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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불은 부처님 은혜 갚음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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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116호 발행인 원송[서진업] 발간일 2009-07-05 신문면수 12면 카테고리 문화3 서브카테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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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명 윤우채 필자법명 - 필자소속 - 필자호칭 - 필자정보 - 리라이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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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미디어커넷 입력일시 18-06-21 11:31 조회 2,00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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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불은 부처님 은혜 갚음 입니다

재를 넘고 나서 거개의 사람들 은 되돌아 보며 한 숨을 내쉬 고는 “저렇게 큰 고개를 어찌 넘어 왔 는지 모르겠다”고 말할 것이다.

인생길도 그러할 터. 나이 지긋한 사람들이라면 살아온 길을 회고해 보 면서 그 많은 난관을 어떻게 헤쳐 왔 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 마련이다.

사람이 한 평생 살면서 겪는 갖가지 고초만 본다면 낙망하기 쉽다. 자포자 기해서 세상을 등지기도 한다. 이런 연고로 세상의 종교들은 참고 또 참아 야 한다며 인 을 강조해 왔다. 불교 에서는 이 세상 을 사바세계 라 하여 견디며 참고 사는 세 상- 감인토(포나라 간주했다. 선지 자들은 거기에다 때를 기다릴 줄 아는 현명함을 함께 주문하기도 했다.

이제 얘기하려는 사람도 세상을 건 너는 데 꼭 필요한 감  - 인  - 대를 아는 사람이었다.

매주 화요일 오후 1시 총지종 통리 원 2층에선 아름다운 화음이 흘러 나 온다. 어느 날은 “보리밭 사잇길로〜” 가 들리고, 또 어느 때엔 “하룻동안 행 복함은〜”이 들린다. 노래 시작은 창 교가, 끝은 회향가다. 종단의 행삿날엔 어김없이 가릉빈가 로 나타 나 음성공양을 올리는 총지종 서울경 인 합창단이 내는 소리다.

노래하면 생기가 돌고, 즐겁고 감 사하고 행복한 마음이 샘솟습니다! 우 리가 이렇게 매주 불원천리  하고 모이는 것도 노래를 부르며 나와 세상 모든 사람들이 밝고, 활기찬 마 음을 갖고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에 서죠.”

동대문 밀인사 이 연수(61 법명 : 복 지원) 보살. 서울 경인 합창단장, 서울 경인 지회 총무, 밀인사 총무 등 중책 을 맡아 종단의 대소사를 관장하고. 있 다.

이 연수 보살과 총지종과의 인연은 총기 1년부터다. 그러니 종단 안팎을 두루 살피고, 성에 차지 않은 일들이 상태가 지속됐다. 보살은 부처님께 매 달렸고 신기하게도 남편은 보살이 불 공을 올리는 시간만은 조용히 잠을 잤 다. 이렇게 해서 시어머니를 비롯한 온 가족이 밀인사를 다니게 되었다. 사원엔 지금 기로원에 주석하는 법장 화 스승이 주교로 재임하고 있었다. 법장화 스승과의 만남은 이 연수 보살 의 수행과 삶에 큰 이정표가 되었다. 그때 법장화 스승은 이렇게 말했다 한 다.

“자네 같은 사람은 일단 절에 나오 기만 한다면 뿌리를 내리고 불은 을 받을 사람이야. 여일하게 수행 하게. 한 가지 일러 줄 말은 복은 밤새 도록 굴러 다니다가 대문을 먼저 여는 사람에게 들어 온다네. 새벽에 맑은 정신으로 깨어 있게.”

이때부터 보살은 이른 새벽 일어나 제일 먼저 불공을 드리는 것으로 하루 를 열었다. 그러기를 1년여. 남편은 건 강을 온전히 회복했다.

