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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심은 존재가능하며 성취로연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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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132호 발행인 원송[서진업] 발간일 2010-11-05 신문면수 4면 카테고리 교리/건강 서브카테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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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미디어커넷 입력일시 18-06-23 08:27 조회 2,86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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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글: 총지화 스승님 달라이라마 친견기 (2회)

“보리심은 존재가능하며 성취로연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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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지화 기로스승이 우리나라 스님들과 함께 법문을 듣고 있다.


보리심의 보리라는 말은 티베트어로 ‘장춥’입니다. ‘장’은 허물을 모두 정 화해청정한상태입니다. ‘춥’은 대상 을 모두 알고 있는 지혜를 말합니다.

이러한 모든 허물이 정화돼 깨끗해 지는 근간은 ‘장’ 이 2가지 청정함을 의미합니다.

일시적이고 우연한 객진 을 대 치법으로 청정해진 객진청정 의 관건은 바로 공성입니다. 공성은 궁극의 실상을 의미합니다. 공성을 깨 닫지 못하면 번뇌에 휩쓸려 끊임없는 고통을 야기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 에 궁극의 실상인 공성에 밝지 못하면 계속 윤회를 하는 것이고, 궁극의 실상 을 밝히면 윤회를 끊게 되는 것입니다.

무명은 계속적인 고통을 가져옵니다. 이것은 근본적으로 자성청정이 존재하 기 때문에 객진을 대치로 다스려서 객 진청정에 이를 수 있습니다. 이것은 무 엇보다 공에 대한 지견을 거듭 거듭 사유한다면 열반을 반드시 이룰 수 있 다고 확신할 수 있습니다. 제법이 자성 청정 인데 이것이 국한된 대 상은 무엇일까요?

여기서 말하는 객진청정과 자성청정 읍.생명체에 국한된;의식을 저나존재 에게 한정됩니다.

근본적으로 마음속 식 이라는 것 은 대상을 요량하고 인지하는 성품을 가자고 있습니다.

우리가 근본적으로 무지한데 무명의 반대인 실상 을 확연히 요달할 때 본래부터 우리가 자성광명을 지니 고 있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용수 보 살의 저서〈법성계찬탄〉에는 “윤회의 인 을 소멸한 것이 열반이다. 법신 또한 그것이다”라고 설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 마음을 다스리지 못함 으로 인해 업을 쌓고 윤회를 하게 됨 을 말합니다. 윤회하게 하는 번뇌의 뿌 리인 무명에 물든 의식 상태입니다. 그 렇게 윤회의 바탕이 되는 의식 상태에 서 허물이 대치법으로 정화되면 열반 입니다. 실제를 바탕으로 하는 방편으 로 보리심이 뒷받침 됐을 때 번뇌의 습기도 없앨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한 비유로서 용수 보살은 “불로 옷을 태워도 더러움은 사라지지 않네. 마음의 객진을 대치법으로 청정 히 해도 근본 마음이 없어지지 않는 것과 같다”고 설합니다. 마음의 허물들

을 대치법으로 썼을 때 대상을 요량하 고 광명의 자성을 기진 마음은 없어지 지 않는다는 의미가 됩니다.

우리의 마음이 지닌 또다른 특성은 물질적으로 바깥의 육체를 단련했을 때의 특징과 달리, 마음에 습 을 들 였을 때 습이 견고해지고 무궁무진하 게 증장될 수 있는 것이 내면의 마음 이 지닌 공적 함입니다. 이렇게 해서 궁극의 일체 종지까지 도달할 수 가 있는 것입니다. 현재는 부족하지만 많은 허물이 있는 의식 상태가 향상 되어 궁극의 성불을 이룰 수 있는 것 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춥’은 객진이 없어 일체의 대상을 알아차리고 요량하는 상태입니다. 우 리 마음은 본래 대상을 요별하고 인지 하는 성품을 지니고 있습니다. 지금 현

재의 마음 상태는 대상을 인식하지만 현재 마음은 부분적인 것입니다. 부처 님처럼 모든 대상을 인식하지 못합니 다. 그렇다면 이러한 것은 소지  즉 일체 대상을 알 수 있는데, 실제 그 렇지 못한 것은 소지장 의 일 체 모든 것을 알지 못하게 하는 장애 가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무명을 없앤다면 우리에 떠매 무시이래로. 지니고 있었던 모든 것 트을. 알 수외는 공덕들은 기존에,있는 것이기에 조건을 따로 가질 필요가 없 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닝마의〈마하무 드라〉에서는 ‘본래 갖추었으니 모두 부처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앞서 ‘장춥’ 이라는 보리심은 존재 가능하고 성취할 수 있다는 것을 반드 시 알아야 합디다. 깨달음을 구하는 마 음이 일어나기 위함입니다. 일체 종지 를 깨닫기 위해서는 지혜가 필요합니 다. 지혜가 실질적으로 소지장을 없애 는 대치법이 되기 위해서는 보리심이 뒷받침이 되어야지만 비로소 공성이 소지장을 없애게 됩니다.

어떤 행위를 할 때 그 이전의 동기 와 목적이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인지, 더 나아가서 중생 전체를 이익되게 하 기 위한 것인지 목적에 따라 행동은 같더라도 결과는 다릅니다. 처음 자신 의 동기가 옳다면 그에 맞는 선업을 받을 것이고 더 나아가서 개인의 해탈 이 됩니다.

그러나 이것 또한 한 편에. 치우친 것입니다. 모든 중생을 위해 성불하기 위한 행동으로 선업을 행한다면 그 과  는 무량합니다. 즉 어떠한 동기를 가지고 있는가에 따라 일시적인 행복 을 준 것 뿐만 아니라 모든 이들을 행 복으로 이끌겠다는 생각으로 선을 행 한다면 아주 다양한 결과물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보리심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굉 장히 큰 이익을 공감할 수 있습니다. 공성의 지혜가 소지장을 끊어 일체 종 지를 끊는 대치법이 될 때 진정한‘성, 불로 가는 궁극의 원인이 됩디다.

줄리심 을 내어 '단순히 해탈 을 원한다면 번뇌장 을 베는 것은 가능하지만 보리심을 지니고 있 지 않기 때문에 소지장을 제거할 수 뉴 없습니다. 공성의 지혜검은 소지장을 드 없앨 수 있습니다.

승의보리심과 진제보리심 은 반드시 병행 돼야 합니다. 공성 의 지혜를 수행할수록 모든 중생을 구 제할 수 있다는 생각이 견고해집니다. 자비심을 바탕으로 한 일체 중생의 구 제를 원하는 보리심에 공성의 지혜는 힘이 되어 증장시킴으로써 공성의 지 혜와 보리심의 방편은 쌍수 가 되 어 병행돼야 합니다. 백조가 하늘을 날 려면 두 날개를 펼쳐야 하듯 보살이 부 처가 되려면 보리심과 스승의 힘과 공 성을 깨우친 지혜의 날개를 펼쳐 선한 공덕의 발원으로 공덕을 성취합니다.

〈다음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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