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성은 석굴암 창건자 겸 조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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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98호 발행인 발간일 2008-01-01 신문면수 9면 카테고리 종합 / 상식 서브카테고리 -페이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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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0-02-16 13:32 조회 3,446회본문
손연칠 동국대 교수 ‘문화사학’ 논문
석굴암의 창건자인 통일신라시대 김대성은 실제로 석굴암의 조각가이기도 했다는 주장이 나왔 다. 손연칠 동국대 미술학과 교수 는 최근 불교미술사학자인 황수영 박사 구순 송축 논총으로 발간된 ‘문화사학’ (한국문화사학회) 제27 호에 실린 논문 ‘석굴암 조형의 신 연구’ 에서 이 같이 주장했다.
손 교수는 논문에서 “지금까지 석굴암 관련 논문들을 살펴보면 김 대성은 높은 안목을 지닌 예술가로 서 석굴암을 창건함과 동시에 그 기획과 감독을 했다는 점만 부각돼 왔으며 결과적으로 석굴암 조각가 는 유령화돼 버렸다”느 지적했다.
그는 그러나 삼국유사의 불국사, 석굴암 관련 기록을 들어 김대성이 석굴암의 기획과 디자인, 조각 및 건축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를 칙 접 담당한 당사자라고 주장했다. 삼국유사 중 “(김대성이) 불상을 많이 만들어 길러준 노고를 갚았 다”라는 구절이나 “대성이 석불을 조각하면서 큰 돌 하나를 다듬어 감실 덮개를 만드는데…” 등의 구 절에서 조각가로서의 김대성의 역 할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또 “김대성이 죽자 나라에서 완 성하였다”라는 부분에도 주목해 “김대성 사후에 공사가 중단될 정 도라면 감독자의 부재가 아니라 조 각가의 부재였을 가능성이 더 크 다”고 말했다. 손 교수는 “그 당시 에 활동했던 미술가들이 삼국유사 와 삼국사기를 통해 상세하게 기록 돼 있으나 석굴암의 경우 김대성 외에 다른 조각가의 이름이 없다” 고 말했다.
그는 이와 함께 석굴암 전실에 있는 조각상들의 양식과 기 법이 서로 다른 점도 석굴암이 김 대성의 손으로 조각됐다는 점을 뒷 받침한다고 주장했다.
석굴암은 본존불이 있는 주실에서부터 시작돼 전실로 나오는 순서로 축조됐는데 전실 작업 당시 에는 김대성이 일흔의 고령이 돼 점차 기법이 미숙해진 데다 김대성 의 사망 후에 다른 사람이 작업을 마무리하면서 필연적으로 차이가 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는 전실 내 팔부중상을 양식과 기법에 따라 다섯 유 형으로 나누고 “전실에서만 나타나 는 이 다섯 유형의 차이점은 김대 성이 조각을 하던 중에 죽음에 이르게 된 데 따른 사후의 혼돈 상황 을 여실히 드러내주는 매우 중요한 현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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