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행과 수행
페이지 정보
호수 224호 발행인 인선(강재훈) 발간일 2018-06-30 신문면수 4면 카테고리 지혜 서브카테고리 법상인 전수의 總持法藏페이지 정보
필자명 - 필자법명 법상인 필자소속 - 필자호칭 - 필자정보 - 리라이터 -페이지 정보
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18-06-20 13:08 조회 3,693회본문
오늘은 부처님이 어떤 분이신지에 대해 먼저 알아보겠습니다. 부처님은 과연 어떤 분일까요? 우리가 보통 사원에 가고, 법당에 가면 여러 형상 의 부처님들이 다양하게 모셔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제각각에는 저마다의 이름도 있 습니다. 과연 부처님은 어떤 삶을 살아왔을까요? 먼저 역사적 부처님이신 석가모니 부처에 대해 간단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석가모니의 삶은 너 무나 유명하기 때문에 간략하게 짚고 넘어가겠 습니다. 석가모니가 태어난 곳은 지금의 네팔에 속하는 카필라국이라는 도시국가였습니다. 도 시국가라는 말처럼, 도시의 개념과 국가의 개념 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곳이었습니다. 당시 인도 에는 대략 16개 정도의 도시국가가 공존하고 있 었는데 카필라국도 그 중의 하나였습니다. 부처 님이 지낸 시대의 도시국가에는 계급제도도 있 고 세습제도도 있었습니다. 최상의 가문에서 태 어난 부처님은 왕위를 세습 받을 수 있는 지위에 속했고 최고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환경에 있었 습니다.
실제로도 인도고전철학이라는 종교사 상뿐 아니라 의학, 인류학, 논리학, 수학, 무예 등 각양각색의 분야를 심도 있게 습득하고 공부하 였습니다. 출가 전 고타마 싯다르타라는 이름으 로 살아왔던 부처님은 결혼을 하여 아들도 있었 는데 나후라라는 이름을 가진 아들은 부처님의 10대 제자 중 한명이기도 합니다. 남부럽지 않은 왕위와 가정을 포기하고 29살 에 종교의 길을 걷게 되는 부처님을 보면 그게 가 능할까, 하는 의구심이 들만도 합니다. 가정을 가 진 가장이 출가를 한다는 게 지금으로서는 이해 하기 힘든 대목이기 때문입니다.
당시 인도의 전 반적인 사회적 배경을 살펴보면, 사기(四期) 생 활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네 가지의 시기를 일컫는데, 첫번째는 ‘학습 기’라고 하여 부모와 함께 살면서 교육을 받는 데 집중하는 시기입니다. 두번째는 ‘가주기’라고 하여 결혼을 한 다음 부모를 모시는 한편 자녀를 낳아 기르며 사회적 의무를 다하는 시기입니다. 세번째는 ‘임서기’로서 자식이 어느 정도 크면, 가정을 떠나 출가하는 시기입니다. 마지막 네번 째는 ‘유랑기’로 출가를 한 후 스승을 찾아다니 며 수행을 하는 시기입니다. 출가는 보편적인 현 상으로, 부부가 함께 출가를 하는 경우도 많았다 고 합니다. 실질적으로도 많은 출가생들이 부처님처럼 가정이 있고 자식이 있었습니다.
출가 후에는 다 시 사회에 나갈 수도 있었고, 다시 가정으로 돌아 올 수도 있었습니다. 한번 출가한다고 해서 영원 한 출가생이었던 것만은 아니었던 것입니다. 언 제든지 자유롭게 출가를 했다가 다시 자신이 속 했던 자리로 돌아오는 것이 당시의 흔한 생활이 었습니다. 부처님은 출가를 하며 여러 유명한 라마승들 을 찾아다니며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다양한 종 교의 수행을 이미 경험한 바가 있는 라마승들로 부터 받은 배움을 토대로 실천을 하며 지냈습니 다. 이처럼 부처님이 처음부터 새로운 종교를 만 들어낸 건 아닙니다. 여러 종교의 스승들을 겪으 며 가르침을 배우고 실천을 해보고 또 수행을 하 다가 ‘이건 아닌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면 또 다 른 스승을 찾아가는 식으로 실천수행을 6년 정도 지속했습니다.
종국에는 고행과 수행이 같은 것 만은 아니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강에 서 목욕을 하고 지나가는 행인에게 우유죽을 얻 어먹고 힘을 차려 명상을 한 후 깨달음을 얻은 당 시 부처님의 나이는 35세였습니다. 오늘날에도 많은 보살님들이, 고행이 바로 수 행이고, 수행이 바로 고행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심심찮게 볼 수 있는데 이는 잘못된 생각입니다. 부처님이 고행을 겪은 것은 맞지만, 그것으로 인 해 깨달음을 얻은 것은 아닙니다. 부처님이 깨달은 후 말씀하신 것 중 하나가 ‘불 고불락’입니다. 너무 자기 자신을 괴롭히는 것도 옳지 않고, 너무 향락에 젖어 몸을 안일하게 하 는 것도 멀리하라는 의미입니다.
