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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제관음보살_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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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92호 발행인 우인(최명현) 발간일 2024-03-01 신문면수 2면 카테고리 종합 서브카테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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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명 - 필자법명 록경 필자소속 - 필자호칭 정사 필자정보 - 리라이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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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4-03-08 15:45 조회 1,05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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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글: 록경 정사의 총지돋보기 (8회)

준제관음보살_상

창종을 두 달여 앞둔 1972년 10월 3일, 종조 원정 대성사께서는 준제관음상 조성을 시작하여 창종 이듬해인 1973년 1월 6일에 완성하셨다. 준제관음법은 종조님의 입교개종의 정신과 대서원, 총지종의 교화 정신을 담고 있다. 

준제관음법이란 준제관음보살의 진언으로 염송수행하는 법을 말한다. 이 법은 『대승장엄보왕 경』과 『현밀원통성불심요집』에 근거한 것이다. 종조께서는 고통에 허덕이는 일체중생을 구제하는 길은 오로지 밀교의 수행방편과 관세음보살의 진언 염송에 있다고 갈파하시고 창종이념과 교화방편을 거기에 두셨다.


『대승장엄보왕경』과 준제관음법으로 일체중생을 제도할 것을 강조하셨던 것이다. 『대승장엄보왕경』은 관세음보살의 육자진언을 설하고 있는 밀교경전이다. 이에 근거하여 종조께서는 관세음보살의 본심진언 육자대명왕진언 ‘옴마니반메훔’을 본존으로 모셨던 것이다. 이 육자진언을 본존으로 모시면서 여기에 덧붙여 종조께서는 관세음보살의 또 다른 모습인 준제관음보살을 중심진언으로 삼으셨다. 이 두 진언을 함께 지송해야 상승적 공덕이 있음을 깨달으셨던 것이다.


관세음보살은 세상을 교화하는데 있어서 중생의 근기에 맞추어 여러 가지 형체로 변화하여 나타나는데, 이를 ‘보문시현’이라 하며 대표적인 변화관음보살이 준제관음이다. 준제관음보살을 육자진언과 함께 중심의 궤롤 삼은 것은 『대승장엄보왕경』과 『현밀원통성불심요집』에 근거하였기 때문이다.


『현밀원통성불심요집』에서 육자진언과 준제보살의 진언을 다음과 같이 설하고 있다. 

“육자대명진언 108편을 염송하라! 진언은 ‘옴마니반메훔’이다. 만약 이 진언으로 머무는 곳마다 염송하면 무량한 제불보살들과 천룡팔부 신장들이 집합하고, 또한 무량삼매 법문을 갖추게 된다. 지니고 염송하는 지송인의 칠대 종족까지 모두 해탈을 얻게 되고, 뱃속에 있는 모든 기생충까지도 모두 보살위를 얻게 된다. 이런 사람은 나날이 육바라밀 원만공덕을 얻게 되고, 무진변재를 얻어 청정지를 얻게 되고, 그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기를 타인이 접촉하게 되어도 일체 모든 성냄의 독소를 여의어 보살위를 얻게 된다. 가령 사천하의 사람들을 모두 칠지 보살위를 얻게 한 저 모든 보살의 공덕이 육자주 1편을 염송한 공덕과 다를 바가 없다. 이 주는 관세음보살의 미묘한 본심이기 때문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이 육자대명주를 책으로 썼다면 그 책은 팔만 사천 법장을 써서 얻은 공덕과 다를 바가 없다. 만약 금은 보배로 여래의 불상을 미세한 먼지 수 만큼 만들었다 해도 이 육자 가운데 하나의 글자를 쓴 책의 공덕만 못하니라! 서로 필요하다.”고 하였다.


종조 대성사께서 관세음보살의 육자진언을 본존으로 모신 이유는 무엇일까? 다른 불보살들도 많이 계시는데 왜 관세음보살을 택한 것일까? 그에 대한 답은 창종배경과 입교개종의 정신에서 읽을 수 있다. 종조 원정 대성사께서 창종이념을 해방과 전쟁의 참상으로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하고 어려움과 도탄에 빠져있는 일체중생들을 제도하는 데 두었던 만큼 그에 상응한 불보살인 관세음보살을 본존으로 삼았던 것이다. 세간의 중생을 구원하는 분이 바로 관세음보살이므로 원정 대성사의 구국도생의 대비원에는 마땅히 관세음보살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는 것이었다. 특히, 관세음보살의 육자지언을 설하고 있는 『대승장엄보왕경』은 총지종의 소의경전인으로, 관세음보살이 총지종의 교의와 수행체계에 근간이 된 것이다.


그런데 관세음보살을 형상불로 모시지 않고 굳이 진언 다라니로 모신 이유가 무엇일까. 그리고 관세음보살의 본존은 진언다라니의 범자로 하면서 준제보살을 형상불로 한 뜻은 무엇일까. 그것은 밀교종단임을 표방하기 위한 원정 대성사의 사상과 정신에서 비롯된 것이다. 비로자나 불은 진리의 세계로 흔히 ‘이불(理佛)’이라고 표현한다. 진리의 세계는 유형무형이다. 당연히 형상으로 나타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우주삼라의 모습을 불상이 아닌 다른 상징적 형상을 모신다고 하여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부처님의 비밀스러운 진리의 말씀인 진언다라니를 모시는 것이 더욱 밀교적인 것이다. 진언다라니를 그대로 본존으로 모신 것은 마음에 상을 세우지 않고 오로지 마음의 깨달음, 진리를 세운다는 뜻이다. 특히 관세음보살의 육자진언 ‘옴마니반메훔’을 중심진언으로 지송하고 있는 종단의 입장에서는 진언 다라니의 범자 그대로 본존으로 모시는 것이 교의적으로 합당한 것이다. 

그리고 이미 관세음보살의 육자진언을 본존으로 모시고 있는 이상 두 개의 진언을 본존으로 삼을 수 없으므로 준제보살은 달리 상으로 모신 것이다. 총지종단에서 형상불은 이미 오래전부터 역사를 같이 해왔다. 단지 정착되지 않았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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