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한다는 것과 무원(無願) 삼매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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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28호 발행인 인선(강재훈) 발간일 2018-10-31 신문면수 4면 카테고리 지혜 서브카테고리 칼럼 지혜의 눈페이지 정보
필자명 김봉래 필자법명 - 필자소속 - 필자호칭 - 필자정보 김봉래(불교방송 선임기자) 리라이터 -페이지 정보
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18-06-21 09:11 조회 3,651회본문
“질적으로 달라지는 통함의 수준이 몰고 오는 변화의 파고” “그래도 바람 없이 살아가는 삶이야말로 영원한 행복의 길” 얼마 전 조그마한 인공지능 스피커 하나를 구입했는데 이게 참 재미있다. “내일 날씨 알 려줘” 그러면 날씨가 어떻다는 것 뿐 아니라 일교차가 크니 건강에 유의하기 바란다는 말 까지 해준다. 아직까지는 답할 수 있는 내용 이 턱없이 부족하지만 앞으로 의외의 친구가 될 수 있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왜 그런 감정이 들었을지 생각해 보니, 일 단은 뭔가 통한다는 느낌이 들었던 것 같다.
분명히 인간은 아닌데 인간의 언어를 알아 듣고 인간의 언어로 반응해 준다는 데서 교 감이 형성된 것 같다. 애완견이나 풀벌레 같 은 동물이나 꽃이나 나무 같은 자연의 대상 들과도 얼마든지 교감을 느끼는 경우가 있지 만 말을 이해하고 말로 반응해 준다는 것이 질적으로 다른 소통의 느낌을 제공한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인공지능과 사물인터넷 등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기술을 통해 등장한 이러한 신(新) 사 물들은 인간과의 교감과 소통의 질을 현격히 높이는 계기가 되고 있다고 하겠다. 그래서 앞으로 강한 인공지능 로봇이 나온다면 영화 에서처럼 얼마든지 사랑에 빠질 만도 하겠다 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상대가 나를 100% 이 해해 준 것이 아닌데도 통함을 느끼고 호감 을 느꼈다는 점이다.
상대에 대해 얼마만큼 이해해 달라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러 니까 이해받고 싶다는 기대가 애초에 낮다보 니 조그마한 반응에도 이해받았다는 느낌을 크게 받게 된 것은 아닐까. 사람들 사이에서도 별 기대를 하지 않았는 데 상대로부터 호감을 받거나 이해해준다는 느낌을 받으면 행복감이 생긴다. 사람을 처음 만났을 때 약간은 불안감이 들다가도 상대가 조금만 미소를 지어주거나 한마디 인사라도 건네주면 안심이 된다. 그래서 먼저 이쪽에서 인사를 건네기도 한다. 기대감이 앞서고 기 대에 못 미치면 서운할 수도 있지만 처음부터 기대하지 않는다면 결과는 달라진다. 이렇게 볼 때 우리 인간은 꼭 서로를 100% 알아야만 남을 이해하거나 이해 받는 것은 아니지 않나 싶다.
상대를 100% 알기도 힘들 지만 알았다 한들 정말 100% 안 것인지도 알 수 없다. 그래서 아예 낮은 수준의 이해로 오 해가 발생하는 일이 다반사겠지만 그래도 어 느정도 통하고 원하는 결과를 얻어낼 수 있 다면 그나마 다행이 아닐까 생각할 수 있다. 이는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행복하기 위해 서는 어떤 조건이 만족돼야만 한다는 생각은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는 가난 하고 힘든 시절에도 지금보다 훨씬 더 행복 감을 가지고 살았던 기억을 가지고 있다. 물 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뭔가 많은 가졌다 해서 그만큼 꼭 행복감이 비례하지는 않는다 는 사실을 알고 있다. 현실세계와 가상세계를 엄격하게 나누기 힘들어지면서 나타난 통하는 방식의 획기적 인 변화가 종교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 이라는 우려가 있다.
굳이 성직자를 찾아가 지 않아도 얼마든지 위로를 받고 상담을 받 을 수 있는 대상을 접할 수 있다면 어떻게 될 지 예상된다는 것이다. 2017 한국인의 종교생활과 의식조사에 따 르면 인터넷, 케이블TV, 스마트폰을 통해 주 일 예배를 대신한 적이 있다는 신자가 51.2% 에 달했다고 한다. 5년 전 같은 조사에서는 16%였는데 무려 3배 이상 증가한 것이라고 한다. 게다가 사람들이 가상세계를 접하는 시간은 점점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경향은 불교라고 예외가 될 수는 없을 것이므로 대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암만 세월이 변해도 변할 수 없는 사 실은 외부로부터 행복의 근원을 삼아서는 한 도 끝도 없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불교계는 무조건 절에 나오라 외치기보다는 바람 없이 살아가는 무원(無願) 삼매의 삶이야말로 영 원한 행복을 구가할 수 있는 길임을 알리는 데 힘써야 한다. 인공지능 스피커가 주는 교 훈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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