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과학과 불심의 집대성 팔만대장경(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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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22호 발행인 인선(강재훈) 발간일 2018-04-30 신문면수 5면 카테고리 정진 서브카테고리 -페이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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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18-06-20 10:44 조회 2,910회본문
고려 과학과 불심의 집대성 팔만대장경(上)
벽룡사 주교 법일 정사
고려대장경판 및 제경판으로 등재 된 ‘팔만대장경’은 국보 제32호로 유네 스코 문화유산이자 국보 제52호인 해 인사 장경판전에 보관되어있다. 해인 사 팔만대장경 경판은 2013.12월에 세 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고려대 장경은 1011년 제작하기 시작하여 76 년만인 1087년에 완성된 대장경을 초 조대장경이라 한다.
대구 부인사(符仁 寺)에 보관했던『 초조대장경(初雕大藏 經)』이 고종19년(1232) 몽골군의 침입 으로 불타자 당시의 집권자인 최우(崔 瑀) 등을 중심으로 대장도감을 설치하 여 1251년 9월 25일에 완성을 본다. 이 규보(李奎報)는 고종24년(1237)에 작성 한 <대장각판군신기고문大藏刻板君 臣祈告文>에서 ‘몽고의 침입을 부처 님의 위신력(佛力)으로 물리치고자 하 는 염원을 담아 대장경판 판각을 하게 되었음’을 부처님 앞에 고하고 있다. 즉 몽골군의 침입을 격퇴하려는 민족적 인 염원에서 국력을 기울여 한자 한자 정성을 다하여 판각하였음을 알 수 있 다. 현재의 팔만대장경은 1236년 새로 제작에 들어가 1251년 완성된 것이다.
일반적으로 이 대장경판은 고려시대에 판각되었기 때문에 ‘고려대장경판’이라 고 하며 매수가 8만여 판에 달하고 8만 4 천 번뇌에 대치하는 8만 4천 법문을 수록 하였기 때문에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 이라고도 한다. 원래 이름은 재조대장경이 다.
대장경판은 성격상 정장과 부장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정장은 『대장목록 大藏目錄』에 수록되어 있는 경을 말 하고, 부장은 『대장목록』에 수록되 지 못한 『종경록宗鏡錄』 등 4종을 말 한다. 정장(正藏)은 대장도감과 분사대 장도감에서 판각한 1,497종 6,558권의 경을 말하며, 부장(副藏)은 분사대장도 감에서 판각된 4종 150권이 있다. 팔만 대장경은 1251년에 완성되어 지금까지 남아있는 목판은 8만 1,258판이다.
이 것이 어느 정도의 양인가 하면 판들을 차곡차곡 쌓았을 때 높이가 약 3.2km로 백두산(2.744km)보다 높다. 총 무게는 280톤에 달한다. 하지만 대장경이 유명 한 이유는 단지 양 때문이 아니다. 목판 하나하나가 마치 숙달된 한 사람이 모 든 경판을 새긴 것처럼 균일한 판각수 준과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하지만 안타까운 일은 지금까지 해 인사 팔만대장경판의 수와 관련하여 1915년 조선총독부에 의해 이루어진 1 천5백12종, 6천8백19권 8만1천258장이 라는 조사 결과가 가장 공신력있는 수 치로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조선 태조 실록에는 서울 지천사에 봉안된 대장 경판을 해인사로 이안할때의 경판 수 를 8만6천6백86매로 밝히고 있어 일제 때의 조사보다 무려 5천4백28매나 많 은 것으로 전해 오고 있었다. 2000년부 터 10여년간 '팔만대장경 디지털화' 사 업을 진행하며 경판 수를 조사한 결과 일제강점기인 1915년 집계보다 94장이 더 많은 8만 1352장으로 파악됐다. 습기에 뒤틀리거나 썩기 쉬운 목재 로로 만들어졌음에도 천년 가까운 시 간 동안 깨끗하게 옛 모습 그대로 남아 있을 수 있었던 것은 재목(材木) 선정과 곳곳에서 선조들의 지혜가 숨어있다.
선정된 목재를 경판으로 사용하기 위해 짧게는 30년 길게는 40~50년씩 자 란 나무 중 굵기가 40cm 이상으로 곧고 옹이가 없는 산벚나무, 돌배나무 등 10 여 종의 나무가 선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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