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총지종

총지신문 아카이브

불교총지종은 ‘불교의 생활화, 생활의 불교화’를 표방하고 자리이타의 대승불교 정신을 일상에서 실천하는 생활불교 종단입니다.

하나의 업을 녹이기 위해서는 그만한 노력이 필요하다

페이지 정보

호수 223호 발행인 인선(강재훈) 발간일 2018-05-30 신문면수 7면 카테고리 밀행사 탐방 서브카테고리 -

페이지 정보

필자명 박설라 필자법명 - 필자소속 - 필자호칭 - 필자정보 리라이팅=박설라 리라이터 -

페이지 정보

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18-06-20 12:21 조회 2,970회

본문

하나의 업을 녹이기 위해서는 그만한 노력이 필요하다
허순자 교도

646c56014f9cdbe65056995a0b095389_1529464887_4394.jpg
허순자 교도


저와 총지종의 만남은 35년 전으로 거 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서울에 살며 사 업을 하고 있었는데, 어쩐 일인지 사업 이 자꾸만 기우는 중이었습니다. 제 모 습을 본 언니가 하얀색 염주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저는 그런 것 필요 없다며 단박에 거절했습니다. 불상도 아닌 이상한 액자 앞에서 염 주를 돌리고, 해도 뜨지 않은 새벽에 절 에 나가고, 일요일이면 언니의 그림자 도 볼 수 없었으니까요. 언니가 재차 염 주를 권했고, 마지못한 저는 염주를 받 아들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하얀 염주를 쥐는 순간, 눈물이 하염없이 흘 렀습니다. 눈물이 나는 것은 처음뿐만 이 아니었습니다. 그 후로도 염주를 잡 을 때마다 눈물샘이 터졌습니다. 시간이 지나도 사업은 회복되지 않아 여기 밀양으로 내려 올 수밖에 없었습 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언니와 함께 절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언니는 날 이 좋든, 궂든 새벽 네 시만 되면 저를 데 리러 왔습니다. 그 후로 저는 크고 작은 부처님의 가피를 받았습니다. 그 중 가 장 큰 것은 바로, 저희 아들의 공부입니 다. 저희 집안 친척 아이들은 모두 괜찮은 성적으로 좋은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대학교 3학년만 되 면 하나같이 질풍노도의 길에 빠져들었 습니다. 어쨌든 대학 졸업은 모두 무탈 하게 하긴 했으나 그간의 과정은 애끓 음 그 자체였습니다. 이제는 제 아들 차 례가 왔습니다. 

아들 역시 대학 진학까 지는 나쁘지 않게 했습니다. 3학년이 다 가오자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이건 업이라는 확신이 들었고, 이 업을 소멸하기 위해 무슨 일이든지 해야겠다는 각오가 섰습 니다. 새벽불공, 아침불공, 저녁불공 모 두 다 해보았지만 이걸로는 충분치 않 을 것 같았습니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 했습니다. 아들하고 똑같이 공부를 하기로 결심 했습니다. 아들이 학교에 있는 시간동 안 나는 서원당에서 아들의 공부 시간 에 맞추어 불공을 했습니다. 

어쩐 일인 지 가족이나 주위 사람에게 말을 하면, 이 정성과 불공 공덕이 사라지고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될 것만 같아 입 한번 벙 긋하지 않고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 처럼 불공에 몰두했습니다. 아들이 대학을 졸업하는 그 순간까지 하루도 거르지 않고 나 자신과의 약속 을 지키며 불공했습니다. 그렇게 무사 히 졸업의 순간이 다가 올 때쯤 아들이 대학원에 진학하고 싶다는 것이었습니 다. 아들의 공부 의지가 기쁘면서도 겁 이 났습니다. 아들이 대학원 공부를 하 는 동안 저 역시도 고생을 해야 함이 불 보듯 뻔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한편 으로는, ‘아직 우리 집안의 업 소멸이 멀 었구나. 내가 그것을 끝까지 해내고 말 아야겠다.’ 라는 오기가 생겼습니다. 그 렇게 아들과 함께 5년간을 더 투자했고, 아들은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공학박 사학위라는 게 아무리 빨라도, 7년에서 8년은 족히 걸리기 마련인데 아들은 5년 만에 학위를 따냈으니 모두들 놀랍다고 혀를 내둘렀습니다. 하지만 그 5년이 제 게는 무척이나 길게 느껴졌습니다. 가 족은 물론이거니와 주변 사람들 모두 제가 종교에 미친 것 같다면서 무슨 일 이냐고 붙들고 물을 때도 많았습니다. 

제가 말 한마디 하지 않고 거의 매일을 서원당에 앉아 염주만 돌렸으니까요. 제게 총지종을 소개시켜 준 언니마저도 정신 좀 차려야겠다고 말할 정도였습니 다. 그러나 저는 간절했습니다. 한 가지 업을 소멸하겠다는 의지가 강했던 까닭 입니다. 총지종의 대중 불공시간은 보통 불공 시간과는 다른 위력을 지니고 있습니 다. 일체교도, 제재난, 소구여의, 영일체 가 들어가는 만큼 총지종 전 교도가 모 두 공감하고, 마음이 모아지는 시간으 로 가장 큰 불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렇기에 이 시간을 나의 개인적인 시간 보다 더 값지게 여기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는 집안의 업을 소멸시키는 기간 동안 대중 불공시간을 칼같이 지킨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 때만큼은 우리 아들만 잘되라고 하는 불공은 아니었습니다. 

여러 사람 과 함께 교감하고 화합하며, 가장 큰 불 공을 동참했다는 데에 개인적인 치유도 많이 받았습니다. 업의 소멸에는 각자 님의 도움도 컸습니다. 영문을 모르던 때였음에도 불구하고 가타부타 말없이 저를 서원당까지 태워다주고, 또 데리 러 오는 일을 기꺼이 해주었습니다. 아 들의 학업에 마침표가 찍히고, 사람들 이 제 사연과 사정을 알게 될 즈음, 모든 이가 저를 대단하다고 추켜세웠지만 저 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가 대 단한 게 아니라, 하나의 업을 녹이기 위 해서는 응당 그만한 노력과 정성이 필 요한 것 아니겠습니까. 

집안에 안 좋은 일이 반복되어 일어나 는 상황에 놓여있으신가요? 저의 경험 이 보살님들께 용기를 드릴 수 있었으 면 좋겠습니다. 업을 소멸시키는 과정 은 쉽지 않지만, 업이 멸하고 나면 한결 더 편안하고 밝은 내일을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첨부파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