보였다. 그러나 벽 룡사 각자님들의 도움으로 내설악의 골 짜기를 오르락 내리락 거리며 그곳 다람 쥐와 인사도 하며 두번째 순례지인 오세 암에 이르렀다.
오세암은 백담사의 부속암자이며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가 지었다. 그 때 는 관세음보살이 언제나 함께 한다는 도 량이란 뜻으로 관음암 이라 불려지다가 조선 인조 때 설정 스님이 중건하고 오 세암으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여기 엔 오세 동자가 폭설에 갇히게 되었으나 관세음보살의 신력으로 살아 났다는 전 설이 있다. 그리고 한용운 스님이 백담 사와 오세암을 오가며 님의 침묵을 탈고 한 곳이기도 하다.
아〜 인생이란 만남과 헤어짐의 연속 이런가. 육도윤회의 수레바퀴를 언제쯤 멈추련가. 부처님 법 만나기가 백천만겁 을 지내어도 어렵다지만, 금생에 복이 많아 관세음보살 육자진언 생활 속에 충 만하네. 오세암의 흰옷 입은 관음보살 출현과 화려한 탱화에 법일 정사님은 암 자를 떠나기가 못내 아쉬워하셨다.
산을 오르는 것보다 내려오는 것이 더 힘들다는 것을 실감하고 우린 다시 처음 출발한 백담 주차장에 무사히 돌아왔다. 그리고 백담사 근처 용대리에서 점심 공 양과 휴식을 한 후 세 번째 순례지인 낙 산사 홍련암으로 길을 달렸다.
홍련암은 강화 낙가산 보문사와 남해 금산 보리암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 관 음성지 중의 하나이다. 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가 7일 7야 지성기도를 드렸다 ’ 가 깊은 바다 속에서 붉은 연꽃이 솟아 오르고 그 속에서 관음보살을 친견한 후 홍련암이란 암자를 지었다고 한다. 2005 년 4월 5일 낙산사 화재때도 홍련암과 의상대만은 재난을 피할 수 있었는데 이 를 두고 어느 각자님은 관세음보살님의 가피력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화재이후 복구된 홍련암 가는 길은 예 전의 자연스러움과 조금 다른 느낌도 있 었지만 동해 바다를 바라보며 가엾은 중 생 구제에 노심초사 하시는 관세음보살 님 그대로였다. 그리고 낙산사 보타전에 는 7관음상(천수관음, 성관음, 십일면관 음, 여의륜관음, 마두관음, 준제관음, 불 공견색관음)과 32관음 응신상, 1천 5백 관음상이 봉안되어 있다고 한다. 특히 일반 사찰과 다르게 7관음상 뒤를 돌며 친견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었으며, 법 일 정사님은 미래 총지종 사원의 모습도 그려 보셨다.
이렇게 벽룡사의 스승님과 보살님들, 각자님들은 초가을 삼사 순례를 무사히 마치고 홍련빛 동해 바다를 놓아두고,, 설악의 울산바위 마저 내려 놓고'다시 본래의 길로 돌아 왔다.
그날 저녁 집에 오자 마자 우리 집 새 내기 보살님에게 말했다. 당신이 나의 관음보살이요, 우리가 사는 이 가정이 적멸보궁이요, 고요히 잠들어 있는 우리 아이들이 오세 동자 아니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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