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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환상을 보고 있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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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120호 발행인 원송[서진업] 발간일 2009-11-22 신문면수 11면 카테고리 신행 서브카테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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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명 김은주 필자법명 - 필자소속 - 필자호칭 - 필자정보 - 리라이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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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미디어커넷 입력일시 18-06-22 06:04 조회 2,19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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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글: 영화에서 불교보기 (7회)

"너, 환상을 보고 있는 거야"
뷰티플 마인드

어렸을 때 이웃에 믿음이 좋은 가족이 살았다. 그 집 막내딸과 친구였고, 이런 친구를 둔 덕에 교회에 자주 드나들었 다. 거기 가면 찬송가도 배우고 사탕이 니 연필이니 선물도 받을 수 있어서 교 회에 다녔었다. 아무 생각 없이 가끔씩 다녔지만,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알게 모르게 기독교적 가치관에 물들었던 것 같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살았던 걸 보 면.

사람이 죽으면 몸뚱이는. 땅에 묻히는 순간 흙으로 사라지지만 영혼은 그렇게 허무하게 없어지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 다. 좋은 일을 많이 하면 천국으로 가서 행복하게 살고, 나쁜 일을 하게 되면 지 옥 간다고 여겼다. 즉 영혼은 아무개라 는 이름표와 함께 이생과 저생을 넘나들 며 영원히 이어지는 것이라 여겼다. 그 러므로 언젠가는 사라지게 될 운명인 육 체 보다는 항상 존재하는 영혼이 진짜 ‘나’라고 생각했다.

20여년 살아오면서 한 번도 의심하지 - 않았던, ‘육신은 없어져도 영혼은 영원 하다’는 나의 확고한 믿음이 깨졌을 때 적잖 ' 이 당황하게 됐 다. 20살 때불 교인에게서 ‘영 원히 변하지 않 는 ’ 아는 없다’는 말을 들었다. 딱히 ‘나’ 라고 할 만 한 게 없다는 말이다. 영원히 존재하는 영혼 같은 건 없다는 것이다.

영혼이 없다 면 난 이생에서 끝나버리는 건 가? 육체의 소 멸과 함께 나라 는 존재는 영원 5》라지는가? 쉽게 믿기 어려운 말이 었지만 이전에 듣도 보도 못한 완전히 새로운 것이기에 구미가 당겼다.

이렇게 시작된 불교에 대한 의문은〈 금강경〉을 접하면서 절정에 이르게 됐 다. 금강경에서는 ‘내가 없다’는 것에서 한 술 더 떠 내가 보고 만지고 만나는 모든 게 환상이라는 것이다.

꿈속에서 로또에 당첨된다 하더라도 깨어나면 도루묵인 것처럼 우리가 환상 에 불과한 현실에 집착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했다. 이 또한 씨나락 까먹는 소 리처럼 구체적으로 와 닿지가 않고, 누 군가 ‘그게 도대체 무슨 소리야’ 하고 물어도 명쾌하게 대답해줄 만큼 머릿속 에서 정리가 안 되었다.

물론 금강경이 언어 이전의 깨달음의 소리기에 언어적으로 이해시킬 그런 진 리가 아니고, 벼락처럼 단번에 깨달아야 할 그런 진리기에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게 어쩌면 당연한 지도 모른다. 그래도 답답한 마음에 금강경을 해석해 놓은 책 을 이것저것 찾아 읽어봤지만 뾰족한 해 답은 얻지 못했다. 어떤 책에서도 명쾌 하게 안개가 걷히는 느낌은 없었다. 전 혀 뜻밖의 이 영화를 만나기 전까지는.

〈금강경〉과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천재 수학자 존 내쉬의 일대기를 영화로 그린 〈뷰티플 마인드〉는 아무런 연관이 없어 보인다. 그런데도 천재와 광기가 뒤섞인

한 개인의 삶을 바라보다가 금강경이 전 하는 진리를 문득 깨닫게 됐다. -

〈뷰티플 마인드〉의 주인공 존 내쉬는 한때는 제2의 아인슈타인으로 추앙받으 며 이17 교수로 전격 발탁되는 등 앞날 이 촉망받는 수학자였다. 그런데 인생의 절정기인 어느 날 그에게 흘연 새로운 사람들이 나타난다. 이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고, 오 직 존 내쉬에게만 보인다. 즉 그 에게 환상의 세계가 열린 것이다.

