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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에서 관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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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98호 발행인 우인(최명현) 발간일 2024-09-01 신문면수 3면 카테고리 종합 서브카테고리 지혜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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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4-09-12 14:19 조회 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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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에서 관계로

식민지 근대화론 시대착오적 주장

관계의 적확한 표현은 ‘연기(緣起)’


8. 15일 광복절 행사가 파행으로 치달았습니다. 다시 친일파 논란과 식민지 근대화론이 부각되었네요. 어떤 역사적 사건은 내적요인과 외적요인으로 ‘편의상’ 구분합니다. 내인(內因)이나 외인(外因)의 하나만으로 사건이 전개되지는 않으니까요. 조선 망국의 원인에 대해 내인론은 조선이 내적인 발전이 없는 정체된 사회였다는 주장이고, 외인론은 일제의 침략입니다. 비록 조선이 정체된 사회라고 하여도 일제의 침략을 용인할 수 없지만, 조선이 서양이나 일본보다는 느리지만 나름의 근대화를 진행하고 있었다는 주장이 설득력있게 제기되고 있습니다. 식민사관은 식민통치를 통해 비로소 한국이 근대사회로 이행할 수 있었다는 주장에 근거해 식민통치를 어쩔 수 없는 과정이라는 주장을 넘어 미화하는 주장입니다.


식민지 근대화론은 1910년에서 1945년까지의 일제 강점기에 식민지 조선은 경제성장을 했다는 주장입니다. 특히 식민지 조선에서 일본에 쌀을 수출하였다는 주장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바로 이 주장을 예로 들어 식민지 근대화론을 비판할 수 있습니다. 조선에서 쌀을 수출할 수 있는 계층은 지주들로 이들은 쌀을 수출하여 화폐소득이 생기고 이를 공장건설이나 건물을 세우는 등 다양한 투자를 통해 막대한 이익을 챙겼습니다. 지주들은 보다 많은 이익을 얻기 위해 소작료를 높여 같은 조선인인 소작농을 수탈하였습니다. 말하자면 일본으로의 쌀 유출은 지주계층에게는 수출이고 다수의 농민에게는 수탈입니다. 


따라서 일제 강점기 지주나 자본가들은 일제에 협조하여 이득을 얻었기 때문에 친일지주나 매판자본가라고 규정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대다수 조선인들에게는 수탈이었던 것이죠. 전자에게는 식민지를 통해 근대화가 가능했다는 입장이라면 후자는 식민지 수탈론에 해당합니다. 동일한 일제 강점기를 계층에 따라 달리 본다는 점에서 사상과 학문의 자유라는 입장에서는 용인될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식민지 근대화론은 같은 시기에 독립운동에 나서 재산과 생명을 바친 항일 독립운동가들을 부정하는 꼴이 된다는 점입니다. 이 논리에 따르면 독립운동은 근대화를 방해하는 행위가 됩니다. 


아무리 학문과 사상의 자유라는 측면에서 양보한다 하더라도 일제의 식민통치는 강도가 내 집에 들어와 자기 소유라고 주장하고 그 집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마음대로 부려먹는 상황으로 비유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주장이 여전히 세력을 가지고 자신들의 주장을 펼치는 배경은 친일 청산에 실패한 것이 가장 큰 원인입니다. 식민지 근대화론에 대해 올바른 이해는 세계사에 대한 깊고 넓은 이해가 요구됩니다. 서구 열강이 약소국을 침략하여 식민지화하고 수탈하는 자신들의 행위를 미화하기 위한 수사로 근대화라는 주장을 내세웠습니다. 나아가 근대화는 서구화를 의미하는 것이지만, 서구문명이 가진 모순이 그대로 드러난 것이 1, 2차 세계대전이었고 이런 역사적 경험을 통해 서구적 근대화가 이상적인 근대화 모델로서는 폐기된 지 오래입니다. 식민지 근대화론은 서구식 근대화의 아류로서 시대착오적인 주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친일문제는 더 큰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일본이 가진 사상과 예술분야의 문화는 동아시아 문명권의 소중한 자산이고 한국이나 중국과 일정한 문화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서구 문명의 전통에 의지하여 전개된 근대 문명은 많은 문제점을 노출하고 있습니다. 근대에서 현대로의 사상적 전환을 보통 1968년에 있었던 68혁명으로 보고 있는데 과학의 발달에 의해 거대한 사상적 전환을 하고 있습니다. 그 상징적인 구호가 ‘존재에서 관계로’인데 ‘관계’를 다른 말로 치환한다면 과정이고 보다 적확한 개념은 연기(緣起)입니다. 한일 두 나라가 상호 협조하여 이러한 새로운 사조에 나름의 해답을 제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보다 철저한 친일 청산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식민통치를 미화하는 종속적이고 열등한 입장에서의 굴종적인 친일은 오히려 한국과 일본의 올바른 관계를 해친다는 점을 명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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