고행을 하면, 그 게 바로 수행이고 고행을 해야 깨달음을 얻는다 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합니다. 깨달음을 얻은 후 석가모니 부처님이 되었습 니다. 고타마 싯다르타가 출가 후의 깨달음을 얻 어 부처님이 된 것입니다. 어느 날, 한 보살님이 불공하다가 힘이 너무 들 어서 더 이상 하지 못하겠다며 경전과 염주를 반 납하고 집으로 가버린 일이 있었는데 바로 그 다 음날 그 보살님이 경전과 염주를 돌려달라고 하 여 불공을 다시 시작했답니다. 마음이 왜 그렇게 또 바뀌었냐고 묻자, 수행이 너무 힘이 들고 고통 스러워서 그만두고 싶어서 그만두었지만, 그날 밤 꿈을 꾸었다고 했습니다. 꿈속에서 꽁꽁 언 얼 음벽을 만났는데, 아무리 얼음을 깨려고 용을 써 도 잘 깨지지 않았답니다.
잠에서 깨어난 후, 만 약 업이 얇았다면, 손으로만 살짝 쳐도 살얼음이 갈라지듯 깨졌을 텐데, 업이 너무나 두꺼우니 이 렇게 꽁꽁 언 얼음벽처럼 아무리 깨려고 노력해 도 잘 되지 않았구나, 하는 깨달음이 들었더랍니 다. 정말이지 아주 적절한 비유의 꿈이었습니다. 업이라는 것은 교묘하고 두꺼운 성질이 있어 서, 업에 가려 있으면 바른 길로 가지 못하고 엉 뚱한 길로 빠지면서도 잘못된 그 길이 맞다는 생 각을 하게 되기 마련입니다. 주변사람들이 만류 를 하고 조언을 해주어도 귀에 들리지 않습니다. 잔소리가 심하고 말도 심하게 하고 말썽을 하도 많이 피우는 각자님을 둔 한 보살님은 자신이 마 음을 비우고 열심히 불공을 하는데도 각자님의 믿음이 없어서인지 어떤 변화도 없었다며 낙심 하고 있었습니다.
가만 생각해보니 한쪽이 아무 리 예쁘다, 예쁘다 한들 상대에게 그럴 마음이 하 나도 없다면 이걸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 지에 대 해 질문이 생깁니다. 무작정 참아야 하는 게 능사 인가, 하는 딜레마에 맞닥뜨린 것입니다. 업이 두 텁다면, 어쨌든 그 사람이 스스로 자각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도 한 가지 방법입니다. 짐승이 새끼 를 낳은 직후의 광경을 떠올려봅시다. 세상에 갓 나온 새끼는 처음에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고 있 습니다. 이럴 때 어미는 억지로 눈을 뜨게 하는가 요? 기다리면 됩니다. 적당한 시간이 지나면 자 연스레 눈을 뜰 때가 오는 겁니다. 마찬가지로 자 신의 업이 소멸되는 것 역시 기다림의 미학도 필 요한 법입니다. 남이 나를 힘들게 한다는 것은, 내가 갚을 빚 이 많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식도, 남편도, 나 를 힘들게 한다는 것은 내가 그들에게 갚을 빚 이 있어서 그렇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빚을 받 아야 하는 사람이 상대에게 무한정 잘해줄 수만 있겠습니까? 서로의 속을 썩어가면서 그런 와중 에 빚의 존재를 인지하고 또 갚아나가는 게 아 닐까요? 물론 수행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업을 소멸하 는 것도 사실은 여러 고통이 왔다가 사라지고, 또 왔다가 사라지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고통이 왔 을 때 과연 우리는 어떻게 대처를 하는 게 좋을까 요? 고통을 받으면서 흉을 보고, 화를 내고, 성질 을 내기보다는 그 고통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시간을 들여 지켜보는 것은 어떨까요? 이는 빚을 갚을 수 있는 소중한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입니다.
불공을 하고 깨 달음을 얻을 때까지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렇 다고 무조건적인 고행이 해결법은 아닙니다. 얼 음을 녹이는 시간이 필요한 것처럼 나 자신을 돌 아보고 마음을 비우는 시간도 필요합니다. 이는 업을 짓는 것은 쉽지만, 소멸시키는 것은 힘든 이 유 중의 하나이기도 합니다. 오늘은 부처님의 행 적을 따라가면서 고행과 수행이 무엇인지에 대 해 짚어보았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보살님들이 지혜로운 수행의 길을 걷기를 서원합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