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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아론(無我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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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90호 발행인 우인(최명현) 발간일 2024-01-01 신문면수 3면 카테고리 종합 서브카테고리 지혜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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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4-01-07 14:43 조회 1,11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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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아론(無我論)

자아의 실재론에 대해 비실재론적 입장

연기와 같은 수평적 관계만이 공생 가능


북인도의 평원은 강가(Ganga)강이 흐르는 비옥한 농경지대입니다. 아리아족이 기원전 1,500년 경 서북인도로 침략해오고 기원전 500년경에는 강가강 하류까지 진출하게됩니다. 이 과정에서 유목민이던 아리아족은 점차 농경민으로 변화해가고 있었습니다. 유목민적 전통인 제의에서 산 짐승을 유혈(流血)의 희생물로 바치는 행위는 베다에 그대로 담겨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기원전 1,000년경 인도는 청동기에서 철기 시대로 진입하게 됩니다. 철제 농기구의 사용과 우경(牛耕)의 보급은 농업 생산력의 증대를 가져와 수많은 도시국가가 형성됩니다.

 

이러한 도시국가를 산스크리트어로 자나파다(janapads)라고 하는데 정복 전쟁을 통해 마하자나파다스(Mahajanapadas)로 재편됩니다. 이를 한역불경에서는 16대국(大國)이라고 하고, 여기에 부처님이 주로 머무시고 전법활동을 하셨던 나라로 코살라국이나 마가다국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자나파다는 그리스에서는 폴리스(polis)라고 하고 중국에서는 국()이라고 하였습니다. 인도에서는 마하자나파다스가 마우리아 왕조에 의해 통일이 되었고 아쇼카 왕에 의해 불교가 널리 전파됩니다. 그리스는 알렉산더 제국으로 통일되었고 중국은 진()에 의해 통일이 되었습니다. 흥미롭게도 기원전 8세기에서 기원전 2세기의 기간 동안 유라시아 대륙의 전역에서 비슷한 역사적 전개가 일어난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16대국이 성립하는 과정에서 사제 계급인 브라만을 대신하여 새로운 정치적 지도자로 크샤트리아(ksatrya)계급이 부상하고 경제적 발전에 따라 상공업에 종사하는 바이샤 계급의 역할도 확대됩니다. 따라서 제사장인 브라만 중심의 사회질서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고 새로운 종교운동이 전개됩니다. 비슷한 시기의 그리스와 중국에서도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는데, 인도는 그 변화가 상대적으로 종교에서 크게 나타난다는 점입니다. 베다의 제사중심에 대한 비판으로 출현한 것이 우빠니샤드입니다. 그 성립은 베다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통해서 이루어지는데 제의(祭儀)를 통해 신의 은총을 바라는 베다 중심의 전통적인 흐름과 수행을 중시하는 새로운 흐름으로 분화됩니다. 이 수행 중심의 새로운 종교개혁의 내용의 핵심단어가 슈라마나(Sramana)라고 합니다. 이를 한자로 음역(音譯)한 것이 사문(沙門)입니다.

 

슈라마나는 더 높거나 종교적인 목적을 위해 일하거나 수고하거나 노력하는 사람또는 구도자, 금욕 행위를 수행하는 사람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슈라마나 전통에 해당하는 것으로 현재까지 남아있는 것이 불교와 자이나교입니다. 이들은 상사라(saṃsāra, 탄생과 죽음의 순환)와 목샤(moksha, 그 순환으로부터의 해방)와 같은 개념을 인도의 다른 종교와도 공유하고 있지만 베다적 전통의 종교와는 커다란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스라마나 전통의 특징을 크게 세 가지를 든다면 다음과 같습니다. 결정론에서 자유의지로의 변화와 아힘사(ahimsa), 그리고 무아(無我)입니다. 신에 대한 제의를 통해 은총을 바라는 결정론에서 수행을 통해 궁극의 경지로 나아가려는 자유의지의 강조는 가장 중요한 변화입니다. 불해(不害) 또는 비폭력으로 옮겨지는 아힘사는 인류역사의 가장 큰 오점인 전쟁에 대한 가장 궁극적인 대안입니다. 그리고 자아(自我)의 실재론에 대해서 무아(無我)의 비실재론적 입장은 어쩌면 같은 슈라마나 전통을 공유하는 자이나교와도 다른 불교만의 독특한 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연기설(緣起說)은 모든 것으로부터 독립된 실체란 없다는 주장인데 이것과 짝을 이루고 있는 것이 무아론(無我論)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다른 생명을 해치는 것은 결국 자신의 몸에 상처를 내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계속되는 상태에서 다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자아를 인정하게 되면 자기중심의 기준이 세워질 수밖에 없고 갈등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신과 인간의 수직적 관계는 갈등을 종식시킬 수가 없습니다. 연기와 같은 수평적 관계만이 공생(共生)을 가능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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