정신분열증 환자의 증상은 보통 사람은 보지 못하는 환상을 보는 것이고, 존 내쉬 또한 현실과 환 상을 구별하지 못할 정도로 환상 속에서 살 때가 많다. 그의 환상 속에는 그의 오만함을 부추기는, 과대망상적인 성격이 농후한 정보 기관의 인물도 나오지만 외로움을 보여주는 인물들도 등장한다. 친 구가 없는 그에게 유일하게 말벗 이 돼주는 이가 있는데, 그가 바 로 영문학을 전공하는 룸메이트와 어린 소녀다.

환상과 현실을 구별하지 못하기 때문에 환상 속에서 만나는 이들 을 현실로 착각하면서 환상 속의 인물들 과 교우하며 수년의 시간을 보낸다. 물 론 자신을 절대로 정신분열증 환자라고 도 생각지 않는다.

그는 현실 보다는 환상에 더 많은 시 간을 보내게 되고 현실과의 갈등은 점점 고조돼가고 현실적으로 그의 삶은 어려 워져만 간다. 사람들도 한 명씩 떠나가 고 경제적으로도 궁핍해져가고 옛날의 명성은 온데 간데 없고, 정말 광기에 빠 진 정신병자로 전락해간다.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것 같고 더 이상 미래를 기 대할 수 없을 것처럼 미쳐가던 어느 날, 이런 최악의 현실을 단박에 바꿔버릴 수 있는 그런 깨달음이 홀연히 찾아온다.

어느 날 그는 자신이 항상 만나는 어 린 소녀가 시간이 많이 흘렀음에도 불구 하고 여전히 고만고만하다는 사실에 경 악한다. 어느덧 자신의 아들이 태어나 、자라고 있고, 다른 사람들도 시간이 지 나면서 조금씩 변해 가는데, 오직 그 소 녀만 여전히 그대로라는 사실이' 그에게 많은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것 봐,너 미쳤잖아. 네가 보는 거 다 거짓이야. 다른 사람 눈에는 그 애 안 보여. 그 애는 네가 만들어낸 환상에 불 과해.’

아내고 남들이 다 ‘너는 환상에 빠져 있다’ 고 해도 자신이 직접 만나서 말도 하고 보기도 하는 그런 사람들을 도저히 환상이라고 믿을 수 없었는데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자신이 환상을 보고 있다는 벼락과 같은 깨달음을 얻는다.

그러면서 그는 이 대단한 발견을 계기 로 자신이 환상 속에서 살아왔음을 확실 하게 알게 되고, 그러면서 존 내쉬의 삶 은 변화를 맞게 된다. 소크라테스가 말 한 ‘너 자신을 알라’가 시대와 장소를 뛰어넘는 명언인 것이 존 내쉬의 경우에 서도 입증된다. 자신이 환상에 빠져 사 는 정신병자라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성 큼 도약하는 것이다.

자신이 보는 것이 환상임을 자각하자 그는 환상을 외면해 버린다. 룸메이트가 나타나고 정보기관의 남자가 나타나고 해도 더 이상 그들과 말을 섞지 않았다. 환상 속 인물들과의 관계를 완전히 끊어 버리고 수학에 매달려 마침내 1994년에 노벨경제학상을 받게 된다.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던 존 내쉬가 노 벨상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환상을 환 상으로 바라보고 ‘넌 거기에 었구나’ 하 며 환상과 자신을 분리시키려고 무단 애 를 쓰고 환상에 결코 빠지지 않았기,때 문에 가능했다.

존 내쉬의 처지에 나를 대입시켜 놓고 보면 내가 보고 만나고 하는 모든 게 환 상이라는 것이다. 언젠가 물거품처럼 사 라지고 연기처럼 사라질 환상이라는 것 이다. 문제는 내가 내쉬의 경우처럼 환 상으로 자각해야 한다는 것, 환상임을 굳게 믿어 버려야 한다는 걸,〈뷰티플마 인드〉를 보면서 절감했다. 그리고 이것 이〈금강경〉으로 들어가는 관문임을 깨 닫게 됐다.

- 김은주(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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