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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생의 마음과 밀교수행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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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35호 발행인 인선(강재훈) 발간일 2019-06-01 신문면수 8면 카테고리 밀교 서브카테고리 밀교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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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명 - 필자법명 법경 필자소속 법천사 필자호칭 주교 필자정보 법경 정사 (밀교연구소장/법천사 주교/ 철학박사) 리라이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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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0-02-11 19:11 조회 5,04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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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글: 『밀교문화와 생활』 (28회)

중생의 마음과 밀교수행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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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경 정사 (밀교연구소장/법천사 주교/ 철학박사)


명심 (明心)


명심 (明心)이란 무엇인가? 밝은 마음 이다. 밝음(明)은 지혜를 뜻한다. 따라 서 명심은 지혜를 지닌 마음이다.

수행하는 목적은 무엇인가? 암심 (暗 心)을 버리고 명심 (明心)을 얻는 데 있 다. 그러한 과정을 전식득지 (轉識得智) 라 부르고, 그러한 상태와 경지를 해 탈 • 열반이라 한다. 즉 깨달음이나 지 혜의 증득을 의미한다. 암심 (暗心)의 반대어가 곧 명심 (明心)이다. 암심은 지난 호에서도 살펴보았듯이 지혜가 없는 어두운 마음이다.

지혜를 불교에서는 반야(般苦, prajfia) 나 명 (明, vidya)이라고 한다. 반야(prajna)는 제법 (諸法)의 실상(實 相)을 아는 것이고, 비드야(vidya)는 제법의 존재법칙성을 아는 것이다. 즉 연기의 진리를 아는 것이 명(明)이다. 그 진리는 의심할 바가 없고 틀림없는 법이다. [대일경소]에서 말하기를, ‘무엇 이 밝은 마음(明心)인가? 의심할 것 없 는 법에서 의심 없이 닦는 것을 말한다. 이른바 틀림없고 의심할 바 없는 법인 (法印)의 법에서 그가 듣는 대로 믿는 것이다. 이것이 밝은 마음임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여기에 지나침과 미치지 못함이 있어서 도(道)를 장애하는 마음 이 있다. 문득 중혜에 처하는 것 이 장애를 다스리는 방법이다.’라고 하 였다.

즉 중도에 머무는 것이 지혜 있는 마 음이고 도에 이르는 삶이다. 중도적인 삶이 암심 (暗心)을 버리는 것이며 명심 (明心)을 얻는 길이다. 중도는 양 극단 에 치우치지 않으며 양 극단에서 벗어 남이다. 다시 말해서 양 극단을 섭수하 는 것을 뜻한다. 미운 사람, 좋은 사람 을 구분하지 않고 차별하지 않으며 모 두를 받아들이고 거둬들이는 마음이 다. 따라서 중도(中道)는 정도(正道)이며 자비심 (慈悲心)이다. 즉 이타적인 삶이 중도이며 정도이다.



적취심(積緊心)


중생의 좋지 않은 마음 가운데 하나가 고집을 부리는 마음이다. 고집부리는 마음을 적취심 (積衆心) 이라 한다. [대일 경소]에서 이르기를, ‘쌓아 모으는 것을 적취심이라 한다. 무엇을 쌓아 놓는다 는 말인가? 무량한 것을 하나라고 고집 하는 것을 말한다’고 하였다. 즉 자기가 알고 자기가 배운 것이 전부라고 착각 하고 자기 것만이 옳다고 하는 것이다. 고집부리는 것을 아집 (我執) 이 아주 세 다고 하는데, 법에 대해 고집을 부리는 것을 법집 (法執)이라 한다. 자기 의견 이나 주장이 강하여 합리적이고 이성 적으로 판단하지 못한다. 즉 적취심이 란 한 가지 법에 빠져 그것만이 옳다고 하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대화를 하기 곤란하고 소통하기 힘든 사람이다. 우 리 주변에 이런 사람들이 많다.

적취심을 [대일경소]에서 이렇게 설명 하고 있다. ‘이른바 이 사람은 한 가지 것에 신해 (信解)를 일으키고 나서 다시 여러 가지 다른 법을 들을지라도 모두 하나로 해버린다. 또한 삼매 하나를 학 습하여 얻고 나서는 다른 경의 가르침 과 무량한 법문을 차별한다’고 하였다. 즉, 오로지 자기가 알고 있는 법이 가장 뛰어나다고 생각하고 이것을 떠나서는 다른 법이 없다고 고집을 부리는 마음 이다.

어디에서 무엇을 보고 와서는 그것이 제일이라 하고, 또 무엇을 듣고 와서는 그것이 최고라고 상(相)을 내는 것이 다. 이는 믿음과 실천이 얕으며 깊지 못 한 탓이다. 자기 공부가 더욱 필요한 사 람이다. 이런 사람은 자기주장이 강하 여 다른 사람과 항상 언쟁을 일삼는다. 싸우는 마음을 투심이라 한다.

 


투심(關心)


투심(關心)은 싸우는 마음이다. 앞의 경우처럼 적취심(積衆心)이 강하여 다 른 사람과 옳고 그름을 논하며 싸우는 마음이 투심이다.[대일경소] 에서 투심 을 이렇게 설하고 있다. ‘무엇을 싸우는 마음이라 하는가? 서로 간에 옳고 그름 을 가리는 것을 성품을 삼는 것을 말한 다.’고 하였다. 다른 이가 설하는 가르 침을 듣고서 언제나 옳고 그름을 따지 는 것을 즐겨서 ‘이 뜻은 이러하다’ ‘이 것은 그렇지 않다’라고 하는 것을 말한 다.

투심으로 인하여 말이 많고 시끄러 워 항상 공격적이며 자기 우월이 강하 여 아상(我相)이 가득하다. 상대의 말 이 아무리 이치에 합당할지라도 온갖 억척으로 단점을 드러내고 트집을 잡 아 결국 잘못으로 떨어뜨린다. 설령 다 

른 이가 와서 물을 때에도 그 단점을 지 적하여 질문을 어그러뜨린다. 이와 같 이 행동한다면 자기에게 투심이 있음 을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투심을 버리기 위하여 상대 의 말을 경청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가 져야 한다. 시비 (是非)를 먼저 생각해 서는 안 된다. 경청은 상대에 대한 존중 과 배려이며, 존중과 배려는 자비의 또 다른 표현이다. 경청하고 배려하며 존 중하는 마음은 이타행(利他行)에서 비 롯된다. 이타는 자비를 근(根)으로 하 고, 자비 또한 이타를 바탕으로 한다.

적취심과 투심은 자비심을 길렀을 때 여읠 수 있다. 자비심은 이타행에서 일 어나고, 이타행을 통해서 자비심이 더 욱 증장된다. 명심 (明心)은 불자가 닦 아야 할 마음이며, 적취심과 투심은 중 생이 버려야 할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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