한 고개를 넘으니 이번엔 생활고가 찾아 왔다. 무슨 일이든 가리지 않고 일을 했지만 형편은 나아지질 않았다. 고3 이었던 큰 딸의 고등학교 등록금 이 없어서 칼라'!V를 내다 팔았다. 힘

들어도 내색하지 않았다. 아예 그럴 사이가 없었다. 보살은 한 마디로 말 했다. 살아야 했다고.

험한 세파속에서도 보살은 부처님을 생각하고 ‘공양하는 일은 소홀히 하지 않았다. 불공할 수 있는 시간이 나지 않을 때에는 잠을 줄이고 오가는 차 중에서 불공했다.

그렇게 40년 가까운 세월동안 생활 하는 일과 불공하러 절에 다니는 일 말고는 하루도 다른 일은 못해봤다. 경치 좋은 곳에 구경가지 못했고 맛좋 은 음식도 먹을 수가 없었다. 일 년에 한 차례 절에서 방생가는 날이 보살에 겐 나들이고 보살이 자신에게 허용한 호사였다.

간절한 기도 덕분이었는지 도움을 주고자 하는 이가 나섰다. 그 사람들 은 판사고 의사여서 남부럽지 않게 살 수 있었는데 불행히 아이가 자폐아였 다. 그들은 보살에게 정식 보조교사 교육을 받게 헤 주고, 막내 아들이 고 등학교를 마칠 때까지 머물며 살 수 있는 집도 마련해 주었다.

“불공을 하면 고마운 분들이 생겨나 지요. 마치 신장님처럼 가는 곳마다 사연과 고충을 들어 주고 음으로 양으 로 후원해 주는 분들 말이예요.”

모든 것이 변하고 무상하다 는 가르침대로 인생도 영 고 를 거듭하는 것이리라. 실타래 풀 리듯이 주위의 어 려움이 해결되어 갔다. 불공해서 얻 은 막내 아들은 사무관 시험에 합 격하고, 외교관 며 느리를 얻고. 큰사 위는 은행고위직이 되었다. 둘째딸은 항공 기 승무원이 되어 고생만 한 어머니를 모시고 외국 여 러 나라 여행을 시켜 줬다고 한다.

이 연수 보살의 요즈음 발원은 여생 을 절과 합창단, 종단, 그리고 일체 모 든 중생에 까지 두루 미치는 보시행을 하며 보내는 것이다. 보살은 사원 피아 노 봉사를 하기 위해 수년간 하루도 빼놓지 않고 학원을 다니기도 했다. 요 즘엔 월초불공때마다 교도들에게 새로 운 찬불가를 가르쳐 주고 있다고 한다.

작년 초부터는 합창단장을 맡아 대 내외에 종단을 알리고 부처님 말씀을 아름다운 화음에 실어 전하고 있다. 서울 경인 합창단은 인기가 많아 각 종단의 음성공양 요청도 곧잘 들어 온 다고.

“세상을 맑고 향기롭게 만들기 위해 서 많은 분들이 함께 노래했으면 합니 다. 찬불가엔 부처님 법문이 함께 들 어 있습니다. 그래서 찬불가를 한다는 것은 부처님 법음을 전하는 일이고, 우리가 부처님께 받은 은혜 갚는 길이 기도 합니다.”

보살도 그렇게 화  - 해 를 하 는 듯 보인다. 세상과 사람들과 자기 를 얽어맸던 모든 번뇌와 장애들과. 그리고 자유를 얻었을 것이다. 노래를 하면서, 피아노를 치면서.

한 번도 한 적 없이 열심히 사 니까 끝이 있더라며 보살이 말했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부처님 법을 만 났으니 얼마나 큰 복입니까. 그동안 우여곡절을 많이 겪었지만 총지종을 만나고 진언수행을 한 덕택으로. 입때 껏 무사히 지내올 수 있었습니다. 이 젠 제가 받은 선근 공덕을 돌려 줄 차 례입니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남을 위해 기도하고 봉사할 생각입니다. 부 처님과 나와 인연된 모든 이들이 행복 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 윤우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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