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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게 바라지 않고, 늘 현재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불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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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21호 발행인 인선(강재훈) 발간일 2018-03-30 신문면수 7면 카테고리 법천사 신행체험 서브카테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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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18-06-20 09:58 조회 2,09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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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게 바라지 않고, 늘 현재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불공한다
천수심(김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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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수심(김정숙)


어머니를 따라 입교하다


아주 어릴 때, 어머니와 함께 사원에 갔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어머니는 나보다 어린 동생을 등에 받쳐 업고 다른 한 손으론 나의 손을 꼭 잡으시고 사원에 다니셨다. 지금도 인상 깊게 남아 있는 것이 있다. 종조님께서 죽비를 치던 모습과 소리다. 어린 마음에 저렇게 소리가 크게 나도록 강하게 치면 손이 아프지 않을까하고 걱정했던 것도 기억난다. 또 그 당시는 책이 따로 있었던 것도 아니고 냉장고만한 크기의 아주 큰 종이에 직접 반야심경이나 문구를 적어 걸어놓고 읽었다. 보살님께서 긴 대나무 작대기로 그 종이 위의 글을 하나하나 짚어주셨는데, 그 덕에 글을 아주 빨리 깨우쳤다.

국민학교 입학 전에 한글을 아는 것이 아주 놀랄만한 일이던 시절이었는데, 나와 오빠들이 모두 부처님의 말씀으로 한글을 일찍 깨우친 탓에 동네에서는 일찍이 수재나 천재로 소문이 났었다. 그래서 소문이 무색하지 않도록 오빠는 열심히 해서 서울대 수석 합격을 했고, 동생은 서울대 공대에 입학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어머니가 학업과 관련해서 불공드리고 나면 안 되는 일이 없다는 것을 나는 아주 어릴 적부터 인식하고 있었던 것 같다.

점점 자라면서 사원에 나오는 것을 소홀히 했다. 큰 행사가 있을 때만 얼굴만 잠깐 비추는 정도로 지냈다. 학교, 직장을 다니는 동안에도, 결혼을 하고 나서도 사원에는 제대로 나가지 않았다. 첫 아이가 다섯 살 쯤 되었을 때 다시 총지종을 찾았다. 그런데 사원을 다니면서 나름대로 건전하게 신앙생활을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불만이 생겼다. 다른 사람들은 박수 칠 일이 많이 생기는데, 나에겐 왜 그런 공덕이 일어나지 않는가 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것이 참 불만스러워 어느 날은 어머니에게 투정을 부렸다. 그랬더니 어머니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래서 네가 원하는 게 뭔데? 왜 박수를 받고 싶은데?”질문을 듣고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나는 절실하게 바라는 것이 없었다. 어떤 것을 분명히 원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떤 것을 원하고 있는지 막상 떠오르지 않았다.

그런 나에게 어머니는“아무 것도 없는 게 가장 좋은 것이야. 건강을 기원하는 것은 아픈 것을 전제로 하고, 부자를 바라는 것은 가난을 전제로 하는 거란다.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상태라고 생각한다.”고 말씀하셨다. 어머니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느껴졌지만 그래도 어딘가 나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주는 답은 아니었다.



불공은 공덕을 차곡차곡 쌓는 것


내가 수긍하지 않자 어머니는 웃으며 다시 나를 타일러셨다. “그럼 이렇게 생각하자. 지금 네가 하는 불공은 예금, 적금 같은 거야. 당장은 쓸 곳이 없지만 차곡차곡 공덕을 쌓아 두는 거지. 나중에 네가 정말 간절하게 바라는 것이 있을 때 사용하면 되잖니. 어때?” 나는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이며 환하게 웃었다.

큰 애가 회계사 시험을 준비하겠다고 했다. 나의 어머니는 “이제 마지막 봉사라 생각하며 불공을 할게”라고 말씀 하셨고 아이의 시험 결과를 보지 못하고 어머니는 돌아가셨다. 회계사 시험은 최소 3년 이상 준비해야한다고 했는데, 큰 애는 어찌 된 일인지 공부를 시작하고 2년 만에 합격을 했다. 아마 어머니가 쌓아둔 공덕 예금을 나의 아들에게 몽땅 주시고 가신게 아닌가 생각된다.

하지만 회계사의 삶은 고단했다. 아들은 아침 일찍 출근하고 늦은 밤이나 새벽에 퇴근했다. 집은 분당이고 회사는 강남 역삼동이라 새벽에 퇴근 할 때면 총알택시를 타야해서 굉장히 위험했다.

그렇게 밤낮 없는 생활이 1년 정도 지나고, 아들은 “공부를 더 해서 외국으로 나가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외국으로 가려면 경력이 5년 이상은 되어야 했고, 무엇보다 공부할 시간이 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인사과에서 아들에게 연락이 왔다고 했다. 불안한 일이 있으면 아들은 항상 나에게 털어놓곤 했는데, 그날도 내게 얘기했다.“엄마, 인사과에서 연락이 왔는데 무슨 일 일까? 난 잘못한 게 없는데…” 라고 걱정하며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너무 걱정하지 마. 별 일 아닐 거야.”라고 아들을 달래고 곧장 불공을 했다.

나도 걱정이 되어 불공을 하고 있는데, 어쩐 일인지 염주를 돌리고 염송을 하는 순간, 알 수 없는 환희심과 편안함이 몰려왔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불공을 끝내고 그날 저녁 아들에게 뜻밖의 연락이 왔다. 기쁜 소식이었다. 정말 갑작스레 아들이 프랑스로 발령이 난 것이다. 원래 2년차는 해외발령이 안 되는데 프랑스어를 할 줄 아는 이유만으로 발탁되었다고 했다. 아들은 외고를 다니며 프랑스어를 전공했었다.

꿈만 같은 아들의 프랑스 생활 2년 정도의 근무를 했다. 현재는 결혼하여 골드만삭스에 입사하여 홍콩에 거주 중이다.



현재의 감사하는 마음


아들의 인생이 어느 순간부터 신기할 정도로 잘 풀리고 있다. 나는 여전히 어머니의 말씀을 믿는다. 어머니와 내가 오랫동안 쌓아온 예금과 그에 붙은 이자까지 전부 손자가 사용한 것이 아닐까. 지금도 불공 할 때 무언가를 크게 바라지는 않는다. 오직 현재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그냥 열심히 불공한다. 나를 위해,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차곡차곡 쌓아두고 있다. 언젠가 내가 필요할 때, 그리고 꼭 필요한 곳에 쓸 수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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